ⓒphoto 조선일보 신지호
ⓒphoto 조선일보 신지호

‘장(腸)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전에 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장을 깨끗하게 디톡스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바르기 전에 우선 피부를 깨끗이 세안해줘야 화장품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장내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 바로 장내 환경(gut ecology) 개선이다.

코로나19 생활방역의 일환으로 손 씻기가 일상화되면서 소화기 감염, 결막염, 호흡기 감염 등이 오히려 감소했다고 한다. 감염이 감소한 이유야 많겠지만, 여기엔 외식, 회식 등이 줄어들며 장내 환경이 개선된 것도 일조했다고 본다.

‘음식을 먹으면 배설물로 배출된다’는 것은 어길 수 없는 자연 순환의 법칙이다. 그런데 섭취한 음식물이 대변으로 변하는 과정 에서 올바른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혹은 음식을 올바른 방법으로 섭취하지 않아 배설에 문제가 생기면 장에 유독가스가 생기게 된다. 뱃속 공해다. 이런 뱃속 공해에 노폐물, 과산화지질, 유해산소, 유해균, 박테리아까지 합쳐진 것이 바로 ‘숙변’이다.

단순히 ‘오래된 변’이라는 사전적 정의로 숙변을 설명하기엔 불충분한 부분이 있다. 더러운 피부에 영양크림 바르면 오히려 뾰루지가 나듯, 아무리 좋은 장 속 세균이라도 오염된 장내 환경 속에서 과다증식하면 그람음성균(살모넬라균·이질균·티푸스균·대장균·콜레라균·페스트균·임균·수막염균·스피로헤타 등 세균의 종류)의 내독소(endotoxin)가 장 점막 상피세포에 염증을 일으키고 만다. 내독소란 체내에 보유되어 균체 밖으로 독소가 분비되지 않는 독소를 말한다. 내독소가 야기한 장 내 염증은 결국 급성 및 만성염증질환의 원인이 된다. 특히 장 점막세포 사이의 간격이 느슨해져 장 점막 안쪽 혈관 안으로 오염물질이 침투해 들어가 면역계를 손상시키는 ‘장누수증후군(새는 장 증후군)’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 건강이 만성질환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만성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선 단순한 약물 복용 뿐만 아니라 환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히 점검하며 꾸준히 몸의 변화를 일궈내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주변엔 ‘장에 좋은’ 건강식품 및 보조제들이 넘쳐난다. ‘장 건강’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이후 프리바이오틱스, 프로바이오틱스, 심(sym)바이오틱스, 포스트바이오틱스 등 각종 바이오틱스 제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1992년 필자가 처음 장 해독, 항 노화, 면역강화를 내세워 ‘장내 세균과 건강’에 대해 강연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주제는 일반인은 물론, 의사들한테까지도 무척 생소했었다. 그 즈음 필자는 장내세균학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유산균 전문가인 도쿄대 미츠오카 토모나리 교수를 만나기 위해 일본에 갔었다. 미츠오카 교수는 장내 유익균‧유해균을 최초로 명명하고 연령별 장내세균분포도를 도식화한 세계적 석학이다.

그때 미츠오카 교수가 각종 유산균 제품 복용에 대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식이섬유나 올리고당 같은 프리바이오틱스 하나만이라도 꾸준히 섭취하면 장내세균총의 밸런스가 유지된다”며 “여러 종류로 분류해 놓은 유산균 제품의 섭취에 일일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생유산균 못지않게 죽은 사균도 장내환경개선에 일조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헤어질 때 자신이 만들었다는 포스트바이오틱스 제품과 논문을 주면서 “지금껏 발견하지 못한 많은 균주들이 앞으로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마치 우주의 별처럼”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우주의 신비를 전부 풀지 못했듯, 우리는 아직 장에 대한 모든 비밀도 알지 못한다. 가장 대표적인 미지의 분야가 바로 만성적 장의 염증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다. 아직 장내 환경이 뇌의 구조에 주는 기전은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뭔가 관계가 분명하다는 연구 결과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장의 한정적인 염증이 특정 뇌 영역에 대한 과도한 신경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장 점막 염증으로 인한 내독소반응을 상시적으로 발생하게 하며, 이것이 뇌혈관장벽의 염증을 수반하고 이 염증이 다시 뇌세포의 대사를 방해한다는 가설 이다. 장내독소에 의한 뇌혈관벽의 손상이 치매와 파킨슨씨병과 관련 있다는 연구 논문도 이미 여러 편 나와 있다.

장의 건강을 지키고 개선시키는데 1차적인 책임은 몸의 주인인 우리에게 있다. 장은 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뇌는 우리 몸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신경과 연결된다. 장의 건강상태에 따라 우리의 신체 변화 및 감정 변화가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이 더부룩한지, 과도하게 가스가 발생하는지, 염증으로 인한 통증이 있는지를 평소 주의 깊게 살피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매스컴에서 ‘장에 좋다’며 선전하는 각종 바이오틱스 제품을 종류별로 갖춰 먹기에 앞서, 장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생활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이왕림 가정의학과전문의·대한생활습관의학교육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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