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정 작가는 올 한 해 ‘응답하라 1994’와 ‘꽃보다 할배’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photo tvN
이우정 작가는 올 한 해 ‘응답하라 1994’와 ‘꽃보다 할배’ 등을 통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photo tvN

케이블 채널 tvN의 이우정 작가는 지난 12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13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보도자료에서 ‘꽃보다 할배’를 두고 “할배들의 배낭여행을 소재로 한 ‘꽃할배’는 실버 예능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60대 이상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는 등 노년 시장이 활기를 띠며 하나의 현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고 발표했다.

‘꽃보다 할배’ 말고도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등 프로그램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작년 하반기를 달궜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7’까지 합하면 근 1년 반 동안 대한민국은 한 작가가 꾸려낸 TV 프로그램에 쭉 열광했다. 이 프로그램들의 작가가 이우정씨다. ‘응답하라 1997’의 경우 16화의 시청률이 7.6%였고 현재 방영 중인 ‘응답하라 1994’ 9화 시청률은 8.1%에 달했다. ‘꽃보다 할배’ 평균 시청률은 5~6%였고 가장 최근 방영된 ‘꽃보다 누나’ 3화 시청률은 10.3%에 달했다. 지상파를 포함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시청률만 따져 봐도 올 한 해 문화계에서 가장 돋보인 인물은 단연 이우정이다. 그러나 이우정 본인에게서 올 한 해를 산 이야기를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12월 18일 현재 ‘응답하라 1994’와 ‘꽃보다 누나’가 동시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매우 바쁘다는 것이 tvN 측의 설명이었지만, 평소에도 이우정은 인터뷰를 고사한다고 한다. tvN 홍보 담당자 이희진 대리는 주간조선에 “연말을 맞아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으나 전혀 응하지 않았다”며 “(작가는) 업무 관계자가 아니면 문자와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자 역시 이우정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답이 없었다.

이우정의 프로필 또한 잘 알기 힘들다. 몇 년생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우정의 나이에 대해 이우정과 10년 넘게 작품을 함께 한 tvN의 나영석 PD는 “동년배”라고만 설명했다. 나영석 PD가 1976년생이니 이우정 역시 30대 후반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우정은 처음부터 방송 관련 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숙명여대 무역학과를 졸업해 처음 가진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였다고 한다. 방송작가로 방향을 정하고 MBC방송아카데미의 방송작가 과정 수업을 들었고 2001년 MBC 예능 프로그램 ‘21세기 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우정의 프로그램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우정이 KBS 예능 프로그램을 꾸려 나가며 만났던 이명한·나영석·신원호 PD다. 지금은 모두 tvN에서 이우정과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있지만 이들이 팀워크를 다진 것은 KBS에서였다. 이우정은 KBS 프로그램 ‘산장 미팅 장미의 전쟁’을 통해 이명한·나영석 PD를 만났고 ‘남자의 자격’을 하면서 신원호 PD를 만났다. 나영석 PD와는 ‘여걸 파이브’ ‘여걸 식스’를 함께 만들다가 ‘1박2일’을 통해 KBS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네 사람 모두 현재 소속은 tvN이다. 이명한 PD가 먼저 tvN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우정 작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하기로 결정한 후 나영석 PD와 신원호 PD가 이동하면서 다시 ‘팀’이 됐다. tvN에서 나영석 PD와 함께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 ‘꽃보다’ 시리즈이고, 신원호 PD와 함께 만든 드라마가 ‘응답하라’ 시리즈다. 이명한 PD는 현재 tvN의 제작기획총괄국장을 맡아 세 사람의 제작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다.

나영석 PD는 “지금은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지경”이라며 네 사람의 돈독한 팀워크를 자랑했다. 애초에 쭉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이유도 “좋아하는 프로그램, 일하는 방식이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영석 PD는 이우정에 대해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제가 아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에요. 책도 많이 읽지만, 늘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려고 해요.” 그러나 노력만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방송계이기도 하다. “이우정의 센스는 타고났다고 볼 수 있죠. 대중의 반응을 잘 읽어내고 그 안에서 대중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깨닫는 능력이 있어요.”

이우정 작가 ⓒphoto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우정 작가 ⓒphoto 한국콘텐츠진흥원

7~8년째 이우정과 알고 지내온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우정씨가 사람 보는 눈이 참 예리해요. 만난 사람이 어떤 성격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금방 알아차리죠.” 나영석 PD는 이우정 작가의 성격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통 이름 알려진 작가가 되면 자만에 빠지기 쉽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식견을 넓히려고 노력해요.” 정덕현 평론가는 이우정 작가의 이런 성격에서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을 찾았다. 요즘 예능은 스토리텔링이 매우 중요하다. 대본이 없어진 대신 현장에서 순발력 있게 이야기판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이우정씨는 사건 이면에 감춰진 심리를 읽어내는 데도 능하고, 맥락과 흐름을 잡고 만드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다”고 극찬했다. 이에 덧붙여 나영석 PD는 “작가의 역할은 단지 프로그램의 틀을 짜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며 “이우정 작가는 현장에서 전체를 보고 이야기가 될 만한 것을 강조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우정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1박2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생방송처럼 진행하며, 어떤 장르의 이야기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렀던 것 같습니다.” 정덕현 평론가는 이우정의 드라마가 성공한 것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던 경험에서 찾았다. 예능, 드라마, 다큐멘터리, 시사 프로그램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드라마 문법도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공감대를 넓혀가는 방식의 드라마가 늘어나고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이우정 작가의 능력이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다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경우는 일단 매회 주제를 정해서 여러 명의 작가가 모여 에피소드들을 쭉 뽑아 놓고 그중에서 선별하는 방식으로 제작한다고 해요. ‘드라마는 어떠해야 한다’는 틀에 얽매이지 않게 됐습니다.” 공감 능력과 사고의 유연함, 순발력, 그리고 마음 맞는 동료를 갖췄기 때문에 올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우정의 내년 행보는 어떻게 될까. 나영석 PD는 “아마도 지금처럼 ‘꽃보다’ 시리즈를 제작하고 함께 다른 프로그램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저희도 많이 변했습니다. 늘 머리를 맞대고 공부한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힘을 합쳐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입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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