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원 ‘황하역류’ ‘12수도(十二水圖) 권 중 6’, 중국 송, 비단에 연한 색, 26.8×478.3㎝, 고궁박물원
마원 ‘황하역류’ ‘12수도(十二水圖) 권 중 6’, 중국 송, 비단에 연한 색, 26.8×478.3㎝, 고궁박물원

모처럼 환한 해가 떴다. 수중도시처럼 물과 안개에 빠져있던 도시에 해가 비추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틀 전 주말에 결혼식이 있어 차를 타고 가는데 어찌나 비가 많이 쏟아지던지 앞이 안 보였다. 그야말로 ‘물폭탄’이 터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뉴스를 보니 온통 물난리다. 다리가 끊어지고, 도로가 유실되고, 산림이 무너졌다. 제방이 붕괴되고, 가옥이 침수되고, 사람들이 실종됐다. 아무런 힘이 없어 보이는 물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몇 달 전에 일본을 초토화시킨 쓰나미를 봐도 알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6월에 50년 만의 최대 폭우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물은 생명의 원천이지만 잘못 건드리면 어떤 방어벽으로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하다. 과거 왕조시대 때 왕은 가뭄과 홍수가 심해지면 자신의 부덕(不德)함을 반성하고 하늘에 제를 올렸다. 물을 다스리는 것은 국가의 존망을 좌우했다. 곤(鯀)과 우(禹) 부자는 태평성대의 모델로 불리는 신화 속의 군주 요(堯)임금 시대에 살았는데 물 때문에 죽고 살았다. 아버지 곤은 치수에 실패해서 죽임을 당했고 우는 치수에 성공해서 왕이 되었다. 똑같은 물을 다루었는데 왜 그들의 길은 갈라졌을까.

황하의 물이 역류하다

물속에서 용이 꿈틀거리는 걸까. 강물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남송(南宋·1127~1279)대의 궁정화가였던 마원(馬遠·1189년 이전~1225년 이후 활동)이 그린 ‘황하역류(黃河逆流)’는 800여년 전에 그린 작품인데도 마치 몇 달 전에 발생한 쓰나미 현장을 보고 있는 듯 생생하다.

이 작품은 마원이 그린 ‘12수도(十二水圖)’ 중의 하나다. 현재는 두루마리로 장황(裝潢)되어 있지만 원래는 12개의 책(冊)으로 된 화첩(畵帖)이다. 그는 이 화첩에서 강, 호수, 내, 바다 등을 예리한 시선으로 관찰하여 12가지 서로 다른 물의 동세(動勢)를 포착해냈다. ‘동정풍세(洞庭風細)’ ‘장강만경(長江萬頃)’ ‘추수회파(秋水廻波)’ ‘세랑표표(細浪漂漂)’ 등 각 그림에는 형형색색으로 변신하는 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곡진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붓끝을 따라 물이 화면 밖으로 흘러넘칠 것 같다. 무심히 보면 물은 그냥 물일 뿐인데 세밀한 관찰과 탁월한 기량이 결합된 마원의 그림에는 물이 지을 수 있는 풍부한 표정과 다양한 움직임이 드라마틱하게 담겨 있다.

예로부터 물을 그리는 방법은 공수법(空水法), 염수법(染水法), 준수법(皴水法), 구수법(勾水法) 등 다양했다. 공수법은 수면을 흰 여백으로 남겨놓는 방법인데 반해 염수법은 검은색이나 푸른색으로 칠하는 방법이다. 공수법과 염수법은 원(元)대 이전 화가들이 즐겨 그린 기법이다. 준수법은 필선을 끌듯이 움직여 수면을 큰 조각처럼 그리는 기법으로 강둑이나 모래톱 주위의 물결을 표현할 때 쓴다. 마원이 ‘12수도’에서 사용한 기법은 구수법이다. 구수법은 필선으로 파도나 물결을 그리는 방법으로 동양화에서 가장 많이 애용하는 기법이다. ‘망건수법(網巾水法)’이라고도 부르는 구수법은 잔잔한 물, 격동적인 물결, 거친 파도 등 물이 보여줄 수 있는 천의 얼굴을 유감없이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다.

왜 하필 장강이 아니라 황하일까

중국에서 가장 큰 강은 장강(長江)이다. 그런데 마원은 장강이 아닌 황하를 그렸다. 위치상으로 보더라도 장강은 남송의 수도 항주를 끼고 흐른다. 거리만 생각한다면 남송의 궁궐에서 활동한 마원이 장강을 그려야 마땅하다. 마원의 집안은 북송(北宋·960~1126) 말기부터 다섯 세대에 걸쳐 150년 동안 화원에 봉직하며 황제들을 섬겼다. 근경 중심의 인물 표현과 한쪽으로 치우친 일각구도(一角構圖), 부벽준(도끼로 나무를 찍어낸 것처럼 바위 표면의 질감을 드러내는 필법), 안개가 자욱한 시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마원 화풍은, 그의 아들 마린(馬麟)에게 충실히 이어졌다. 당시 궁정에서는 마원과 쌍벽을 이루던 하규(夏珪)라는 작가가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이룬 독특한 화풍은 ‘마하파(馬夏派)’라는 이름으로 직업화가들의 추종을 받았다. 그러니 궁정화가이자 마하파의 거두인 마원이 장강이 아닌 황하를 그린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대 문명의 발생은 장강이 아닌 황하에서 탄생했다. 사람이 살기에는 고온다습하고 삼림이 울창한 장강보다 건조하면서도 비옥한 황토지대인 황하가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이런 매력 때문에 황하는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철기시대까지 줄곧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장강이 덩치 큰 강폭의 크기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면, 황하는 유서 깊은 가문의 포트폴리오로 역사 매니아들의 포토라인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황하는 자주 범람했다. 때론 역류할 때도 있었다. ‘서경’과 ‘맹자’를 보면 요임금 시절부터 황하가 역류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요임금이 신화와 전설 양쪽 진영에 다리 하나씩을 걸치고 있는 얼굴 없는 영웅이고 보면, 통치자들이 황하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역사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경’에는 요임금 때 ‘홍수가 바야흐로 폐해를 끼쳐서 거대한 세력으로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어 질펀하게 하늘까지 번지기에 저 아래 백성들이 한탄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맹자’의 기록은 더 구체적이다. ‘물이 역류하여 중국에 범람하였다. 사룡(蛇龍)이 우글거려 백성들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낮은 지역 사람들은 나무 위에 둥지를 짓고 높은 곳 사람들은 굴을 파고 살았다’고 되어 있다. 마원이 굳이 가까운 장강을 외면하고 멀리 떨어진 황하를 그린 것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담긴 황하의 역사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은 전설 따라 삼천리에나 나올 법한 요임금부터 그가 살던 남송시대까지 강가에 산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홍수 피해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람이 자연과 싸우고 토라지고 화해하면서 살아온 역사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터놓듯이 하라

자애로운 군주 요임금이 황하의 범람으로 밤잠을 설칠 때 신하들이 적임자를 한 사람 천거했다. 그가 바로 곤이었다. 곤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다. 그의 판단은 신속했고 행동은 민첩했다. 현장검사가 끝나자마자 그는 즉시 치수사업에 돌입했다. 곤이 선택한 치수사업의 골자는 흙으로 둑을 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아무리 둑을 높게 쌓아도 폭우가 한번 쏟아지고 나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무너지면 쌓고 무너지면 또 쌓는 일을 9년 동안이나 되풀이했다. 결국 그는 치수사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했다.

그 다음 해결사로 등장한 사람이 우였다. 우는 곤의 시체에서 튀어나온 용이 변해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을 가진 사나이다. 아들의 몸으로 환생해서라도 치수사업을 완성하려고 했던 곤의 천착을 보여주는 신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는 치수사업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답게 오로지 치수에 매달렸다. 흙을 나르고 도랑을 파느라 손발에는 굳은살이 박이고 정강이는 털이 날 새가 없어 반질반질했다. 오죽하면 13년 동안 한번도 집에 들르지 않을 정도였을까. 결국 우는 갖은 고생 끝에 치수에 성공하여 왕위에 오른다.

똑같은 물을 다스리면서도 아버지는 실패하고 아들은 성공했다. 이유는 물을 이해하는 시각 차이 때문이었다. 곤은 물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연의 힘을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흙으로 물을 막으려고만 했다. 물을 물로 보다 큰코다친 셈이다. 그러나 우는 달랐다. 아버지의 실패를 오랫동안 지켜본 우는 억지로 물길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했다. 대신 물길을 분산시켜 힘을 약화시켰다. 현명한 우는 사람이 자연에 대항하여 함부로 맞서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 것이다. ‘맹자’에는 현명한 우의 행동을 이렇게 찬탄했다. ‘만약 지혜롭기가 우가 물길 터놓듯이 한다면 지혜를 혐오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우가 물길을 흘러가게 한 것은, 그 무사(無事)함을 행한 것이다.’

이래저래 물 때문에 논란이 많은 우리 시대에도 한번쯤 되새겨볼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사이에도 제대로 물길을 터놓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조정육

미술사가

조정육 미술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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