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워싱턴의 한국 전문가가 전화를 해서 느닷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편지 받은 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뉴스 검색을 해보니 30분 전에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의 편지를 받았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뜬다. 그날 저녁 모임에서도 화제는 김정은의 ‘아름답고 따뜻한’ 편지였다. 워싱턴에서 요즘 북한 문제는 관심 순위권에서 한참 아래로 밀려 있었다.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시리아 등 북한 아니라도 국제 문제는 차고 넘치기 때문에 잠시만 조용해도 잊힌다. 김정은의 편지는 그래서 잠시 졸고 있던, 워싱턴의 북한에 대한 관심을 살짝 깨웠다.

트럼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을 좋아한다. 김정은의 편지에 대해 모두 궁금해하니 며칠째 신이 나서 편지 얘기를 하고 있다. 관련해서 하는 이야기는 늘 “내가 아니었으면 북한과 전쟁할 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위기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 거친 말을 주고받으면서 증폭시킨 측면이 있었다. 트럼프 지시로 미 국방부가 군사 옵션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저렇게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하마터면 전쟁 날 뻔했다’고 얘기할 입장은 아니란 것이다.

대북 제재를 조이면서 또 한편으론 김정은 편지 한 통에 싱글벙글하는 트럼프를 보고 있으려니 ‘트럼프에게 미·북 협상은, 북핵 문제는, 그리고 김정은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오랜 의문이 고개를 든다. 트럼프에게도 나름의 국제정치학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은 핵 문제 그 자체나, 동북아 정세를 고려해서라기보다는 협상 그 자체를 더 중요시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책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이렇게 쓴다. “나는 거래(deal)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가 나에게는 일종의 예술이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외교에서도 트럼프는 압박하고 얼러가며 결국 원하는 걸 얻어내는 모양새를 취한다. 게임이고 협상이다. 그리고 나선 이전 대통령들이 생각지 못했거나 시도하지 못한 것을 해냈다고 주장한다. 어떤 결과든 트럼프는 ‘성공’이라고 정의한다.

트럼프는 이 책에 자신은 “좀 여유 있게 산다고 해서 만족하지 않았”고, “뭔가 기념비적인 건물, 큰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다”고 썼다. 트럼프에게 비핵화나 미·북 관계의 진전은 이런 식으로 기념비적이 될 만한 일일 것이다.

트럼프는 긍정적 사고보다는 부정적 사고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그래서 늘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했다. 크게 욕심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북한 문제와 관련해 “서두를 것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트럼프는 “거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상대방을 설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때 북한에 경제 발전의 잠재력이 있다면서 북한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영상물까지 만들어서 보여줬던 것도 이런 식의 생각을 하기 때문일 수 있다.

‘거래의 기술’을 읽다 보면 그게 무엇이든 트럼프의 피를 끓게 하는 것은 전임 대통령 누구도 하지 못한 업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북한은 그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강인선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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