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조국(曺國) 사태에 이어 정국 키워드로 등장시킨 화두가 이른바 ‘공수처’다.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를 줄인 ‘공수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현재 2개의 안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돼 있다. 2개의 공수처안은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을 비롯한 의원 12명이 지난 4월 26일 발의한 이른바 ‘백혜련안’과 권은희 의원을 비롯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 의원들이 지난 4월 29일 발의한 이른바 ‘권은희안’이 있다. 후일의 역사를 위해 백혜련안 발의자 12인은 박범계·송기헌·이종걸·표창원·박주민·이상민·채이배·안호영·김종민·임재훈·김정호 의원임을 기록해둔다. 권은희안 발의자는 김동철·김관영·주승용·최도자·임재훈·이찬열·채이배·박주선·추혜선 의원임을 같은 이유로 기록해둔다.

우선 백혜련안은 ‘제안 이유 및 주요내용’에서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의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 실제 이런 취지와 기조로 설치된 홍콩의 염정공서,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은 공직자 비위 근절과 함께 국가적 반부패 풍토 조성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두 개의 공수처안은 대체의 흐름은 비슷하나 백혜련안이 홍콩의 염정공서와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을 벤치마킹한 반면, 권은희안은 홍콩과 싱가포르의 예를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혜련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홍콩의 염정공서(簾政公署)와 싱가포르의 탐오(貪汚)조사국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의안을 만들어 발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1974년 설치된 홍콩의 염정공서(ICAC·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와 1952년에 설치된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Corruption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은 그 설치와 운용에서 백혜련 공수처안이나 권은희 공수처안이 목표로 하고 있는 3부 요인(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된 수사기구와는 뿌리부터 다른 기구이기 때문이다.

백혜련안과 권은희안에 제시된 공수처의 수사와 기소 대상인 ‘고위공직자의 범위’는 ‘대통령,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 비서실 소속의 정무직 공무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무직 공무원’ 등으로 돼 있다. 3부의 최고위 공직자들을 모조리 열거하고 있는 셈이다. 권은희안에는 검찰총장도 수사와 기소 대상임을 명시해놓았다.

그러나 1974년 2월 15일 홍콩 입법국에서 관련 조례가 통과됨으로써 2월 17일 발족된 홍콩 염정공서는 발족 36년이 된 지난 2010년까지 모두 7만건의 공직자 부패를 수사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대부분 마약범죄 수사 경찰의 비리, 성접대를 받은 경찰 체포, 재벌 아들의 부정행위 적발 등에 그쳤다. 우리의 공수처안이 목표로 하는 국정 최고 책임자들의 일탈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 3부 요인들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염정공서(ICAC)가 발족되기 이전 홍콩 사회는 홍콩 시민들의 말처럼 “불을 끄기 위해 소방서에 연락해도 뒷돈을 요구하고, 경찰들은 마치 매일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부패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던” 사회였다. 그러다가 1973년에 발생한 경찰 고위책임자의 420만홍콩달러(약 5억원) 횡령과 해외도주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염정공서가 발족됐다. 행정수반인 역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보통 국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규모의 돈을 횡령하거나 남용해온 선례를 남긴 우리 사회와 염정공서를 발족시킨 홍콩 사회는 그 배경부터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경무처를 포함한 어떤 홍콩 정부 부문과 관계가 없는 독립적 반탐(反貪) 조직”이라고 스스로의 지위를 밝혀온 염정공서는 기구의 독립, 인사의 독립, 재정의 독립, 수사권의 독립 등 4가지의 독립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염정공서의 수사관이라 할 수 있는 ‘염정전원(簾政專員·Commissioner)’들은 홍콩 행정부 소속의 공무원 신분이 아니며, 인사도 전적으로 염정공서의 판단으로 이뤄진다.

재정도 홍콩 행정부의 소관이 아니며 행정수반만이 직접 독립 예산을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염정공서의 수사는 독립적인 수사권에 따라 진행되고, 필요할 때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 역시 총리 직속기구로, 조사국장은 총리의 제명(提命)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사에 대한 지시와 보고는 총리에게 한다.

중국공산당이 2018년 3월에 발족시킨 국가감찰위원회(The State Committee of Supervisory) 역시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인사권을 가지며, 위원회의 반부패 수사는 전인대의 감독을 받는다. 중국공산당의 경우 당원들의 부패에 관해서는 당의 기율(紀律)검사위원회가 수사를 해왔으며, 수사 결과 유죄가 인정되면 인민법원으로 넘겨 판결을 받는 관례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베이징·상하이·충칭 등 3개 직할시의 당 조직 최고책임자가 수사와 판결을 받고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경우는 있었어도, 당의 1인자인 당 총서기가 범죄혐의로 체포돼 수사와 판결을 받은 일은 없었다. 1989년 천안문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 총서기직을 상실한 자오쯔양(趙紫陽)의 경우 반혁명죄로 당 기율위원회의 조사가 이뤄져 출당처분이 내려졌었다.

공수처 백혜련안이나 권은희안이 대통령과 3부 요인을 수사와 기소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근거는 모호하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반부패 기구를 인용한 이른바 백혜련 공수처안은 그 기본 접근법에서 하위법인 법률로 대통령을 비롯한 헌법기관을 수사와 기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난센스 입법’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이 고위공직자 범죄의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라면 내란이나 혁명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을 포함한 3부 요인을 수사와 기소 대상으로 삼는 법안의 입법은 한 국가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기초부터 흔들어보려는 의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가능하다.

홍콩의 염정공서나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과정도 없이 이 기관들을 빙자해서 국가의 기본 체제를 흔들어놓을 수 있는 공수처안을 통과시키려는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저의가 과연 무엇인지 국민들은 마땅히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박승준 아시아 리스크 모니터 중국전략분석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