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젓가락 갤러리? 뭘 전시한다는 건지 이야기를 듣는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지난 8월 28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막 문을 연 젓가락 갤러리 ‘저집’을 찾았다. 갤러리에는 100여종의 옻칠 젓가락들이 전시돼 있었다. 다양한 색깔의 옻칠에 나전칠기를 붙이거나 전통문양의 쇠와 나무의 조합 등 전부 다른 디자인을 입힌 젓가락들이 한 벌 한 벌 모두 공예작품 같다. 전화통화를 끝내고 취재진을 맞은 박연옥(50) ‘저집’㈜ 대표의 얼굴이 흥분돼 있었다. 청와대로부터 ‘저집’ 젓가락이 대통령 순방선물로 최종 선정됐다는 전화를 막 받았다고 했다.

“젓가락을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싶다. 일본의 고가 젓가락 시장도 잡고 저가시장의 중국까지 잡겠다.”

젓가락 단독 브랜드인 ‘저집’을 만든 박 대표의 목표는 높았다. 그는 “일본의 고급 젓가락과 비교했을 때 품질·디자인·가격경쟁력 모두 자신 있다. 물건만 잘 만들면 세계 시장도 문제없다. 물건을 잘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일본·중국을 뛰어넘겠다니,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싶었다. 그의 이력이 궁금했다.

그는 국내 책갈피 시장을 평정한 ‘굿윌솔루션즈’의 대표이기도 하다. 17년 전 마이너스통장으로 사업을 시작해 일본·호주·러시아 등 해외 5개국에 책갈피를 수출하는 사업체를 일궈냈다. 문화상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마다 클로버·잎 등 여러 가지 문양에 금박을 입힌 책갈피를 볼 수 있다. 24K 금도금 책갈피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바로 박 대표다. 17년간 만들어낸 책갈피 종류만 1000여종에 이른다. 국내 시장에 전력할 때는 박물관·서점 등 전국 300여곳에서 ‘굿윌’의 책갈피가 팔렸다. 그는 “우리 책갈피가 대한민국 문화상품 중 최고 히트작일 거다. 잘나갈 때는 한 달에 10만개가 팔렸다”고 말했다.

지금은 앉아서 중국·호주서 추가 주문을 받을 만큼 자리를 잡았지만 그의 사업인생은 17년 내내 ‘짝퉁과의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는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자면 다 할 수가 없다. 고소장 쓰는 데 이골이 났다”고 했다. 사업 초기부터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기 바쁘게 짝퉁제품이 나왔다. 그것도 더 싼 가격에. “몇 년간 밤 꼴딱 새가면서 만들어내 남 좋은 일만 했다. 한번은 한 업체가 우리 제품 2개를 그대로 베껴 우체국 경조카드로 납품해서 18개월 동안 10억원을 벌더라. 실용신안 등록하고 특허 내봤자 소용없었다. 조금만 바꾸면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 게 디자인이다. 그 뒤로 국내서 새로운 디자인은 더 이상 안 내겠다고 결심했다.”

마케팅 요령도 몰랐던 그는 ‘짝퉁’을 상대로 줄기차게 고소장을 써대면서 꿋꿋하게 품질을 올리고 디자인을 다듬었다. 결국 모방회사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이후 차기 문화상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제대로 된 문화상품이 없는 것도 늘 아쉬웠다. 사업 때문에 일본 출장을 자주 오가다 보니 그의 눈에 젓가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본 바이어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다. 바이어는 음식보다 젓가락 자랑을 한참 늘어놓았다. 젓가락 하나 가지고 유난을 떤다 싶으면서도 그들의 자부심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도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 해먹이는 것을 좋아했는데 늘 아쉬웠던 것이 수저였다. 천편일률적인 쇠수저로 테이블 세팅을 하면 영 마음에 안 찼다. 일본 출장길에 사온 젓가락을 놓았다. 반응이 좋았다. 젓가락이 식탁 화제에 올랐다. “어디서 샀느냐” “가격은 얼마냐” “디자인이 어떻다” 등등. 그의 머리에 반짝하고 불이 켜졌다. ‘바로 이거다. 그동안 왜 젓가락 생각을 못했을까’. 일상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인 데다 한국을 대표할 문화상품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젓가락 갤러리 ‘저집’이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젓가락 갤러리 ‘저집’이 건축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photo 유창우 영상미디어 부장

일본 젓가락을 잡을 고급 옻칠 젓가락을 목표로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옻칠 젓가락은 모두 똑같았다. 한 공장에서 만든 젓가락 모형(백골)을 가져다가 장인들이 옻칠만 하기 때문에 똑같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백골집’만 돈을 벌고 있었다. 모형부터 시작해서 유통까지 전 과정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옻칠만 제대로 하면 디자인은 일본 제품과 경쟁해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 옻의 고장인 원주에 공장을 마련하고 새로운 모형과 디자인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일단 일본 젓가락을 경쟁 상대로 삼았지만 최종 목표는 식당들이 사용하고 있는 값싼 중국산까지 잡겠다는 것이다.

중국 바이어로부터는 벌써 젓가락 디자인을 해달라는 주문도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매장 등에도 ‘저집’ 젓가락이 들어간다. 내년에는 인사동, 부산 등 최소 3곳에 직영점을 낼 계획이다. 새로운 디자인 개발도 계속하고 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도 계획하고 있다. 12월에는 ‘저집’을 건축한 건축가들이 디자인한 젓가락을 선보일 계획이다.

‘저집’ 건물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저집 부지는 2006년에 사놓았던 땅이었다. 145㎡(44평) 규모로 건물 사이에 콕 박혀 있는 데다 반듯한 모양도 아니었으니 ‘도대체 저렇게 못생기고 좁은 땅에 어떤 건물을 지을 수 있나’ 싶었단다. 건축가를 찾기 위해 건축잡지며 인테리어잡지를 샅샅이 뒤졌다. 잡지에 나온 커피전문점 ‘코코브루니’를 보는 순간 ‘이 건축가를 찾아야겠다’ 싶더란다. 건축비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결과는 대성공. ‘저집’은 완공되자 마자 건축잡지와 세계 건축가들의 대표 사이트(archdaily.com)에 소개됐다. 인터뷰 중에도 지나가던 사람들이 카메라로 건물을 찍느라 바빴다.

“한류 밥상에 한국의 젓가락을 올려놓겠다”는 그의 머리는 이런저런 사업 아이디어들로 바빴다. 세계인들이 ‘저집’ 젓가락을 사용할 생각을 하면 설렌다고 했다. 그는 “옻은 신비의 물질이다. 건강한 재료에 우리 전통을 결합해 대를 물려줄 수 있는 젓가락,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젓가락을 만드는 백년기업을 만들고 싶다. 단순히 젓가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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