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부문화연구소 비케이 안 소장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기부문화연구소 비케이 안 소장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18일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펀드레이저(Fund Raiser) 취재를 위해 국제백신연구소에서 펀드레이저로 일하고 있는 손미향 본부장을 만났다.

손 본부장이 펀드레이저로 일하고 있는 국제백신연구소는 우리나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최초의 국제기구다. 개발도상국에서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일을 한다. 2003년부터 국제백신연구소에서 펀드레이저로 활동하고 있는 손 본부장은 “가끔 ‘내가 당신 보고 기부하는 거요’ 하는 말을 듣는데, 그럴 때마다 ‘나를 보고 기부하는 거면 하지 마라. 우리 단체의 미션을 알고 함께하고 싶을 때 하라’고 말한다”고 했다. “사람을 보고 기부하는 것은 결국 빚이 되는 거죠. 기금을 모으는 일은 돈을 끌어오는 게 아니라 기부자에게 비전을 세워주는 일이에요. 그래서 펀드레이저는 비전 빌더(Vision Builder)입니다.”

올해 한국고용정보원은 ‘직업세계의 변화와 신생직업’이란 보고서를 통해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으로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자, 증강현실 엔지니어, 다문화 언어 지도사와 함께 펀드레이저를 꼽았다. 펀드레이저란 기금모금자로 단체의 필요에 따른 자금 규모를 분석하고 개인이나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는 직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펀드레이저’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에는 전문 펀드레이저 자격증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정당, 대학, 병원 등에서는 유능한 펀드레이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노력한다.

국내에도 전문 펀드레이저 양성 기관이 있다. 한국기부문화연구소다. 지난 5월 18일 서울 강남구 방배동에서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 비케이 안(58)씨를 만났다. 미국 환경청에서 환경 전문가로 일하던 안씨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공인 모금 전문가 자격증(CFRE· Certified Fund Raising Executive)을 딴 인물. 미국에서 펀드레이저로 활동하다가 2007년 한국에 기부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대학, 병원, 국제기구, 교회, 예술문화 단체 등의 모금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스토리텔링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다.

“펀드레이징은 경청”이라고 말하는 안 소장은 “경청을 통해 펀드레이저와 기부자가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고 이해하는 과정이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펀드레이저로 활동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펀드매니저처럼 펀드레이저도 끌어온 돈의 몇 %를 커미션으로 먹는 게 아니냐’는 것이란다. 안 소장은 “펀드레이징은 공익을 위해 하는 것”이라며 “약자의 요청을 받아서 있는 사람에게 요청하는 자리가 펀드레이저라는 것을 안다면 커미션을 받는다는 오해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펀드레이저는 기금을 많이 모아도 정해진 월급만 받는다.

모금의 중요성을 깨달은 기업의 CEO(최고경영자)나 의사, 변호사들이 모금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한국기부문화연구소를 찾아오지만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안 소장은 “모금은 베깅(begging), 즉 구걸이 아니라 요청(asking)인데도 구걸로 오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정치인은 ‘요청하기 싫어서 내가 이 자리에 왔는데 지금 내가 어떻게 요청을 하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오히려 요청하기 위해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에요.” 요청을 낮게 여기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에 한국에서 모금 전문가를 양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안 소장의 지적이다.

안 소장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요청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큰 뜻이 있기 때문에 당당히 요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하버드대 입학사정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보는 것이 ‘공익을 위해 요청해 본 경험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본인이 뜻을 세우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을 중요한 능력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소장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UN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길 희망하는데 국제기구에서 원하는 인재 또한 펀드레이징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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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슬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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