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 강사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학교에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지만 학원에선 두 눈을 부릅뜨고 공부할 만큼 한국의 사교육은 가히 세계 최강이다. 지난 7월 12일, 세계 최강이라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에서도 ‘절대강자’로 불리는 학원 기업 ‘메가스터디’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을 맞았다. 2000년, 당시 용어조차 낯설 만큼 혁명적이던 ‘인강(인터넷 강의)’을 선보이며 단숨에 대학 입시와 사교육 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던 메가스터디. 누적 회원 수 277만명, 전국 2225개 고등학교(2009년 교육통계서비스) 중 단 세 학교를 제외하곤 모든 고등학교에 메가스터디 등록 학생이 있을 만큼 입시생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2000년 5억7000만원 남짓하던 매출은 2006년 1000억원을 돌파하더니, 2009년엔 2380억원을 훌쩍 넘겼다. 10년 새 무려 410배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만들어냈다. 현재 시가총액만 1조원(7월 23일 기준)을 훌쩍 넘기며 쟁쟁한 기업들 사이에서 코스닥시장 8위에 오를 만큼 자본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상장사 평균 영업이익률이 10% 정도인 상황에서 최근 3년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35%에 이르고, 무차입경영과 유보율 8000% 넘는 지표는 메가스터디에 ‘건실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지난 10년간의 성장만큼 메가스터디라는 이름 뒤엔 ‘한국 사회의 필요악’ 혹은 ‘개혁 대상 1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사교육을 통해 돈을 벌어왔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늘 함께했다. 메가스터디는 교육을 산업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놀라운 기업’인 동시에 “EBS 수능 연계 강화 같은 정부의 사교육 억제 정책이 결국은 메가스터디를 향한다”는 말이 생길 만큼 공적(公敵)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게 사실이다.

나의 경쟁력? 최고의 강의죠!

7월 20일 서울 서초동 메가스터디 사옥에서 만난 손주은(49) 대표에게서 ‘메가스터디와 손주은의 지난 10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손 대표는 “‘벌써 10년’이란 생각이 들 만큼 숨차게 달려 왔다”며 운을 뗐다. “1996년 서른여섯이 되면서 학교가 아닌 사교육 시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산 삶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그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느낀 점이 ‘사교육은 불평등한 교육을 유지, 심화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사교육에 몸담는 일은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강사생활 하면서 돈을 좀 벌어서 그랬는지, 조금은 편하게 사교육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교육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손사탐(손주은사회탐구)’이라는 학원가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스타 강사로 떠올랐다. 1999년 유행처럼 번졌던 PC통신 ‘유니텔’을 통해 현재 ‘인강’의 초창기 버전을 선보였고 2000년 본격적인 인터넷 강의로 무장한 메가스터디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학원이 아닌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먹은 후부터 자꾸 찝찝한 겁니다. ‘돈은 사교육판에서 번 놈이 그 돈으로 공교육(학교)을 한다?’ 그럴 듯한 명분처럼 포장은 했지만 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거지요. 사교육자(학원강사)로 살면서 얻지 못했던 명예나 보상욕 같은 게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교육(학교)은 미련 없이 접고,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았지요. 결국 다시 사교육이 남더군요. 결론은 사교육으로도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것이었습니다.”

메가스터디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에게 메가스터디의 경쟁력이 뭐냐고 묻자 “학교나 EBS에서 만나기 힘든 최고 품질의 강의 아니겠냐”며 웃는다. 그리고 입시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어주기 위해 열고 있는 무료 입시·학습 설명회와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점수 입력만으로 학생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주는 시스템, 공부 재미와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습 프로그램 등이 메가스터디만의 경쟁력과 차별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경쟁력이라고 말한 것들이 공교육 현장인 학교에서는 이루어지기가 힘들다고 했다.

“‘교육과 서비스를 학생들에게 제공한다’고 했을 때 그 서비스를 해주는 입장에서 부가가치(돈)를 얻을 수 있어야 힘도 나고 더 열심히 하겠지요. 하지만 학교는 교사들에게 만족할 만한 대가(돈)를 주는 구조가 아닙니다. 한두 교사가 정말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우리 이상의 교육과 서비스를 해 줄 순 있겠지만 학교 전체가 그러기에는 역부족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기업이 담당하고 있는 사교육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 선봉장’ 꼬리표 억울합니다”

손 대표는 ‘손주은’과 ‘메가스터디’라는 이름이 ‘사교육 확대’를 가리키는 부정적 단어로 쓰이는 현실에 대해 “오히려 공교육이 하지 못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단초를 만들어 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충청도나 강원도, 경상도나 전라도의 시골지역처럼 학원 한 곳 찾기가 쉽지 않을 만큼 교육여건이 열악한 곳의 학생이 서울 강남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동일한 강사에게서 동일한 품질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그동안 한국 교육이 만들어 놓은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수백, 수십만원짜리 학원 강의를 받지 않아도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소득의 격차만큼 벌어졌던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 게 아닐까요.”

그는 메가스터디가 천문학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가계의 사교육비를 줄여준 기업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리곤 자신을 따라다니는 ‘사교육의 대부’ ‘사교육 선봉장’ ‘사교육 분위기 메이커’ 등의 별칭이 ‘시각적 착시’가 만들어낸 오해를 ‘섹시함’을 좇는 언론과 사회가 ‘낙인(烙印)’처럼 찍어버린 결과라고 말했다.

“어느 날부터인지 메가스터디가 시가총액 1조원이니 2조원이니 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게 기업과 경영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아니 학원이 사교육해서 1조, 2조 번 거야’ 같은 반응으로 이어진 거죠. 이렇게 되다보니 ‘사교육 규모가 이 정도였어’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사람들의 시선은 몇 가지의 이야기들 중 가장 ‘섹시’하고, 자극적이고, 네거티브한 것에 꽂힐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는 또 너무도 쉽게 ‘사교육은 잘못된 교육’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뒤에선 그 잘못된 교육을 찾고 있는 한국 사회와 사람들의 이중성이 손주은과 메가스터디를 사교육의 선봉장으로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렇게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겐 ‘자기 정당성’이라는 것을 찾기 위해서라도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그 희생양이 여느 학원 기업들보다 눈에 잘 띄었던 메가스터디였던 것뿐입니다.”

사교육 잡는 정책이 되레 사교육 키워

시원한 에어컨 기운이 가득한 공간이었지만 그와 함께 한 시간이 이어질수록 대화는 열기를 뿜어냈다. 하늘색 남방이 땀에 젖어 짙은 파란색으로 변할 정도로 그는 그동안 메가스터디와 손주은이라는 이름이 ‘사교육의 전령사’처럼 비쳐지고 있는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듯싶었다.

손 대표는 “지금 우리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현실은 ‘교육 실종 시대’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내 놓았던 교육정책을 찬찬히 뜯어보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의 고민이 아닌 온통 사교육비 억제만을 고민한 정책들이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딱 꼬집어낼 순 없지만 사교육비가 가계에 부담이 되면서 너도나도 “사교육이 문제”라고 말하는 세상이 됐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았던 방법들이 오히려 교육을 얽히고설킨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복잡한 교육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가계의 사교육비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교육 정상화라고 이름 붙여졌던 정책이 낳은 복잡한 교육은, 손쓰기조차 쉽지 않은 급격한 비용증가를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엔 돈에 앞서 노력과 열정만으로도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공부로 이룬 성공’을 통해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던 교육구조였지만, 현재는 원천적으로 이러한 구조가 불가능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의 교육은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뺏기지 않고 더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교육이지요. 학생이 공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구조예요. 정시, 수시, 거기에 입학사정관제까지 암호 같은 대학입시에서 출발해, 대학원이며 전문대학원은 물론 유학까지. 또 언제부터인지 생겨나고 있는 수없이 많은 인증시험과 자격증 등등 어지러울 만큼 복잡한 과정을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계층은 결국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계층일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처음부터 돈이 있어야 하는 교육으로 만들어버린 거죠.” 그는 이러한 구조를 “진입장벽”이라고 표현했다.

학원 그 이상의 새로운 프로젝트 추진

국내 최대 학원기업을 일군 오너 경영자이자 학원가를 주름잡던 스타 강사 출신의 교육자 손주은에게 우리 교육산업의 미래를 묻자 “더 이상 입시 중심의 교육산업은 희망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구 구성상 학생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이유이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열망 중 하나가 늘 ‘필요악’이라고 말하는 사교육의 축소이지 않습니까. 결국 사회는 구성원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교육산업의 패러다임이 지식산업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했다. 수명이 늘어나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의 폭이 확대되면서 나타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교육산업을 이끄는 기업인으로서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가르치기만 하는 학원이 아닌 놀이와 공부는 물론 삶을 살아가는 자세까지 배울 수 있는 학원 이상의 학원, 지식산업을 이끄는 기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10년 안에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다른 일을 찾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늘 그 고민 속에 살았지요. 그러다 2006년 매출 1000억원을 넘기면서 그 고민을 지우고 살았습니다. 올해 다시 제 머릿속에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다시 그 예전 고민이 찾아오더군요. 머릿속에 그린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2015년에는 은퇴하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 합니다.”

교육을 산업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며 ‘교육벤처’의 신화를 만들기도 했고 ‘사교육 선봉장’ 논란도 불러왔던 열 살의 메가스터디. 그 열 살짜리 메가스터디에 대해 손주은은 “사교육판에서 살아온 내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인생 그 자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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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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