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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1호]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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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이성윤 지검장이 불러낸 검찰의 추억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난 1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제61대 검사장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할 질서와 법도가 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자식이라도 부모가 자식의 비행을 마냥 감싼다면 올바르지 못하다. 친구의 명백한 잘못을 옹호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사 그럴 순 없지만 되도록 사리분별을 따지고 사는 게 인간관계의 도리요,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유지된다.
   
   하물며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 따지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언론·수사·사법기관 종사자는 말할 것도 없다. 나아가 국정을 책임진 행정부의 장(長), 정당과 국회의원, 청와대와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생리상 자기 편끼리 감싸고도는 것을 일견 이해할 순 있지만 여기에도 정도(程度)가 있고, 금도(禁盜)가 존재한다. 나라를 이끌면서 아무리 자기 편이라도 범죄자, 위선자, 타락한 자까지 감쌀 순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언론도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정당한 비판도 내 편이 아닌 언론매체가 보도하면 색깔을 씌우고 음모론으로 만들어 버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7월, 조선일보가 정권의 잘못을 계속 보도하고 최순실의 뒤를 파다가 신문사 간부들에 대한 신상 털기 등의 공격을 받았다. 이후 2개월 뒤 최순실 문제가 불거지면서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 무너졌다.
   
   이게 언론이다. 조선일보도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오면서 비판받을 것이 왜 없겠는가. 조선일보의 보도에 섭섭한 사람이 왜 없겠나. 그러나 대체로 정도(正道)를 걸으려고 노력했고, 또 다른 한국의 유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언론의 힘이 모여 사회적 여론과 공론을 형성하고 결국 나라 발전과 한강의 기적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일각에선 마치 기자를 사주(社主)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과거 내가 기자로 일하던 독재정권 시대 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몸담은 신문에서도 사주와 기자 간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고 서로 흠을 잡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당시 억압적 상황에서 시국 사태를 보는 태도, 기사에 대한 판단 등에서 갈등이 상존했지만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을 위해 서로 노력했다. 정권 압력에 의해 보도가 통제되거나 각색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대통령과 정권 편에 서서 ‘마음껏’ 옹호하고 자신의 양심마저 속이진 않았다.
   
   그것은 당시 검찰도 마찬가지다. 경찰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시대적 악역을 맡아 공안사건 등 시국사건을 앞장서 처리했지만, 다른 한편에선 특수부·형사부 활동을 통해 권력층이나 기관의 범죄를 파헤치는 일에도 노력했다. 그럼으로써 5공 대표적 권력층 비리사건인 ‘이철희·장영자 사건’(1982)을 비롯 ‘부천서 권인숙 성고문 사건’(1986),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 등의 진상이 밝혀질 수 있었다.
   
   권인숙양 성고문 사건은 형사가 운동권 학생인 권양을 조사하면서 성추행을 벌인 사건인데 이것이 당시 인천지검 김수장 형사부장 이하 검사들의 적극적 수사로 사건 전모가 밝혀졌다. 취재하던 나도 검사들의 협조로 진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정권의 엄청난 압력으로 검찰도, 언론도 사건 진상을 공개하지 못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그러나 결국 이 수사 내용을 바탕으로 2년 뒤 사법처리가 실현됐다.)
   
   지금처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일부 검찰과 언론이 자발적으로 정권의 비리를 감싸고 옹호하고 ‘나팔수’가 되는 태도와는 대조된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1988년 10월 검찰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되면서 16년 만에 부활한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검찰총장은 2년 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관련, 검찰이 잘 수사해놓고 정권의 압력으로 유야무야된 수사 경위에 대해 “검찰의 독자적 판단이지 외부기관의 압력은 없었다”고 답변했다.
   
   물론 이것은 검찰총수의 어쩔 수 없는 ‘원론적 답변’이지만 그때 기사를 보도하지 못한 한(恨)이 있는 나로서는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검찰총장의 실명을 기사 맨 앞에 거명하며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칼럼(기자수첩)을 썼다. 한마디로 검찰이 거짓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 검찰총장과 나와의 인간관계는 끝이 났다. 사실 총장은 내가 졸업한 대학의 대선배였고 평소 인간적으로도 잘해준 이였다.
   
   돌이켜보면 만시지탄의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나는 검찰을 비판한 것에 대해선 후회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보도한 방식이다. 비록 검찰의 수장이긴 하지만 굳이 그 칼럼에 그 일에 관여되지 않은 사람의 이름 석 자를 거명하고 써야 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대단히 현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기자란 직업이 곤경에 빠진 사람의 억울함을 밝혀내 보도하는 일만 계속된다면 가장 축복받는 직업일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숙명적으로 남을, 더구나 강자를 비판하고 범죄행위를 파헤쳐야 하는 직업이다.
   
   나의 초년병 기자 생활은 주로 국민소득 2000~3000달러에 불과하던 후진국 군사독재 시절에 이뤄졌다. 그러나 그때는 제대로 일을 하려는 기자들이 제대로 일은 안 하고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기자보다 훨씬 많았다. 또 그런 경찰관, 검사, 판사, 관리, 군인들도 많았다. 그래서 국정이 이뤄지고 민심이 공론화돼 서슬 시퍼런 군사독재정권 내부로 흘러들어갈 수 있었다. 또 독재자 대통령과 측근들도 이를 내치지 않고 귀를 기울여 국정에 반영했다. 그래서 독재는 했지만 나라 발전은 계속됐었다.
   
   지금처럼 나라 전체가 패가 갈려 오로지 ‘내 편’이니까 봐주고 옹호하며, 반대로 ‘네 편’이니까 적이나 범죄자, 적폐세력으로 모는 시절보다 훨씬 나은 사회였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한 가지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작년 9월 조국 사태 이후 이른바 진보세력의 분화·분열이다. 최근 MBC의 ‘채널A 기자 강요 미수 의혹보도 사건’과 관련 한상혁 방통위원장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권경애 변호사 케이스를 비롯, 문재인 정권의 핵심 지지세력인 민변(民辮)과 참여연대 일부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진보논객 진중권, 참여연대 김경율(경제민주주의 21 대표), 대표적 진보학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진영논리를 떠나 옳고 그름을 따진다. 아무리 속이고 감추려고 해도 진실은 존재한다. 그리고 진실은 내 편, 네 편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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