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은 여느 다가구주택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상아색 타일이 온통 깔려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마당이다. 흙은 없다. 건물 한가운데 옴폭 들어선 실내형 마당. 9㎡ 크기다. 마당에선 집안 실내로 연결되는 접이식 유리창 겸 문이 두 개 있다. 정면과 오른편이다. 문이 없는 왼편으로는 마당 바닥과 같은 타일을 이용해 올린 두꺼운 담이 한 개 층 높이로 서 있다.

실내로 들어가기 위해선 마당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ㄱ’자형으로 마당을 감싸고 있는 목재 툇마루에 걸터앉아 신발끈을 풀었다. 한옥을 연상케 하는 구조다. 지난 9월 17일 한반도에 불어닥친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마당까지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마당이 주는 따스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실내 마루에서 마당이 한눈에 내다보였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낙성대에 있는 ‘스튜디오 훈’의 집주인 이소희(44)씨가 집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마루에서 내다보이는 마당 한쪽 벽면엔 그가 좋아하는 신형우 화백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붉고 강렬한 그림은 모노톤으로 장식돼 다소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공간에 활기를 주고 있었다.

“마당을 갖고 싶었어요. 마당 대신 방을 만들었으면 1억5000만원 정도의 전세를 받을 수 있었겠죠. 저는 이 마당이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거예요.”

“아파트시대는 끝났다”

낙성대 ‘스튜디오 훈’의 실내형 마당. 반(半)개방형으로 바람을 막고 외기 유입을 유도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낙성대 ‘스튜디오 훈’의 실내형 마당. 반(半)개방형으로 바람을 막고 외기 유입을 유도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의상디자이너 이씨는 태어나서 한번도 아파트에서 산 적이 없다. 하지만 미련이 없다. 재미없고 답답해 보이는 아파트보다는 손이 많이 가도 내 집 같은 주택이 좋단다. 이씨는 “모름지기 집은 이곳저곳 요모조모 제 손으로 꾸며야 제맛”이라고 했다. 이씨에게 집은 땅을 밟고 서 있는 주택일 때 가치롭다. 어릴 때 살던 정원 있는 한옥과 단독주택이 집에 대한 가치관을 만들었다.

그가 아파트보다 주택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투자 가치다. 이씨는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땅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지론이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시대는 끝났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도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아파트는 실제 가치에 비해 고평가돼 있다고 봐요. 반면 주택은 상당히 저평가가 돼 있죠. 주택 관리가 쉽지 않지만 돈 벌기 쉬운 게 어디 있겠어요?”

총 14가구가 사는 이 건물의 4층부터 6층까지의 절반은 이씨 가족이 사용한다. 복층 구조다. 짙은 회색 대리석타일이 깔린 4층은 마루와 부엌, 그리고 게스트룸이 마련돼 있다. 현대적으로 직선적 느낌을 많이 살린 4층과 달리 5층은 원목 재질을 많이 사용했다. 안방과 두 명의 아이를 위한 방이 있는 곳이다. 6층은 창고와 빨래를 위한 공간이다.

공간이 분리돼 있어 독립적이긴 하지만 집안일을 하는 입장에선 여간 성가신 일이 많은 게 아니다. 주간조선이 이 집을 찾은 9월 17일엔 거센 비바람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마룻바닥까지 물이 흥건히 고이기도 했다. 이씨는 연신 물걸레를 쳐냈다. 건물 안 다른 집엔 문제가 없는지 신경쓰느라, 마침 이날 이사를 나가는 집의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가 이 집 짓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집, 아무나 짓는 것, 절~대 아닙니다. 전세 장사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절~대 아니고요.”

집 짓기 첫째 조건은 손익분기점

스튜디오 훈의 전경
스튜디오 훈의 전경

이소희씨 부부가 스튜디오 훈을 지은 것은 2010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다니던 남편 김대성씨 때문에 이씨 부부는 16년 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현재 건물이 들어선 곳과 같은 블록에 있는 집이었다. 남편의 유학 비용과 맞바꿔 산 처음 집은 차도와 떨어져 있는 맹지(도로와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토지)에 있었다. 그만큼 가격이 쌌기에 돈 없는 신혼부부가 약간의 대출을 끼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스튜디오 훈이 들어선 집터를 마련한 것은 1999년이었다. 맹지에 있던 집과 등을 붙인 채 길을 끼고 있던 집이었다. 낡은 건물이었지만 위치가 좋았고 무엇보다 원래의 집과 붙어 있어서 두 개의 건물을 틀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우연히 이 집터가 나온 것을 알게 된 이씨 부부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원래 시세대로라면 이씨 부부가 절대 살 수 없는 집이었지만 IMF로 집값이 하락한 데다가 집주인의 개인적 사정상 급매로 나왔기에 은행 융자를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당시 시세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두 개의 오래된 건물을 합친 대지 248.9㎡(75.2922평·용적률 200%)에 건물을 신축하며 들어간 비용은 9억5000만원 정도. “집 짓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계산기 두드리기죠. 로망만 가지고 집을 지을 수는 없어요. 땅값, 건축 비용, 금융 비용을 고려해 손익분기점을 계산해야죠. 저희 같은 경우도 손익분기점을 계산했는데 2010년까진 수지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동안 리모델링만 해온 거죠. 마이너스가 되진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두 건물을 합친 거예요.”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집주인이 된 이씨는 현실적이었다. 이씨는 “집 짓기 전에 치밀하게 계산하고 주판을 퉁겨야 한다”며 “비용 분석뿐만 아니라 틈새시장을 노리기 위한 지역적 특성에 대한 분석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땅은 배우자 고르듯 신중하게”

5층 큰 아이의 방. 다락방을 만들어 아이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했다.
5층 큰 아이의 방. 다락방을 만들어 아이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했다.

스튜디오 훈이 자리한 봉천동 1615-2는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과 서울대입구역 사이다. 인근에 서울대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서울 시내 주거밀집지역 가운데 비교적 저렴하고 학생 수요가 많다. 대중교통도 편리해 강남·영등포 일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많이 살고 있다. 가족을 꾸리고 사는 부부보다는 몸이 가볍고 모아둔 돈이 적은 싱글족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아 주거지 회전 속도가 빠르다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이 지역에 가장 많은 주거 형태는 원룸형 다가구주택 및 오피스텔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주거지 분석이다. 이씨의 계산은 한발 더 나갔다. 이 지역에서 17년을 살아온 이씨는 서울대입구역 근방의 원룸시장이 과포화상태라고 봤다. 원룸을 많이 짓는 만큼 공실률도 높다. 젊은 사람들은 1년 계약기간이 끝나면 신축한 원룸으로 바로바로 옮겨가 신축 후 1회전이면 원룸의 생명은 끝난다는 분석이었다.

“집 지을 때 면밀한 분석이 없으면 답은 두 가지예요. 화병으로 죽거나 망하거나. 땅을 살 때부터 결혼하기 위한 배우자를 고르듯 신중하고 현실적으로 골라야 합니다. 제가 이 동네에서 15년 넘게 살면서 집 짓다가 망해서 나가는 사람 여럿 봤어요.”

(좌) 마루에서 내다본 마당 풍경. 마루의 대리석 질감과 마당의 타일이 서로 어울린다. (우) 마당에서 본 실내. 목재 툇마루가 안과 밖을 이어준다.
(좌) 마루에서 내다본 마당 풍경. 마루의 대리석 질감과 마당의 타일이 서로 어울린다. (우) 마당에서 본 실내. 목재 툇마루가 안과 밖을 이어준다.

이씨는 다른 전세 수요층에 주목했다. 어느 정도 여유자금이 있어 안전하고 독특한 건물에 살고 싶어하는 직장인·신혼부부다. 이들을 겨냥해 원룸 대신 1.5룸·2룸으로 건물을 올렸다. 한 가구당 전세가는 1억1000만~1억5000만원 정도. 이 지역 전세가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이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씨의 집은 부동산에 내놓으면 제일 먼저 나가는 집 중 하나가 됐다.

이씨는 벌써 다음 집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엔 스튜디오 훈 시공으로 생긴 노하우를 살려 리모델링을 하는 방안이다. “다음에 집을 리모델링할 때는 4층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원룸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 층 전체가 우리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 되는 건데요. 한쪽에 돌로 만든 족욕탕을 만들어서 족욕을 하면서 국수를 먹자고 남편이랑 얘기하며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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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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