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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9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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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생극장]대한민국의 功을 독차지하려는 세력들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jmedia21@naver.com 2020-10-22 오전 8:56:55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12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내가 만 4살 되던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수송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학생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이야기를 아침 밥상머리에서 들었다. 네 살배기라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구나 하면서 걱정하던 기억이 난다.
   
   다섯 살 되던 1961년 5·16군사정변은 아주 선명히 기억이 난다. 아침 일찍 일어나시는 할아버지가 켜신 KBS 라디오를 통해 박종세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들었다. 또 주동자인 박정희 소장의 혁명공약 선포도 기억이 난다. 내가 살던 곳은 서울 후암동이었는데 아침에 남산에서 군인들이 혁명 성공 의미에서 하늘에 대고 쏜 총소리도 들었다.
   
   당시는 국민 다수가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어른들은 군인들의 ‘혁명’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고, ‘그냥 앉아서 당하는 것보다는 젊은 군인들이 뭔가 일을 해서 나라를 바꿔 보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들이었다.
   
   코흘리개 어린 나이에도 변화는 금방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놀이터였던 남산 여기저기에 신작로가 나고, 야외음악당이 들어서고 어린이 놀이터가 생기고, 얼마 후엔 케이블카란 것이 등장했다. 아침마다 라디오에선 ‘국민 재건체조’가 흘러나와 아침 체조로 하루를 시작했다.
   
   당시 엉망인 교통질서를 잡기 위해 헌병들이 거리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들을 단속해 새끼줄로 친 격리구역에 세워놓고 ‘창피’를 주곤 했다. 군대 간 삼촌이 휴가 나올 때 건빵과 함께 만화를 갖고 나왔는데 ‘외래품 배격과 국산품 애용’ ‘사치풍조 일소 및 근검절약 생활풍조 배양’ ‘대한민국은 아름다운 금수강산, 잘 가꾸어 자손 대대 넘겨주자’ 등등의 국민계도용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1963년 말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장군이 호남에서만 100만표가 넘는 몰표를 더 받으며 민주당 윤보선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된 일, 이후 바로 시작된 한·일 국교정상화 및 한·일 청구권자금 요청,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로 인한 1964년 6·3 계엄 발동, 이어 계속된 비둘기부대·맹호부대·청룡부대·백마부대 등의 베트남 참전, 1966년 경부고속도로 건설 추진 등이 이어졌다. 역시 같은 해 육사 출신인 김현옥 서울시장이 취임해 강남 개발을 비롯 서울과 수도권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사업들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6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이 세월은 참으로 대단히 감사한 시절이었다. 누구나 겪듯이 나도 개인적으로 힘든 때도 있었고, 국가적으로 시련, 위기들도 있었지만 참으로 잘 극복해 감사하다. 그리고 지난 60년 동안의 어려움은 우리 위 세대나 조상들이 겪었던 외적의 침입과 국난,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 망국, 식민시대, 전쟁, 가난 등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힘들었다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양식과 상식이 있었고 가족·이웃 간에 정(情), 신의(信義), 의리(義理) 같은 것이 존재했다. 아무리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정부 비판기사가 제대로 못 나간다 하더라도 기자도, 공무원도, 정치가도, 심지어 청와대 사람들도 민심을 알았고 무서워할 줄 알았다. 하물며 시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불가피한 독재가 있지만 이것은 과도기며 나라는, 경제는, 가정은 앞으로 전진했고, 의식주는 늘어나는 시절이었다. 취직도 잘되었고, 장사도 잘 굴러갔으며, 이 좁은 땅을 벗어나 원양어선, 독일, 베트남, 미국, 중동 등 세계 전역으로 한국인들이 달려나가 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현명했다. 지도자의 올바른 비전과 계획, 이를 뒷받침하는 테크노크라트를 중심으로 한 인재들의 실행력, 그리고 국민의 헌신과 노력, 피와 땀 속에서 많은 걸 이뤄냈다. 그 과정에 독재와 부정부패, 비리도 존재했지만 이는 주류(主流)가 아닌 지류(支流)였고 인간 사회에 있어 불가피한 것들이기도 했다. 훗날 내가 기자가 되어 우리를 롤모델로 보고 뛰고 있는 많은 아시아 국가, 또 우리보다 앞서간 구미 각국들을 지켜보면서 인간과 사회의 발달사는 다 비슷하게 굴러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념서적이나 대학가에서 풍미하던 40~60년 전 운동권 담론과는 전혀 다른 현실적 인식이다.
   
   지금은 서울에서 내집 마련조차 요원하게 된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국민주택을 건설해 싼값에 장기 저리로 ‘내집 장만’을 할 수 있었다. 대학 다니던 1977년, 당시로선 전혀 생소했던 의료보험제도 실시를 신현확 보건부 장관이 발표한 것이 기억난다. 우리나라 산의 대부분이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는데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하고 학생, 군인, 직장인이 총동원돼 산림녹화사업을 범국민적으로 실시했다. 이어 그린벨트 제도가 도입돼 환경보호가 엄격하게 시행되면서 오늘날의 울창한 산림을 가질 수 있게 됐다.
   
   1961년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인당 82달러 정도로 지구상 최후진국 수준이었다. 아프리카 가나와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개조를 위해 돈이 필요했는데 한·일협정, 베트남 파병, 중동 진출, 수출입국 정책, 경쟁력 있는 대기업(재벌) 육성 등이 불가피했다. 시의적절하고 현명한 정책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전 세계가 다시 보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코로나19 방역 대응’은 이런 수십 년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다. 우수한 보건의료체계 인프라와 의료 종사자, 전문가, 이들을 뒷받침해주는 행정력, 그리고 공통체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국민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군 나라의 모든 공(功)을 독차지하려는 세력들이 있다. 그들은 정작 이 나라를 세운 주인공들을 ‘나쁜 세력’으로 낙인찍어 몰아내고 있고, 오직 자신들의 젊은 시절 행위가 최고이며 이를 자자손손까지 세습시키려고 한다. 이들이 하는 행색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역사, 국기, 애국가 등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을 우린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아주 오래전에 읽은 미국 단편소설이 생각난다. 잘생기고 언변 좋은, 그러나 근본을 모르는 젊은 부부가 어느 노인 부자가 사는 저택을 방문한다. 그들은 특유의 언변과 친화력으로 노인을 구워삶아 결국 대리인 행세를 하며 그곳에 오래 봉직했던 집사, 하인들 위에 군림한다. 사실상 모든 것을 좌지우지한다. 결국 노인은 죽고, 그들이 법적 주인으로 승계됐다. 그들은 전에 일하던 사람들을 다 내쫓고, 그 집을 호텔로 운영하며 부자로 호의호식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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