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는 회의(會意)문자가 많다. 두 개 이상의 한자를 합하고, 그 뜻도 합성하여 한자의 뜻을 새로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합성된 한자의 자획(字劃)을 해체해 각각 본래의 뜻으로 글자의 뜻을 되새기는 것을 파자(破字)라 한다.

도스토옙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을 예로 들어보자. 죄(罪)를 파자하면, 그물망()과 아닐 비(非)다. 해서는 안 되는, 아닌 일을 하면 그물에 걸리는 게 죄(罪)라는 뜻이다. 일부에서는 그물망을 넉 사(四)로 해석해 ‘아닌 일을 네 번째 했을 때는 죄가 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아닌 일을 저질러도 두세 번까지는 사회 관행상 용서가 된다는 뜻이리라. 정설은 아닐지 몰라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해석이다.

최근 지인이 KTX를 타고 광주에 내려가다가 우연히 메이저리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를 봤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야구팬인 지인은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남다른 넓은 어깨에 자세히 보게 되었다고 했다. 야구팬의 입장에서 반가운 마음에 알은체를 하고 기념사진이라도 찍자고 요청하고 싶었지만 ‘안 좋은 일’이 생각나서 그만두었다고 했다.

강정호는 지난해 12월 음주운전·뺑소니·허위진술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2심에서 항소기각됐다. 현재 미국대사관의 비자발급이 거부돼 메이저리그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부상이 아닌 본인의 과실로 비자발급이 거부된 상태라 강정호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구단으로부터 연봉을 받지 못한다.

MLB 무대에 서지 못하는 강정호는 얼마나 답답할까. 야구팬들의 입장에서도 안타깝기만 하다. 강정호는 미국 마이너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를 거치지 않고 KBO리그에서 직접 MLB로 간 선수다. 강정호의 성공은 국내 최고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강정호는 2015~2016 두 시즌 동안 타율 0.273, 홈런 36개, 타점 120개를 기록했다. 놀라운 성적이다.

강정호는 선처를 호소하고 있지만 법정은 냉정하다. 팬심(心)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법정은 왜 선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MLB에서 한국을 빛냈고 앞으로도 빛 낼, 전도가 양양한 그를 왜 구제하지 않을까. 강정호는 이미 몇 번의 전력(前歷)이 있다. 미국에서 성폭행 혐의로 고발된 사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음주운전으로 걸린 것만 이번이 세 번째다. 2009년과 2011년에는 벌금형을 받았다. 강정호가 일으킨 음주운전 사고 동영상을 보자. 유구무언이다.

1991년 1월 해군작전사령부 작전참모처 계획과장(중령)이 만취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혈중 알코올농도 0.11이었다. 당시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중이었다. 그러나 이 장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민간인이었으면 이게 가능했을까. 이 장교는 훗날 해군참모총장에 올랐다. 해군참모총장 퇴임 후에는 방산업체에 고문으로 취직해 거액의 자문료를 수수했다. 누가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장관에 임명된 송영무씨 얘기다. 문 대통령식 표현을 빌리면, 청산되어야 할 적폐(積弊)다. 그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야당과 여론으로부터 자진사퇴의 압력을 받았지만 안면몰수와 버티기로 장관에 임명되었다.

다시 파자(破字)로 돌아가자. 이번엔 벌(罰). 죄를 지어 그물에 걸리면 말씀 언(言)과 칼 도(刀)로 단죄받는다! 욕을 먹어 명예가 실추될 뿐 아니라 법의 칼날로 죗값을 치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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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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