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오억육천, 육천, 육천.” “탕!”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에 도전했던 이중섭(1916~1956)작가의 유화작품 ‘황소’의 한판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기록경신은 없었다.

지난 6월 29일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경매장. 2007년 45억2000만원으로 박수근의 ‘빨래터’가 기록한 최고가에 이중섭의 ‘황소’가 도전장을 던지며 관심을 모았던 타이틀 매치 현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경매시간인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서울옥션스페이스엔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 기록경신의 현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 취재진 등 300여명이 몰려 빅 세일에 쏠린 미술계 안팎의 관심을 보여줬다. 서울옥션에 있다가 독립한 박혜경 경매사(에이트 인스티튜트·43)가 단상에 오르자 시선이 집중됐다. 국내 여성 1호인 박 경매사는 최고의 승부사로 평가받고 있다. 3년 전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 기록도 바로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지난 6월 29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황소’ 경매 현장.
지난 6월 29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황소’ 경매 현장.

드디어 ‘황소’ 차례가 됐다. 일순 장내엔 기대와 함께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시작가는 34억원. “삼십사억이천” “삼십사억사천”…, 2000만원씩 호가가 뛸 때마다 경매 패널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했다. 전화 응찰도 따라붙었다. 그러나 ‘황소’는 힘차게 출발한 지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35억6000만원에서 주저앉았다. 호가를 외쳐대던 박 경매사의 손에 들린 망치도 싱겁게 내려왔다. 미술 시장 회복 기대 속에 “어게인! 2007”을 외쳤던 이중섭의 황소는 전화 응찰을 통해 개인미술관에 35억6000만원에 팔렸다.

서울옥션 이학준 대표는 “기록경신을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다”고 말하면서 “2007년 이후 30억원 이상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고가미술품 시장이 미술시장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에 하반기 미술시장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이중섭 ‘황소’의 새 주인이 된 ‘개인미술관’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엔 “미공개가 원칙”이라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이중섭 작품의 최고가는 2008년 서울옥션에서 팔린 ‘새와 애들’로 15억원이었다. 2005년 위작 파문을 딛고 조심스럽게 시장에 나온 이중섭의 ‘황소’는 박수근의 기록을 깨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최고가를 훌쩍 넘기면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이중섭 작 ‘황소’
이중섭 작 ‘황소’

이중섭의 대표 작품인 ‘소’가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소’ 작품은 홍익대 박물관의 ‘흰소’를 비롯해 12~13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경매의 주인공 ‘황소’는 이중섭과 동향인 평남 출신 박태헌(87)씨가 1955년에 구입해 평생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옥션 측은 경매가 있기 전 “박씨가 좋은 일에 쓰겠다며 작품을 내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상반기 마지막으로 열린 서울옥션의 117회 메이저 경매에서는 이중섭의 작품 이외에도 김환기의 ‘영원한 것들’이 21억원, 이우환의 ‘점으로부터’가 9억2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블루칩 작가들의 고가 작품이 팔리면서 낙찰률 70%, 낙찰총액 92억4715만원을 기록했다.

서울옥션의 상반기 총 낙찰총액은 209억6543만원으로 작년 하반기(107억8537만원)의 2배에 가까운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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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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