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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53호] 2021.04.12

지중해 해변서 만난 클레오파트라의 슬픈 러브스토리

알라니아(터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2021-04-15 오전 8:36:29

▲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알라니아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해변. photo 셔터스톡
‘주체적·독립적 캐릭터라 불릴 수 있는 최초의 여성은?’
   
   주관적 판단이지만 고대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클레오파트라 이전에 등장한 여성들의 캐릭터는 종교적·신화적·형이상학적 차원에 머물렀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 미의 여신 비너스, 어둠과 죄의 시작으로 통하는 판도라(Pandora)는 그런 차원의 여성 캐릭터들이었다. 남성 무용담을 장식하는 도우미, 출산과 자식을 위한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여성의 주된 운명이자 미덕으로 통해왔다. 클레오파트라 스타일의 삶과는 무관한, 이른바 현모양처로서의 여성이다. 부활의 여신인 이시스(Isis), 창녀 출신으로 고대 그리스 정치가 페리클레스와 함께 산 아스파시아(Aspasia) 역시 남성과 자식을 위해 살아간 ‘모범적인’ 여성 캐릭터들이다.
   
   
   독립을 지키려 한 권력자이자 전략가
   
   물론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를 비롯한 고대 로마 영웅들의 유희 대상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일 듯하다. 성적 매력으로 무장한 이집트 절세미인에 관한 얘기는 ‘핑크 빛’ 여성 파라오 전설을 수놓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클레오파트라=남성용 액세서리’라 해석할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남성이 아닌 클레오파트라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살펴보자. 거꾸로 51살 카이사르가 20살 젊은 여성의 권력을 유지시켜준 방패이자 장식물로 활용됐다고도 볼 수 있다. ‘여성=피해자·약자·장식물’로 본다는 점 자체가 이미 남성 중심 역사관의 산물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4400여년 고대 이집트 역사가 끝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파라오의 영광과 나라의 독립을 지키려 노력한 권력가이자 전략가가 클레오파트라의 진짜 모습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악당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Macbeth)’에 등장하는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에 비견된다고나 할까? 덩컨(Duncan) 살해 모의와 관련해 남편인 맥베스에게 기대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는 단호한 캐릭터다. 클레오파트라는 레이디 맥베스가 탄생하기 1600여년 전의 실존 여성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도 없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면 일직선 행동으로 나아가는 여성상이다.
   
   클레오파트라의 러브스토리는 카이사르가 아닌, 이집트로 도망쳐온 카이사르의 정적 폼페이우스 마그누스(Pompeius Magnus)에서부터 시작됐다.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자 공동 파라오였던 프톨레마이우스 13세를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로마의 실력자 폼페이우스를 자신의 침대로 불러들인다. 폼페이우스가 58살, 클레오파트라가 17살이던 때다. 그러나 눈치를 챈 남동생 파라오는 폼페이우스를 살해하고 클레오파트라도 죽이려 든다. 카이사르에게 보내진, 선물로 위장한 양탄자 스토리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등장한 에피소드다. 남동생 파라오의 눈을 피하는 과정에서, 클레오파트라가 양탄자에 숨어 카이사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죽은 폼페이우스를 대신해, 새로운 권력자 카이사르를 자신의 방패로 삼으면서 대응하게 된다. 이후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로 남성 편력을 옮겨 간다. 알렉산드리아 궁궐로 그를 불러들여, 호위무사이자 남편으로 섬기면서 함께 생활한다. 안토니우스에게서 낳은 자식은 물론,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들과도 궁궐에서 함께 생활했다. 공화정 말기 로마의 최대 권력자 3명 전부를 자신의 침실로 끌어들인 당찬 여성이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3명의 장군에 얽힌 클레오파트라의 행적을 살펴보면, 로마 장군의 장난감 같은 약한 여성이 아니다. 거꾸로 보면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로 이어지는 최고 권력자 3명 모두가 30살 정도의 어린 이집트 여성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강한 남성일수록 독자적이고도 주체적인 여성에게 이끌리게 된다. 무용담이 넘치는 그 어떤 남성일지라도 만나는 순간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역사상 최초의 카리스마 여장부가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 스페인 화가 후안 루나의 1881년작 ‘클레오파트라의 죽음’.

   이집트산 모래로 조성된 아나톨리아의 해변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은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문학 작품이나 박물관에서뿐만 아니라, 태양 빛이 드리워진 자연 공간을 통해 인류와 함께 숨쉬면서 기억되고 있다. 지중해 주변은 클레오파트라가 남긴 역사와 전설을 재음미할 수 있는 최적의 현장이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서쪽보다 지중해 동쪽이나 북부 아프리카로 가면 클레오파트라 관련 유물·유적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잊기 쉬운데, 고대 이집트는 3000여년간 지중해 동쪽을 지배한 해상 무역강국이다. 이집트 영향권 땅이라면 클레오파트라 그림자도 어딘가에 ‘반드시’ 드리워져 있다. 최근 다녀온 터키 아나톨리아 지방의 알라니아(Alanya)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해변(Kleopatra Beach)’도 그 같은 역사와 전설의 흔적 중 하나다. 백사장 해수욕장으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러브스토리 현장이다. 안토니우스가 여성 파라오를 공식 초청해 매일 밤 연회를 벌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다.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뒤 공화정 제2차 삼두정치를 이끌던 중 클레오파트라와 만나게 된다. 아버지처럼 대했던 카이사르의 여자와 사랑에 빠진 셈이다. 대부분은 남성인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선택’했다고 풀이하는 듯하다. 그 반대는 어떨까?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카이사르 후임 권력자로 승인해 받아들였다면 역사 모독으로 처리될까?
   
   그러나 기원전 31년 모든 것이 끝난다. 안토니우스는 악티움해전(Battle of Actium)에서 카이사르의 후계자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Gaius Octavianus)에 맞서 싸우지만 패한다. 그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 비극적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패전의 충격이 컸겠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했다는 소문을 듣고 절망한 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토니우스의 자살 직후 클레오파트라도 코브라 독을 마시고 세상을 뜬다. 이집트 궁궐에 들어온 옥타비아누스는 두 사람의 시신을 하나로 모아 화장했다고 한다. 더불어 ‘옥타비아누스=로마 최고 권력의 유일한 법통’이란 사실도 모두에게 공표한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사이에 생긴 클레오파트라의 자식 모두를 칼로 찔러 죽인 후 불태웠다고 한다.
   
   
   매일 밤 해변서 열린 안토니우스와의 연회
   
   클레오파트라 해변은 이집트 파라오와 로마 장군 사이에 잉태됐던 평화와 사랑의 징표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준 땅이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신 파라오를 위한 의전이자 전통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땅에만 발을 내디뎠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가 하선하지 않고 배에 머물자,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에서 갖고 온 엄청난 양의 모래를 해변가에 뿌렸다고 한다. 필자도 아침마다 산책을 했지만, 2㎞에 달하는 클레오파트라 해변의 백사장이 너무도 인상 깊다. 발에 부담을 주는 자갈이나 쉽게 뭉쳐지는 진흙이 아닌, 적당한 크기의 투명한 모래가 클레오파트라 백사장의 특징이다. 상처를 낼 수도 있는 날카로운 조개껍데기 하나 없는, 곱고도 맑은 해변가다. 해수욕과 더불어 두 사람 모두 코발트블루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오렌지 빛깔로 채색되는 해 질 녘의 해변가 풍경은, 지중해 특유의 침묵과 조화로 채워져 있다. 클레오파트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초호화판 뱃놀이를 즐긴 인물인 셈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둘만을 위한 파라오의 연회가 지중해 바닷가에서 매일 열렸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대지의 표면이 상당히 변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Pascal)의 저서 ‘팡세(Pensées)’에 나오는 명구(名句)다. 보통 절세미인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말로 통한다. 코가 조금이라도 낮았더라면 미인의 유명세를 박탈당했을지 모르고 3명에 걸친 로마 영웅들과의 러브스토리도 없었을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서방 역사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위상도 사뭇 추락했을 것이란 결론으로 이어진다. 21세기에 등장했다면 외모 지상주의나 여성 차별주의자의 막말로 비난받았을지 모르지만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말이다.
   
   자주 듣는 과정에서 놓치기 쉽지만, 파스칼의 명구를 곰곰이 새겨보면 의문 하나가 남는다. ‘왜 코인가’라는 점이다. 서양에서 통하는 미인의 기준으로 보면 코는 그다지 큰 변수에 속하지 않는다. 얼굴 윤곽이 평면형인 아시아인 기준으로 보면, 코는 높이고 크게 만들고 싶은 성형의 영순위 대상이다. 코부터 키우고 이후 다른 부분도 성형에 들어간다. 입체형 얼굴의 서양인 기준으로 보면 다르다. 코는 너무 크고 커서 문제가 되는 장애물에 불과하다. 코 성형이라고 하면, 줄이고 작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동서양 관계없이, 원래 미인의 기준은 ‘피부, 눈, 입술, 머릿결’로 모아진다. 영혼과 마음의 창으로 통하는 맑고도 총명한 눈은 동서 구분 없는 미인의 첫 번째 요소다. 눈, 입술, 피부에 관한 한 클레오파트라의 미는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파스칼은 ‘코의 높이=미인의 구성요소’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미인 기준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감각이다. 왜 코를 미의 제1 구성요소로 내세웠을까?
   
   
▲ 클레오파트라 해변에 있는 클레오파트라 두상. photo 셔터스톡

   클레오파트라는 진짜 미인이었나?
   
   나름대로 내린 판단은, 사람들이 파스칼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결론이다. 일반적 추측과 달리, 파스칼은 ‘코의 높이=미인의 구성요소’라고 내세우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외면적 미인의 기준으로 클레오파트라의 코를 강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첫눈에 반할 외면적 미모가 아닌, 지성·교양·품격을 겸비한 ‘내면적 미의 상징으로서의 코’란 의미가 파스칼의 진의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os)가 남긴 클레오파트라 평전은 파스칼의 의중을 파악하게 만드는 증거다. “클레오파트라의 외모는 특출한 것이 아니었고, 보는 사람들을 황홀하게 만들어 줄 정도는 더더욱 아니었다.” 추정컨대 클레오파트라의 ‘지성·교양·품격이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파스칼의 원래 의도였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예술작품은 유럽 박물관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왜 유럽은 클레오파트라에 환호할까’라는 단순한 궁금증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현상이지만, 클레오파트라는 여성 누드화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떠오른다. 눈물을 흘리는 여자 하인들에게 둘러싸인, 코브라를 가슴에 얹은 모습이 클레오파트라 누드화의 일반적 구도다. 르네상스 이전 인물을 다룬 여성 누드화라고 하면, 미의 여신 비너스와 회개하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떠오를 듯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신화적·종교적 차원의 캐릭터다. 실제 존재했던 세속적 인간으로서의 여성 누드화는 클레오파트라가 유일하다. 왜 클레오파트라가 누드화의 주인공으로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정복심리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이집트 최후의 여성 파라오 누드화를 통한, 정신적·문명적·문화적 우월의식이다. 이교도의 나라 이집트를 비롯해 주변 아랍권과 북부 아프리카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세다. 물론 로마 장군의 액세서리이자 장난감 같았던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우위 문화의 기반이자 증거로도 활용됐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 누드화 하나 걸어두는 것만으로 카이사르가 될 수도 있고 신비로운 여성 파라오의 침실을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필자가 주목한 클레오파트라 인기의 배경은 이런 천박한 승자 세계관과 무관하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인간에 대한 존경과 숭배가 클레오파트라 인기의 진짜 이유라 판단된다.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최후는 자살이다. 마지막까지 믿었던 안토니우스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코브라를 꺼내 목숨을 끊는다. 클레오파트라의 행동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이집트 독립을 위한 파워게임에서 나왔을 뿐, 진정한 사랑과는 무관한 행적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런 시각이라면, 안토니우스를 꺾은 새로운 권력자 옥타비아누스에게 다가가 재기를 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3명의 장군으로 이어진 클레오파트라의 러브스토리는 전부 목숨을 건 모험으로 비쳐진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으로 가는 식의 세계관이 아니다. 이것이 끝난 뒤, 저것으로 옮겨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이것 하나에 목숨을 건다.
   
   동양 문화의 특징이지만, 목숨을 건 러브스토리가 많지 않다. 부모나 주군을 위한 장렬한 죽음은 있지만, 남녀간 러브스토리에 기초한 역사는 인상적인 것이 많지 않다. 간혹 있다 해도, 자세히 보면 남성 무용담을 위한 액세서리로서의 러브스토리에 그친다. 목숨을 건 여성에게 현모양처라는 상장이 수여되기는 하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남성이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끊는 동양 남자에 관한 러브스토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유럽은 다르다. 최초의 동서(東西) 대연합 동맹전쟁인 그리스 트로이 역사에서부터 목숨을 건 러브스토리가 등장한다. 그리스 여성 헬레네(Helene)를 납치한 트로이 파리스(Paris)의 러브스토리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에 목숨을 거는, 유럽 러브스토리의 전형적인 모델이다. 클레오파트라 누드화를 통해 유럽 문명의 우수성과 남성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코브라의 독이 퍼져가는 여성 파라오의 창백한 얼굴을 통해 목숨을 건 사랑의 열정을 발견해내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흔적은 사후 2000년이 넘은 지금도 지중해 곳곳에 새겨져 있다. 대부분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지만, 실제 가보면 성지 순례지로 착각할 듯한 분위기다. 설명하기 어려운, 엄숙하고도 신비로운 공기로 채워져 있다. 주체적·독립적 여성 클레오파트라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아직도 지중해 곳곳을 표류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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