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스탈린, 김일성, 폴 포트, 차우셰스쿠…. 세계사에 기록된 20세기 악마들이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세계 평화를 위해 반드시 절멸시켜야 할 대상이라고 여겼다. 1933년 권력을 잡은 히틀러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인종청소를 개시한다. 2차 세계대전 6년 동안 독일, 체코,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 등에서 유대인 600만명 이상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됐다.

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는 독일 경제를 부흥시켰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천문학적 배상금에 짓눌려 신음하던 독일 경제를 일으킨 것은 누가 뭐래도 히틀러의 공(功)이다. 1933년 초, 히틀러는 국민차 구상을 밝힌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자동차를 타고 대륙을 누비게 하겠다는 꿈! 58세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가 이 구상에 맞춰 만들어낸 게 소형차 폭스바겐이다.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 네트워크인 아우토반을 건설한 것도 히틀러였다.

문제는 히틀러의 비뚤어진 역사관이었다. 히틀러는 ‘그리스도교의 탄생은 인류를 덮친 최악의 사건’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죽은 후 교의를 유대인이 마음대로 고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히틀러는 마르크시즘과 똑같이 그리스도교를 증오해 독일 가톨릭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이 지점에서 논리가 비약한다. 가정은 또 다른 가정을 낳았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없었으면 이슬람교도 지구상에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 그랬다면 1453년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게르만 민족이 로마제국의 유산을 통째로 계승하여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섰을 것이다. 그가 계획하고 벌인 모든 일, 동원한 모든 프로파간다는 뒤틀린 역사관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틀러와 당대를 살았던 유럽의 지도자들은 모두 히틀러를 두려워했다. 히틀러의 현란한 수사(修辭)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번번이 뒤통수를 맞곤 했다. 단 한 사람만이 히틀러의 본심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영국의 윈스터 처칠이었다. 처칠은 나치당이 전체주의라는 면에서 공산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고 확신했고 틈만 나면 히틀러를 공격했다. 이에 히틀러는 “처칠은 정치에서 가장 어쩔 도리가 없는 창녀 같은 놈”이라는 극언을 퍼부었다. 처칠은 미동도 하지 않았고 반(反)히틀러 전쟁을 지휘해 마침내 그의 야망을 저지했다.

해방정국 3년을 아는 사람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해방정국 초반은 좌익 세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테러와 폭동이 일어났다. 공산주의 세력의 정체를 꿰뚫고 있던 이승만이 귀국하면서 상황은 바뀌어갔다. 좌익 세력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세계 정세를 통찰하던 프린스턴대 박사 이승만은 극동의 신생국을 친미(親美) 자유진영 국가로 편입시켰다. 이게 한국과 북한의 운명을 갈랐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대한민국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믿는 세력이 엄존한다.

바야흐르 대선 정국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도자를 선택하는 최우선의 기준은 역사관이다.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가 제일의(第一義)적 기준이다. 이와 함께 잔악무도한 김정은 테러집단과 결기 있게 맞설 수 있는, 처칠과 같은 뱃심이 필요하다. 다른 능력은 부수적이다.

키워드

#편집장 편지
조성관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