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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261호] 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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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박정희 공원’ 논란 신당동 집 42년 전에 무슨 일이…

조성관  편집위원 

▲ 서울 중구 신당동 다산로36가길 25번지의 박정희 가옥. 문화재청에 의해 2008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photo 조성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5번 출구로 나왔다. 대로변을 20여m 걸어가다 첫 번째 골목에서 방향을 틀었다.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니 골목길 양옆으로 단층집들이 즐비했다. 오래된 동네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곧이어 다산어린이공원이 나타났다. 그 집은 다산어린이공원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나오는 큰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잠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전신주에 붙은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 가옥 130m’. 화살표를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퇴계로 86가길’이었다. 골목길은 매우 평평하다가 끝부분에서 완만한 오르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니 작은 골목길 교차로가 나왔다. 오른편에 1층 양옥집이 보였다. 우편함에 태극기가 꽂혀 있고, 담장 너머 붉은 기와집이 보였다. 사진에서 본 바로 그 집이었다. 도로명 주소는 다산로36가길 25번지. 담장 너머로 키가 큰 성목 네 그루가 보였다. 향나무 한 그루, 대추나무 한 그루, 나머지 나무 두 그루는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향나무 수령은 최소 70~80년은 됐을 거라고 이웃 주민이 말했다. 정문 옆에 ‘등록문화재 제412호 신당동 박정희 대통령 가옥,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박정희 가옥까지는 신당역 5번 출구에서 성인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린다. 사실 신당역 5번 출구만 나온다면 박정희 가옥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신당동 주민 치고 이 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민에게 최소 세 번만 물어보면 찾을 수 있다. 그만큼 신당동 주민에게 박정희 가옥은 유명하다.
   
   신당동 박정희 가옥이 최근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최창식 중구청장(새누리당) 때문이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신당동 가옥 일대를 기념공원으로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가옥 주변 건물 3채를 사들여 4070㎡의 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286억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되고 이 중 절반인 143억원은 정부가, 20%인 57억원은 서울시가 부담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0일 “국가경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서 기념공원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창식 구청장은 “5·16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현대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면서 “이 지역에 대한 장소적 가치를 살려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게 유익하다”며 강행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가 6월 13일 “타당성이 없다”고 반려하면서 ‘신당동 가옥 기념공원 계획’은 없던 일로 일단락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신당동 가옥에 3년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도 이 집에서 3년간 살며 장충초등학교를 다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구미시. 박근혜 대통령은 6·25전쟁 중이던 1952년 2월 2일 피란지인 대구 삼덕동에서 출생했다.
   
   신당동 가옥이 의미를 갖는 것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기 전 살았던 집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다. 신당동 집은 원래 육영수 여사의 어머니인 이경령의 집이었다. 1958년 5월, 육군 1군단 참모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은 소장 박정희는 신당동 집에 살았다. 박정희는 신당동 가옥에서 5·16군사정변을 계획하고 거사를 준비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군부의 최고실력자가 된 박정희는 비좁은 신당동 집에서 나와 장충동에 있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옮겨갔다.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옮겨가면서 이 신당동 집은 빈집이 되었다.
   
   이후 박정희는 다시는 신당동 집에 와보지 못하는 운명이 된다. 10·26사건 이후 유가족인 박근혜·박근영·박지만은 신당동 집으로 이사를 왔다. 3남매는 1982년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2008년 10월, 신당동 집은 서울시 등록문화재 412호로 지정됐고 현재 소유자는 재단법인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다.
   
   플래시백으로 1961년 5월의 신당동 가옥으로 가본다. 조갑제 기자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권 ‘혁명 전야’에는 5월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신당동 가옥은 거사를 준비하는 군 장교들의 아지트였다. 5월이 되자 수시로 군 장교들이 이 집을 드나들었다. 당연히 ‘혁명 모의’라는 정보가 정보기관에 들어갔다.
   
   #1. 5월 14일 오후 신당동 박정희 집에선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육군 방첩대 산하 서울지구대 대장인 이희경 대령과 육군본부 직할 제15범죄수사대 방자명 중령을 박정희가 부른 것이다. 서울 지역의 두 군 수사기관장은 박정희의 혁명 모의를 알고 있었다.
   
   #2. 5월 15일은 월요일이었다. 청파동 숙명여대 앞에 살던 김종필은 아침에 군복을 갈아입고 신당동 처삼촌 집으로 향하면서 만삭의 아내 박영옥을 향해서 한마디 했다. “자고로 유복자는 대개 아들이라고 하니까 설령 내가 이 거사에서 죽더라도 그놈만은 잘 키워주시오.”
   
   #3. 5월 15일 밤 10시. 육영수는 어머니(이경령)께 근혜·근영·지만 3남매를 데리고 안방에서 주무시도록 했다. 육영수는 빨래를 한 가지씩 다리미로 다려 차곡차곡 챙기고 있었다. 밤 10시가 지났다. 육영수가 박정희가 있던 방으로 건너왔다. 박정희는 장태화, 김종필, 이낙선과 함께 일어나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육영수는 “저 보세요”라고 불렀다. “근혜, 숙제 좀 봐주시고 나가세요.”
   
   박정희는 서슴없이 “어, 그러지” 하고 아내를 따라 나갔다. 박정희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던 장충국민학교 5학년생 근혜를 굽어보고, 윗목 외할머니 곁에서 잠들어 있는 근영·지만에게 눈길을 주고는 나왔다. 장태화가 “무슨 숙젭니까” 하고 물었다.
   
   “어, 뭐 그림 그리는 거야.”
   
   군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박정희는 아내가 작은 가방에서 꺼내 주는 권총을 찼다. 군화를 신은 채 마루의 의자에 앉았다. 조금 뒤 한웅진 육군정보학교장과 장경순 육본 교육처장이 신당동 집으로 들어왔다. 박정희는 현관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내일 아침 5시 라디오를 들어보오”라고 말했다. 김종필이 골목으로 나와보니 지프 두 대가 한편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종필은 방첩대에서 미행용으로 배치한 지프라고 생각했다. 박정희는 대기 중이던 지프에 탔다. 뒷자리에는 한웅진, 김종필이 올랐다.
   
   그날 밤 이렇게 박정희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고,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다. 이 모든 것은 신당동 집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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