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 내 데이노니쿠스 골격 전시품. 공룡이 변온동물이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가 된 게 데이노니쿠스에 대한 연구다. ⓒphoto 위키피디아
미국 시카고 필드자연사박물관 내 데이노니쿠스 골격 전시품. 공룡이 변온동물이 아닐지 모른다는 단서가 된 게 데이노니쿠스에 대한 연구다. ⓒphoto 위키피디아

6500만년 전까지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 공룡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후기에 나타나 쥐라기와 백악기에 번성했다. 그러다가 백악기 말, 약 1억6000만년이나 번성하던 공룡이 갑자기 멸종되었다. 갑작스러운 멸종은 인류에게 많은 궁금증을 남겼다. 그중 가장 큰 논쟁은 공룡의 체온에 대해서다. 변온동물이냐 항온동물이냐였다.

공룡이 생물학적으로 어디에 속하는지는 19세기 연구에서부터 시작했다. 공룡이 남긴 것은 뼈와 이빨, 알, 발자국, 그리고 살갗의 화석이 전부다. 분류학자들은 이러한 화석 증거로 공룡을 분류해냈다. 초창기 연구에서 학자들이 추정한 공룡은 파충류에 속했다. 머리뼈 화석이 파충류의 특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머리뼈의 눈구멍 뒤에 두 쌍의 구멍이 발달했고, 이빨이 치조에 박혀 있었다. 구멍은 파충류가 입을 닫았을 때 큰 턱 근육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파충류가 다른 척추동물들보다 더 크고 강력한 턱 근육을 발달시킬 수 있었던 이유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행동 또한 파충류의 특성과 맞아떨어졌다. 엉치뼈나 등뼈, 다리뼈의 구조는 지금의 파충류와 조금 다르지만 걷거나 뛸 때, 발톱으로 땅바닥을 긁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영락없이 파충류였다. 심장의 구조 역시 포유류의 2심방2심실이 아닌, 2심방1심실 구조다. 이는 전형적인 파충류만의 특징이다.

‘관성 항온설’ 등장

골격학적인 증거 외에 드물게 보존된 공룡의 피부 화석 또한 파충류의 비늘과 같다. 포유류처럼 새끼를 낳지 않고 알을 낳는다는 것, 수유가 가능한 신체기관(유선·乳線)이 없다는 사실도 변온동물인 파충류로 추정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다. 더구나 쥐라기는 공룡을 비롯해 파충류가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1964년 데이노니쿠스(Deinony -chus)의 화석이 발견된 후, 공룡의 변온동물설은 심각한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데이노니쿠스가 시속 30㎞ 정도의 속력으로 달리다가 점프를 하면서 사냥했을 거라는 증거가 나왔기 때문이다. 변온동물은 이렇게 민첩한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또 추운 기후에서 살았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학계는 혼란에 빠졌다.

동물이 정상적인 신체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이 정상보다 내려가면 신진대사가 느려져 제대로 움직일 수 없고, 체온이 너무 올라가도 세포의 활동에 이상이 생겨 원활히 활동할 수 없다. 따라서 동물은 저마다 일정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그 방법에 따라 변온동물과 항온동물로 나뉜다.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다. 변온동물은 따뜻하게 체온을 유지하는 생물학적 장치가 없어 주변의 온도에 따라 체온이 바뀌는 동물을 말한다. 외부, 즉 태양으로부터 열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체온이 떨어지면 태양을 바라보며 일광욕을 한다. 반대로 오후에 체온이 너무 올라가면 물속이나 시원한 그늘로 들어가 체온을 떨어트린다. 양지와 음지를 오가면서 외부의 열을 이용하여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식지가 아닌 곳이나 극단적인 추운 환경에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이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준 가설이 ‘관성 항온설’이다. 이는 변온동물이라도 체격만 충분히 크면 추위 속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이다. 미국 퍼듀대학의 프랭크 팔라디노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장수거북은 수온이 7.5℃에 불과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체온을 25.5℃로 유지한다. 비결은 커다란 몸집. 장수거북은 등딱지 길이가 약 2m에 몸무게가 최대 700㎏인 헤비급 파충류다. 몸집이 워낙 크다 보니 외부로부터 받은 열에너지가 몸안에 축적돼 마치 항온동물처럼 안정되게 체온을 유지시킨다.

공룡학자들은 몸집이 큰 공룡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낮 동안 햇빛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열로 추운 기후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외부 에너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자체적인 에너지 사용량, 즉 대사율이 낮아 한번 체온이 오르면 쉽게 바뀌지 않은 셈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 파충류를 흔히 ‘냉혈동물’이라고 부르는데, ‘차가운 피’를 뜻하는 ‘냉혈(冷血)’이란 단어는 명백한 오류다. 강한 햇볕을 쬐고 있는 사막의 도마뱀은 피가 매우 뜨거울 수도 있다. 정확한 표현은 ‘변온성’이다. 반대로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체계는 ‘항온성’이다.

1980년 중반부터 항온동물로

‘관성 항온설’이 완벽했던 건 아니다. ‘항온동물’은 먹이로 섭취한 에너지를 열로 전환하여 체온을 유지한다. 체열을 몸속에서 만들어내기 때문에 추운 극지방이나 겨울에도 활동할 수 있다. 현생 조류와 포유류는 항온동물이다. 이들은 활동적이어서 에너지를 빠르게 소비한다. 따라서 같은 크기의 변온동물보다 5~10배에 가까운 양의 먹이를 먹어야 한다. 체중이 4t인 코끼리의 경우 하루에 약 300㎏의 먹이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먹는다.

이렇게 계산하면 공룡 역사상 가장 큰 거구를 자랑하는 100t의 세이스모스사우루스(Seismosaurus)의 경우 하루에 30만㎏씩 먹어야 한다. 하지만 초식공룡이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음식량에는 한계가 있다. 변온동물은 체온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먹고도 살 수 있다. 뱀의 경우 한 달에 한 번만 먹이를 먹어도 된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개나 고양이를 만나기는 힘들어도 뱀이나 도마뱀을 만날 수 있는 이유다.

또 항온동물은 신진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몸 바깥으로 방출해야 하는데 초식공룡은 이 과정 자체가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날씨가 더울 때 땀을 흘리거나 근육 사용량이 많을 때 헐떡거리는 등의 행위로 열을 배출한다. 코끼리는 끊임없이 커다란 귀를 펄럭거려 몸의 열을 식힌다. 하지만 거대한 초식공룡은 몸을 식힐 방법이 없다. 따라서 공룡을 항온동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공룡은 ‘항온동물’로 귀결되기 시작했다. 공룡의 골격 구조나 알이 조류와 비슷한 점이 발견되면서 공룡이 조류에서 진화했다는 학설이 등장했고, 따뜻한 피를 가졌다는 연구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으로 볼 때 공룡은 악어보다는 조류와 공통점이 더 많다. 예일대학의 교수 존 오스트롬은 몸집이 작은 육식공룡과 조류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 고리가 있음을 보여 주었다. 쥐라기 후기의 시조새는 100년이 넘도록 최초의 새로 생각되었지만, 깃털이 없다면 코엘루로사우루스류 공룡이라는 것이다. 1990년 후반에는 코엘루로사우루스의 공룡들에서 깃털이나 깃털과 비슷한 구조가 발견되면서 공룡과 조류의 연관성은 더욱 강력해졌다. 또 공룡 알이 파충류 알보다는 조류 알과 더 흡사하고, 육식공룡의 뇌가 크다는 사실이 밝혀져 항온동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었다.

또 미국의 고생물학자 로버트 바커는 초식공룡의 화석이 많은 데 비해 육식공룡의 화석이 드문 것을 보면 육식공룡은 매우 많은 양의 먹이를 필요로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과학자들은 공룡 뼈의 현미경적인 구조가 포유류와 비슷하며, 지금 살아 있거나 화석으로 발견되는 파충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다.

공룡이 따뜻한 피를 가졌다는 주장도 제기돼 항온동물에 힘을 실었다. 육식공룡의 뼈 화석에 남아 있는 혈관의 흔적을 찾아내면서부터다. 항온동물은 변온동물보다 뼛속 혈관이 더 발달돼 있다. 혈관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있을수록 신진대사가 빨라져 체온을 효율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파충류 아닌 항온동물 쪽에 힘 실려

그렇다고 공룡을 간단하게 항온동물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여러 부분에서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최근 공룡학자들은 공룡이 항온도 변온도 아닌, ‘중온동물’이라는 특수한 동물이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룡의 체온은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지난 10월 13일, ‘중온동물’ 쪽에 힘이 실리는 연구가 나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대학 LA 캠퍼스(UCLA) 로버트 이글 교수팀이 백악기 시대 몽골과 아르헨티나 지역에 살았던, 공룡의 알 화석에 포함된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당시 공룡의 몸 내부 온도를 측정하는 데 성공한 것. 화학적 분석을 통해 특정 공룡의 체온을 측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신문 워싱턴포스트는 이 연구로 ‘공룡 체온에 대한 150년간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을 날이 가까워졌다’고 보도했다.

이글 교수팀의 분석 결과, 8000만년 전 거대 초식공룡인 ‘티타노사우루스(Titanosaurus)’의 체온은 37.8℃, 7500만년 전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체온은 32.2℃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조류보다 낮고 파충류보다는 높은 중간치이고, 또 당시 외부 평균 온도인 26도보다 더 높은 온도다. 이는 ‘공룡이 외부 열을 통한 온도 조절이 아니라, 체내에서 열 발생을 통해 포유류처럼 높은 체온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의미’라고 이글 교수는 설명한다.

공룡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가 공룡이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단계였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열쇠라고 평가한다. 공룡을 단순히 파충류나 조류로 규정하기보다는, 파충류와 조류 사이를 이어주는 진화의 한 단계로 볼 수 있는 연구라는 것. 공룡이 변온동물이든 항온동물이든 지금의 파충류와는 판이한 동물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룡을 분류학적으로 파충류도 포유류도 아닌 공룡류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한 결론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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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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