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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9호] 20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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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내 마음속 악마’는 누구에게나 있다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지난 5월 18일 애국순찰팀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정의기억연대 앞에서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의 사퇴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현 정의기억연대의 전신) 간 기부금 유용 논란을 보고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여야의 정파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고, 보수 대 진보 진영의 이념 문제도 아니며,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인간의 탐욕이 견제받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막장드라마다.
   
   지금 여러 가지 객관적 정황과 증거자료들로 볼 때 할머니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될 가능성이 크다. 할머니들에게 지급된 지원금, 할머니들의 쉼터란 명목으로 구입했던 부동산, 미심쩍은 공금 사용을 비롯한 부실회계 처리 등 내역을 조사해 보면 진위는 조만간 가려질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역사’와 ‘정의’, ‘민족’과 ‘양심’을 맨날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냐며 흥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 즉 돈·힘·성(性)을 향한 욕망은 귀천을 비롯해 그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다. 보수건 진보건, 돈이 많건 적건, 배운 사람이건 못 배운 사람이건, 성인군자건 범죄자건 말이다. 고려시대 노비 해방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 만적이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쳤듯이 탐욕의 씨도 누구에게나 다 있다. 나는 그것을 ‘내 마음속 악마’라 부른다.
   
   내가 ‘내 마음속 악마’를 알게 된 계기는 30년 전 사형수 취재를 하면서다. 세간을 놀라게 한 흉악범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는 차원에서였다. 이미 그 사람들은 사형 집행으로 저세상에 갔지만 나는 당시 수사관, 교도관, 교화요원, 사형 집행 시 입회한 종교인 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금 나이 50대 이상은 김대두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75년 8~10월 전국을 돌며 15명의 부녀자를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해 건국 이래 가장 악질적인 살인범이란 말을 들은 이였다. 그러나 교도관들은 그가 진솔하게 참회하고 모범적으로 수형생활을 하다 갔다고 기억했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타향살이를 하다 귀성길에 바가지 요금으로 구멍가게 주인과 다투다 소년원으로 끌려간 뒤 사람이 달라져버렸고 결국 살인마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교화요원에게 쓴 편지들을 보고서 나는 일자무식, 광폭한 성격의 소유자로만 알았던 내 선입견을 바꿨다.
   
   1986년 서울 강남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의 주역 고금석(당시 22세)은 유도대 출신 학생 주먹이었다. 그는 자기네 구역(나와바리)을 넘보는 프로 조폭들을 사시미칼로 잔인하게 살해해 사형집행대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수형생활 3년간 서울구치소 교도관들 사이에서 “저 친구야말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아니냐”는 평을 들을 정도로 불교에 심취해 모범적으로 살다가 갔다.
   
   1980년대 초 도박에 미친 28세의 한 교사가 자신의 중학교 1학년 제자를 유괴, 살인한 뒤 암매장했다. 당시 전국을 뒤흔든 그 유명한 ‘이윤상군 살해사건’의 범인은 유복한 집안에 명문대 ROTC 장교 출신인 주영형이었다.
   
   살인자와 사형수들의 살인 동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었다. 김대두는 후진국 시절 못살고 못 배우고 힘없고 무시당한 사람의 좌절, 분노를 극악무도한 형태로 표출했다.
   
   체력 좋고 씩씩한 고금석은 젊은이들이 가진 혈기와 의협심이 제어되지 못할 경우 얼마나 야수적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반면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주영형은 허망한 방탕에 빠져 제자를 죽이는 패륜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를 통해 우리는 악의 씨앗이 바로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 있음을 감지한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나는 그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들이 발현한 탐욕과 악이 내게도 내재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부금 유용 논란 사건도 이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내 편이니까, 그동안 시민운동을 하며 고생했으니까 식의 접근은 안 된다. 탐욕은 언제나 그런 ‘느슨함’을 파고들어온다.
   
   우리는 누구나 ‘내 마음속 악마(탐욕)’를 가지고 있다. 이 탐욕을 견제하는 것이 바로 각자 양심과 사회 시스템이다. 그러나 경험칙상 전자보다 후자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크다. 성인군자라도 마음속 탐욕을 쉽게 억누르기 어렵지만 사회적 견제 장치가 확실히 작동한다면, 다시 말해 누군가 그런 나를 볼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는 사회라면 탐욕은 쉽사리 행동화하지 못한다.
   
   과거 그런 견제 역할을 하는 기관이 경찰·검찰·국세청·감사원·공정위·국정원 등 사정·정보기관이었다. 이들에 의해 촘촘히 쳐진 감시망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공직자, 힘 있는 사람들이 함부로 비리를 저지르지 못했다. 게다가 언론이 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일부 탈선과 부패가 있긴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사회적 견제 장치가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어 사회가 계속 보완·발전해 ‘성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유전 무죄, 무전 유죄’의 현실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 전체가 그렇게 흘러갔다면 우리는 진작 몰락한 다른 독재국가들, 즉 필리핀, 중남미, 동구 공산권 꼴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유감스럽게도 ‘내 마음속 악마’를 견제할 수단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다.
   
   첫째, 지금 이 사회에선 ‘내가 선하고 내 편이 정의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 너무 많다. 정의를 내세운 장사꾼도 도처에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에는 ‘양심’ 대신 ‘내 마음속 악마’가 작동하기 쉽다.
   
   둘째, 요즘 집권여당의 행태를 보면 사정기관은 권력자 편에 서야 정의롭고, 권력자 편을 조사하면 불의로 인식되는 사회로 가지 않느냐는 우려를 들게 한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 사건 수사와 관련, 검찰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권력의 향배에 누구보다 민감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 ‘지지율 50% 이상’ 정권의 측근에 대해 칼을 겨냥한다면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거창한 정의와 개혁의 잣대와 검찰의 과거를 들먹이며 당파적이나 음모적 시간으로 공격하는 행태가 과연 정의로운 자세인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부금 유용 논란의 대상인 윤미향 전 정대협 대표(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 관련 논란도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만약 명백한 비리 가능성이 보여도 내 편은 정의라서 그냥 넘어가도 괜찮은 사회 분위기라면 희망이 없다. ‘내 마음속 악마’가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닐 수 있는 사회로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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