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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163호]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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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저고리는 어떤 속옷보다 섹시한 옷”

‘저고리 변천사’ 책 펴낸 한복디자이너 김혜순

이비치  인턴기자·경희대 4년 

▲ 한복디자이너 김혜순씨는 저고리를 통해 우리나라 복식 문화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photo 정복남 영상미디어 기자
“여자의 저고리는 그 어떤 란제리룩보다도 섹시한 옷입니다. 배꼽을 내놓고 가슴과 등을 훤히 드러내놓은 옷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눈으로 본다면 몸 전체를 감싸는 형태의 우리 옷이 어떻게 섹시하다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 옷에서 나타나는 성적 표현은 노골적이지는 않아요. 노출과 은폐를 통해 은근하게 나타나죠. 말하자면 섹슈얼리티가 아닌 에로티시즘입니다.”
   
   국내 대표 한복디자이너 김혜순(54)씨는 최근 저서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김영사)를 펴내고 여성 저고리 변천사를 선보였다. 시대에 따른 저고리 변화는 곧 그 시대 여인네들의 삶의 변화를 반영한다. 김씨를 만나 저고리 속에 숨은 한국 여인의 은밀한 삶을 들여다봤다.
   
   
   억압받는 여인들의 작은 반란
   
   핫팬츠·발레치마 등의 유행은 21세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비슷해 보이는 전통 복식에도 트렌드가 있었다. 치마 길이로 시대의 변화를 읽는 지금과는 달리 옛 여인들은 저고리에 다채로운 변화를 주었다. 억압받는 여인들의 작은 반란이기도 했고,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이 되기도 했다.
   
   저고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저고리 길이다. 또 몸에 밀착되는 저고리 형태와 속옷이 겉옷화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중기를 기점으로 저고리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다. 19세기에는 저고리 길이가 매우 짧고 폭이 좁아져서 가슴을 가리기조차 어려운 형태까지 변해 가리개용 허리띠를 만들어 착용할 정도였다.
   
   “가리개용 허리띠는 저고리 아래로 드러나는 속살을 숨기기 위한 것이지만 가슴과 허리 전체를 감싸 가슴과 허리선을 드러내며 오히려 강조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짧은 저고리 아래로 드러난 가는 허리는 개방적이며 에로틱한 아름다움을 표현하죠. 은폐와 동시에 노출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에로틱한 복장 양식이 엄격한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비롯됐을 것이라 추측한다. 조선시대 여성은 정숙한 여성상을 강요받아 신체 노출을 꺼리는 것은 물론 낯선 사람에게는 얼굴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수동적으로라도 남성들에게 보여지길 원하는 여성의 심리와 정숙함을 강요받는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불만이 혼재되어 에로틱한 저고리 양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이끌었던 것은 기녀들이었는데 놀라운 것은 양반 부녀자들이 따라했다는 겁니다.”
   
   전통복식연구가인 그가 책을 발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03년 자신이 직접 준비한 ‘저고리 600년 변천사’ 전시회 이후였다. 당시 김씨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16세기 안동 권씨 집안의 저고리를 비롯해 17세기 완산 최씨, 18세기 한산 이씨, 19세기 풍천 임씨 등 60여점의 저고리를 재현 또는 부분적으로 복원해 선보였다.
   
   “여성 한복 하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저고리죠. 어느 순간 저고리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한복은 다 똑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저고리 패션의 변천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옛 여인들의 섬세한 미감과 정성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고리를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100여점의 저고리 복원에 꼬박 3년이 걸렸다. “박물관에 찾아가더라도 원하는 실물을 모두 보여주지 않았어요. 볼 수 있는 것은 실물을 토대로 복원하고, 나머지는 보고서나 서적을 보고 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죠. 원단 색깔도 그 시대와 똑같이 할 수는 없었어요. 땅속에 묻혀 있다 나온 옷들이기 때문에 거의 탈색되어서 원래의 색깔을 알 수도 없거든요. 기본 패턴에 따라 상상으로 색깔을 입혀 재현했습니다.”
   
   전시회를 진행하면서 시대별·신분별 저고리를 보여주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야말로 우리 옷과 역사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일시적인 전시회에서 벗어나 좀 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2003년 처음 출판된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가 그 결과물이었다.
   
   “저고리를 복원하면서 우리의 전통 옷 자체에 철학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저고리 변천과정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에요. 각각의 저고리에 나타난 재밌는 표현들이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저고리 위에 끝동도 그냥 무심코 다는 것이 아니라 미학적으로 맞게 단 겁니다. 색감도 마찬가지예요. 적삼 같은 것도 단순해 보이지만 수월하게 배열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색깔의 대비를 이뤄낸 것이죠.”
   
   
   “해외에서 한복에 대한 관심 늘어”
   
   절판된 2003년판 책을 바탕으로 재해석해서 내놓은 것이 이번 2011년판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다. 이번 책에는 특히 저고리 도식화에 중점을 두고 제작했다. “그동안 추가로 복원한 내용을 덧붙였어요. 무엇보다 저고리 도식화를 넣어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이것을 보고 저고리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하게 만들었어요. 외국에서 한국, 한복에 대한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영문 작업도 추가했고요.”
   
   김씨의 말대로 한복에 대한 외국의 관심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많은 해외 활동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05년 파리 엑스포에서 열린 파리 프레타포르테였다. 세계의 유행을 선도하는 파리 프레타포르테는 1000여개 브랜드와 4만여명의 패션 관계자들이 방문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박람회이다. 당시 설립 50주년이자 100회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과 디자이너가 특별 초청됐다. 김혜순씨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한복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참가해 전통한복 30여벌을 전시했다. 당시 한국의 전통 복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다양한 한복 의상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패션계에 우리의 멋이 통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김씨는 “해외에서는 한복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싶어한다”며 “한복에 비례의 미학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세계 아티스트 10인 선정
   
   김씨는 한복의 섣부른 대중화보단 전통이 그대로 보전되기를 원한다. 전통을 올바르게 보전하면서 자신의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책에도 독자들이 옛 선조가 입었던 저고리를 보면서 우리나라 복식 문화에 대한 우수성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저는 한복을 무조건 많이 입자고 주장하지는 않아요. 이웃 나라 일본을 보면 전통 의상인 기모노 한 벌을 보면서도 만족을 하거든요. 그 자체로 소중하니까요. 우리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자국 문화를 아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혜순씨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벌써 30년 전 일이다. 어릴 때부터 동양화를 좋아했던 그녀가 한복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외삼촌인 고(故) 허영씨의 영향이 컸다. “외삼촌은 국내 최초로 인형에 한복을 입혀 제작했던 분이셨어요. 저는 거기서 나아가 살아있는 사람에게 한복을 입히기 시작한 거죠.”
   
   한복의 세계에 입문한 그녀는 아름다운 한복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하지원이 주인공을 맡아 화려한 한복으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황진이’도 그녀의 작품이었다. 이외에도 드라마 ‘토지’, 영화 ‘서편제’ ‘천년학’ 등의 의상을 제작했고, ‘2010 세계 지식 포럼 패션쇼’, 모스크바에서 열린 ‘2008 한·러 문화 페스티벌’ 등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인 펜디(FENDI)에 의해 세계 아티스트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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