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집장레터
[2477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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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편지] 김정은의 온정?

조성관  편집장 maple@chosun.com 

요즘 중년층은 만나기만 하면 우리가 어쩌다 김정은의 핵(核)인질에 이르렀는지를 한탄한다. 전쟁만은 안 되니 북한 핵을 인정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핵인질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화는 자연스럽게 역대 대통령의 책임론(論)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핵무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을 때 우리는 모두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는 줄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일제히 터졌던 축포(祝砲) 소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광화문 교보문고 현관 입구에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 틈에 한국인이 들어갔다는 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이 현대그룹을 압박해 정상회담의 대가로 김정일에게 4억5000만달러를 비밀 송금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언론에서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뒷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DJ 지지자들은 평화를 얻는데 그 정도 대가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뒷돈 정상회담’을 옹호했다. 맞는 말처럼 들렸다. 북한이 적화통일 야욕을 포기하고 평화만 정착된다면야. 나는 요즘도 일주일에 평균 한두 번은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아 책 냄새를 맡는다. 고인이 된 DJ의 초상을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착잡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책임도 크다. 1994년 미국은 북한 영변 원자로 시설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우리로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당시 월간조선 소속이었다. 월간조선은 거의 매월 북한 핵 개발과 관련된 기사를 게재했었다. 그만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최근 지인과 저녁 자리에서 1994년 그때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인은 1994년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 “전쟁만큼은 절대~”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이제 겨우 학위를 받고 사회에 나가려고 하는데 인생 계획이 어그러지는 무슨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지인은 “내 자식이 핵인질로 살게 해서는 안 된다. 내 목숨이라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60%,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여론이 35%였다.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35%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면 어쩌자는 것인가.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을 반대하면 5000만명이 앉은 채 김정은의 인질로 잡혀도 좋다는 말인가. 지금 사드 배치도 반대하고 핵무장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1947년부터 1990년까지 43년간 공산국가였다. 루마니아는 2016년 5월, 데베셀루 공군기지에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중 하나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포대의 가동을 시작했다. 루마니아의 가장 큰 고민은 러시아의 영토 침략 우려였다. 당시 바세스쿠 대통령은 안보 불안을 불식하려면 미국과 군사협력을 맺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폴란드 역시 우크라이나 사태를 겪고 나서 지난 7월 미국과 군사협력을 맺고 MD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냉전시대 소련의 위성국(衛星國)이었던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왜 친미(親美)국가로 변신했을까.
   
   우리는 어쩌다 김정은의 온정에 기대는 처지가 되었나. 평화는 전쟁을 각오할 때만이 지켜진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한쪽 팔을 내주더라도 적장(敵將)의 목을 베고 말겠다고 지도자가 결심할 때 평화는 찾아온다. 핵인질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걸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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