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의 승리로 끝난 후 트럼프는 ‘감사유세’란 걸 했다. 이른바 ‘격전지’라 불렸던 주를 찾아가 거의 유세와 흡사한 형식으로 자축행사를 벌였다. 그중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란 도시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공항에 내려보니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미시간주에 비하면 따뜻한 남쪽나라에 해당하는 워싱턴에서 왔으니, 그 눈 내리는 기세에 겁을 먹었다. 호텔에 짐을 맡겨놓고 걷다 보니 ‘제럴드 포드 대통령 기념관’이 나왔다. 그때까지도 포드가 그 지역 출신인 줄도 몰랐다. 포드는 미국인들끼리도, 특히 젊은층에선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도 있었던가?”라고 되물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하다.
닉슨 대통령 시절 부통령이었던 포드는 닉슨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사임하고 남은 기간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정치를 하면서 최대 야심이 ‘하원의장’이었다는 포드도 막상 대통령이 된 후엔 야심이 커졌다. 그래서 재선에 도전한다. 하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당시로선 워싱턴 정치의 ‘아웃사이더’였던 땅콩농장 주인 출신인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뽑는다.
포드는 점잖고 온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까지 몰렸던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미국과 미국인들이 입었던 상처는 크고 깊었다. 미국인들은 포드가 아무리 괜찮은 인물이어도 닉슨의 부통령이었고 닉슨을 사면한 그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고 눈 내리는 거리로 나오는데, 미국 유권자들은 위기감을 느낄 때면 ‘아웃사이더’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문제를 만드는 데 관련이 있는 사람은 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보고, 밖에서 ‘해결사’를 찾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당선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앞날에 대해 낙관하는 안정된 분위기에서라면 트럼프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트럼프의 감사유세장을 다니면서 ‘커밍아웃’한 예전의 ‘샤이 트럼프(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남들이 비난할까봐 겉으론 말하지 않았지만 기어이 투표하러 가서 한 표를 던진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여성은 “나는 물론 우리 가족, 내 친구들은 신문이나 방송을 아예 보질 않았다”고 했다. 대선 때까지 자신들이 지지하는 트럼프를 비난하는 보도는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선거철이 돌아오니 이제는 용감해진 ‘샤이 트럼프’들이 다시 중요해졌다. 2020년 대선 준비에 들어간 트럼프는 더 이상 ‘샤이’하지 않은 핵심 지지층 다지기 작업에 들어갔다. 정치의 첫걸음은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단 지지층부터 붙들어놓는 것이 선결작업이다.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에 매달리고 무슬림 의원을 공격하는 건 트럼프의 핵심공약이었던 ‘반(反)이민’ 등의 입장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려는 것이다.
반대로 민주당 후보들은 자신이 얼마나 트럼프와 다른가로 경쟁하고 있다. 인종, 성별, 정치성향, 언론에 대한 태도, 경력 등 다른 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트럼프스러운’ 것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반(反)트럼프 세력에 호소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대선은 더욱 트럼프스러워진 트럼프와, 트럼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후보들 간의 경쟁이 될 것이다. ‘공화 대 민주’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