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참의원 선거 후 당선이 확정된 자민당 후보 이름에 꽃을 다는 아베 신조 총리. ⓒphoto 로이터
작년 7월 참의원 선거 후 당선이 확정된 자민당 후보 이름에 꽃을 다는 아베 신조 총리. ⓒphoto 로이터

2012년 12월 26일 출범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내각이 출범 당시의 각료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난 5월 9일 출범 500일째를 맞이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이 기록은 전후 처음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에서의 아베 총리에 대한 호감도는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같은 바닥권이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최악이지만, 리더십을 발휘하여 내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아베의 비결은 무엇일까?

‘섬김의 리더십’이란 말이 있다. 용어에서 보듯이 리더십의 한두 가지 요인 및 측면을 부각시킨 조어이지만, 미국의 정치철학자 나널 코헤인(Nannerl O. Keohane·프린스턴대 석좌교수)이 리더십의 성공에 나타나는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봤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코헤인에 따르면, 성공하는 리더들은 열정과 용기를 갖고 사회 및 시민으로부터 자신이 제시하는 목표와 비전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 이를 위해 사회와 소통하고, 비전과 관련하여 상징을 잘 활용하며, 때로 타협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리더십의 주요한 기술로 제시된다. 과연 아베 일본 총리의 ‘성공’은 이러한 다양한 요인 중에서 어떤 것들에 의해 가능해진 것일까. 우선 아베 총리의 리더십이 진짜 성공적인지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출범 후 500일 동안 각료의 교체 없이 내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아베의 리더십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2006년에 성립되었던 제1차 아베 내각이 1년을 겨우 넘긴 시점에서 좌초되었고, 그 이후 5년여 동안 출몰한 5개의 내각이 각기 1년여를 지탱하지 못했던 것과 다르다. 게다가 아베의 지지도가 취임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도 50% 이상(요미우리신문 5월 12일자 보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가 성공하고 있다는 또 다른 증표다.

이러한 안정적 정국운영과 높은 지지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코헤인의 연구가 제시하는 성공의 요인들에 비추어 보면 아베 총리의 리더십 성공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인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그에 대한 열정이다. 아베 총리와의 인터뷰를 실은 1여년 전의 한 책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향점을 “가치의 기준을 손해득실에 두는 사회가 아닌, 자신의 득실을 넘어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사회”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는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전후 레짐(regime)으로부터의 탈각’이라는 슬로건이 자국의 역사와 전통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라는 목표 및 비전을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도입과 헌법 개정의 추진에 대한 노력, 그리고 역사인식에 대한 일본적 시각의 표출과 애국심을 중심으로 한 교육개혁의 추진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게 설정된 목표에 대해 아베 총리가 보이는 열정은 그의 ‘확신범’적 언행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는 헌법 9조를 변화시키지 않고도, 개별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을 권한으로 갖고 있다면, 당연히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거나,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가 군국주의를 연상시킨다는 비판과 관련해서도 “그 내용은 세계에서도 드문 비전투적 국가”라고 옹호하는 게 그렇다. 중국의 군비 증강 정도에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일본의 군사비 지출과 관련해서도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로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달라”고 언급하는 것 등은 그 전후사정에 대한 인지 여부를 떠나서 자신이 책정한 목표에 대한 강한 신념과 열정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신념 및 열정은 가족력에 기인하는 바 크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도 개헌이 최후의 비원”이었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기시 전 총리의 영향이 적지 않다. 특히 1960년대 초 안보 파동 당시 할아버지 집을 드나들면서 할아버지가 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비판에 맞서 “안보조약이라는 것은 일본을 미국이 지켜줄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약”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태연히 대처했던 것을 보고 자란 영향 때문이라고 하겠다.

둘째는 공감력이다. 리더들에게 있어서 지지자들의 지원은 가장 큰 자원이다. 이 지지는 지도자와 지지자들 사이의 공감에서 나온다. 아베 총리는 제2기 내각을 출범시킬 때 경제 살리기에 일차적 초점을 뒀다. 경제적 성과와 함께 안보력의 강화에 착수하는 순서를 택했다. 이러한 우선 순위 또는 경제활성화를 우선하는 것이 바로 국민이 요구하는 바였다. 예를 들어 2013년에 실시된 참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는 경기 및 고용 문제의 해결이 정권의 최우선 순위라고 답한 비율이 약 90%였다.

이와 관련 하마다 고이치 도쿄대 명예교수의 양적완화라는 방안을 채택한 아베 총리의 판단력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물론 아베노믹스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직 비판적 시각도 많고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자민당 정권의 주요 경제정책 노선이 탈규제화와 민영화를 주축으로 한 ‘작은 정부’론과 신자유주의였던 것을 고려하면 자민당 내에서도 양적완화 노선이라는 아베 총리의 선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베의 판단력과 용기가 중요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2012년 12월 출발한 아베 2기 내각. 출범 당시 각료들의 교체 없이 지난 5월 9일 출범 500일째를 맞았다. ⓒphoto AP
2012년 12월 출발한 아베 2기 내각. 출범 당시 각료들의 교체 없이 지난 5월 9일 출범 500일째를 맞았다. ⓒphoto AP

공감력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중국의 부상과 같은 동북아 정세변화에 대한 우려도 포함된다. 아베 총리가 안보력 강화의 차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출범시키고 국가안전보장지침을 제정하며 무기수출 3원칙을 개정하는 등 나름대로의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도 한몫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부상이 가져오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이 크다. 이는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2014년판 방위대강이 중국의 위협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군사장비적 측면에서도 중국의 A2/AD 전략에 대비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베 정부의 움직임에 국민이 대체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것은 집단적 자위권 도입에 대한 찬성이 종전의 59%(4월 조사)에서 63%로 상승했다는 최근의 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 결과(5월 12일)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인의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지속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경제나 안보 분야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공감력은 결국 1990년대 이후 일본이 지속적으로 겪고 있는 불황 또는 저성장 기조와 그에 따른 사회적 폐색감,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는 정치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연관된다. 즉 오랫동안의 저성장과 그에 따른 무력감이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인지의 여부가 아니라 ‘적어도 강력하게 보여야 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아베 총리의 움직임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강행이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도입 노력 등에서 보듯이, 2010년 이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민주당 정권과는 달리 일단 강력한 리더십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예를 들어, 아베 총리에 대해 60%의 높은 지지도를 나타낸 최근의 여론조사는 그 지지 이유로 “이제까지의 내각보다는 좋을 것이다”(48%), “정책에 기대한다”(16%), “총리에게 지도력이 있다”(13%)는 점을 꼽고 있다.

셋째는 타협력이다. 아베 총리가 보여주는 리더십의 또 다른 측면은 현실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타협’ 여지라 할 수 있다. 이는 핵심을 양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 관점을 가능한 한 수용하는 모습이라고 하겠다. 예를 들어, 현재 아베는 공명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있는데,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도입이나 헌법 개정에 비판적이고 미온적인 공명당을 배려하여 논의할 시간적 여유를 갖겠다는 자세다. 이는 공명당과의 합의와 연대가 관련 법안의 통과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향후 선거에 있어서도 긴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보이는 타협적 모습이 국민적 신뢰를 가져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선호되는 리더십은 독불장군식보다는 합의 및 협의를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는 문화적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대내외적으로 ‘확신범’적 인상을 가진 아베 총리가 보이는 현실주의적, 타협적 모습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이 확실하다고 하겠다.

이상에서 한국에서와는 달리 일본 국내에서 아베 총리가 높은 지지도를 얻고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요인들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물론 아베 총리 및 그 내각을 정확히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필자가 성공이라는 용어에 따옴표를 붙인 것도 아직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인기 및 지지 획득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경제정책의 성공 여부는 오히려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의 소비세 인상과 내년에 예정된 10% 재인상, 그리고 환태평양경제연대구상(TPP)을 둘러싼 미국과의 합의 등 아베 총리가 경제적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미칠 영향은 지금부터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고이즈미나 나카소네 전 총리가 기록한 장기 집권이 재연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성공적 리더십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 해결 방안을 이끌어내는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사건으로 분노와 자괴감에 빠져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가 제대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지, 단순히 또 하나의 희생양만을 만들어 사태를 넘기려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한국의 외교안보에 중요한 인접국 일본이 느끼는 우려와 관련해 한국이 함께할 것은 무엇이고 분리할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로도 생각할 수 있다. 국가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입각한 철저한 분석과 판단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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