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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76호] 202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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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독의 두 번째 시선]가장 정치적인 장르 영화 ‘바쿠라우’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2021-09-27 오전 8:33:49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쿠라우’는 2019년 ‘기생충’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때 심사위원상을 받은 영화다. 전작 ‘아쿠아리우스’로 칸 경쟁부문에 한 차례 초청됐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은 ‘바쿠라우’로 또 한 번 영화제를 뒤흔들어 놓았다. 전작들에서도 줄곧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해온 그였지만 이런 외피를 입은 영화는 처음이었다. ‘바쿠라우’는 그만큼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기괴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야기는 브라질의 한 작은 마을 바쿠라우에서 시작한다. (바쿠라우는 브라질 북동부 지역 세르타오를 모델로 한 가상 공간이다.) 마을에서는 족장 카르멜리타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장례는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전통적 절차에 따라 치러지는데, 삶과 죽음을 억지로 분리하지 않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피부색과 성적 지향이 다른 사람들은 마을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끈끈한 결속을 이루어 살아간다. 서로 다투지 않고, 음식과 생필품을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누는 모습은 자본주의와는 멀리 떨어진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연상시킨다.
   
   어느 날, 시장 토니 주니어(타르델리 리마 분)가 마을을 찾아온다. 얼마 뒤 있을 시장 선거에서 자신을 다시 뽑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토니가 댐 수문을 닫아버려 주민 모두가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 모욕적인 선거 유세를 끝으로, 토니는 바쿠라우 사람들을 탄압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날 이후 인터넷 지도에서 바쿠라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UFO 모양의 드론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식수 차량이 총격을 당해 물이 새는가 하면, 전기와 통신도 모두 끊겼다. 급기야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 살해당하기 시작한다. 궁지에 몰린 바쿠라우 사람들은 반격을 결심한다. 마을에 잠입한 세력은 미국 등지에서 온 백인과 브라질 권력층이었는데, 그들은 바쿠라우 사람들을 한 명씩 총살하는 일종의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서구를 겨누는 전복의 화살
   
   전반부까지 바쿠라우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느린 템포로 보여주던 영화는 후반부에 급격히 태도를 바꾸어 장르 영화의 외피를 걸쳐 입는다. 총과 칼이 등장하고 피 튀기는 복수가 시작된다. 동시에 묵직한 메시지도 함께 던진다. 다른 민족과 문화를 정복하고 침략하는 서구 사회에 대한 바쿠라우의 저항이 시작되는 것이다.(영화를 보는 관객-아마도 대부분 선진국 국민일-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전반부에선 관객 역시 바쿠라우 주민들을 일정 부분 관찰하고 대상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는 관람자로서의 관객 역시 정조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는 다른 문화와 그 문화권 사람들을 타자화하는 서구에 대한 묘사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가령 침입자들이 신무기가 아닌 구식 무기로 바쿠라우 사람을 ‘서서히 죽이는’ 방식이 그렇다. 이는 어쩐지 서구 자본이 그들보다 못사는 나라를 좀먹는 방식과 닮았다. 침략자 중 일부는 ‘살해 타깃에서 여성과 아이는 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서구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침입자들이 가지고 온 드론의 존재다. 영화는 이 상황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드론의 시선으로 그린다. 그러나 위에서 조종하고 내려다보던 세력들은 결국 아래(땅)에서 최후를 맞는다. 침입자 중 한 사람이 바쿠라우 주민의 역습으로 쓰러져 있을 때, 그에게 다가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려다보는’ 주민의 모습을 담은 숏은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전복적이며, 인상적이다.
   
   위 장면을 포함해 영화 곳곳에는 매력적인 이미지들이 여럿 나온다. 바쿠라우 소년 중의 한 명이 침입자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 주민들은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아이의 시체를 찾으러 간다. 동시다발적으로 플래시를 켠 채 천천히 걷는 이들의 모습은 얼핏 미래인 군단 같기도 한데, 이는 가짜 UFO 모양의 드론을 쓰는 사람이 침입자들이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의미심장하다.
   
   섹스와 춤을 연결시키는 시퀀스 역시 매력적이다. 영화는 이들에게 섹스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강조한다. 두 사람의 신체가 서로 맞닿는 특유의 리듬은 곧 누군가의 춤(생과 활기)으로 연결되는데, 섹스가 곧 죽음과도 같다고 했던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의 말을 상기하면 이 역시 생과 맞닿아 있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영화는 지금 현재 브라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브라질은 지역에 따라 빈부 격차가 매우 크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기꺼이 희생시킨다. 영화에서 바쿠라우가 쉽게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는 지역으로 그려진 이유는 브라질 서민들의 삶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다.(국가는 그들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취급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토니가 침략자들을 사실상 불러들였다는 사실이 직접적으로 폭로되는데, 이는 자신들의 부와 권력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브라질 정치권에 대한 고발일 것이다.
   
   비단 브라질만의 일일까. 이 디스토피아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바쿠라우’의 공동 연출자인 줄리아노 도르넬레스는 “전 세계가 우리 영화의 광고 영상을 매일매일 만들어주고 있다”며 웃지 못할 농담을 했다.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국가 안에서도 국가 바깥에서도 매일같이 일어나며, 심지어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는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니 이 영화는 영화 바깥으로 더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침입자들은 바쿠라우 주민들에 비해 문명의 수혜를 훨씬 더 많이 입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퇴행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시적 욕망과 폭력만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문명의 발전이 계속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쿠라우 사람들처럼 어두울수록 서로 협력하는 것뿐일까.
   


   개봉 2021년 9월
   감독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주연 우도 키에르, 소냐 브라가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국가 브라질
   러닝타임 1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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