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는 LG 트윈스 봉중근·이병규·박용택·손주인 선수(왼쪽부터). ⓒphoto 신영호
지난 8월 22일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는 LG 트윈스 봉중근·이병규·박용택·손주인 선수(왼쪽부터). ⓒphoto 신영호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Ice Bucket Challenge)’가 열풍이다. 이 캠페인은 미국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근위축성 측색 경화증·루게릭병)협회가 시작한 기부 캠페인. 얼음물 샤워에 성공한 사람이 다음 도전자 세 명을 지목하고, 지목받은 사람은 24시간 안에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해 100달러를 기부하든가, 아니면 얼음물통을 뒤집어쓰면 된다. 얼음물통을 뒤집어쓰는 건 몸이 춥고 떨리면서 근육이 수축되는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을 체험해 보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도 각계각층 스타들의 참여로 확산되고 있다. 루게릭병이 어떤 희귀질환이기에 이런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는 것일까.

루게릭병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다. 호킹이 21세에 루게릭병에 걸렸을 때, 담당의사는 ‘2년 정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호킹은 이후 50년 이상을 살아내고 있고, 현대물리학계의 거성(巨星)이 됐다. 호킹을 본 대중은 ‘루게릭병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어렵지만, 그래도 죽는 병은 아니다’라고 오해한다. 호킹은 예외적인 사례다. 루게릭병에 걸린 환자 치고 기적적으로 오래 산 사람이다.

루게릭병이 발병하면 보통 수년 내에 사망한다. 감각과 의식은 정상이지만, 근육이 위축돼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끝내는 호흡근육까지 마비돼 죽는다. 루게릭병의 공식 병명은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철마(Iron Horse)’라고 부를 정도로 건강한 청년이었던, 미국 뉴욕 양키스 프로야구단의 전설적인 4번 타자 루 게릭(Lou Gehrig)이 3년 정도 이 병을 앓다가 죽자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되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35만명이 투병 중이다.

루게릭병이나 파킨슨병, 심근경색은 세포가 죽으면서 생긴다.(암은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은 게 발병 원인이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 측면에 있는 운동신경세포가 손상돼 여기서 명령을 받는 근육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다. 우리 몸의 근육은 근섬유 수천 개로 구성돼 있다. 근섬유 각각은 뇌나 척수의 지시를 받는 운동신경세포에 의해 조절되는데, 운동신경세포 하나는 근섬유를 평균 수백 개 제어할 수 있다. 운동신경세포 한 개와 그 지배를 받는 모든 근섬유가 동시에 하나의 단위가 돼 근육의 작용을 제어하므로 이를 ‘운동단위’라고 한다.

다리 근육처럼 움직이는 범위가 넓은 근육이나 자세유지에 관여하는 항중력근은 운동단위가 커 하나의 운동신경세포가 1000개 이상의 근섬유를 지배한다. 손가락이나 눈 주변의 근육과 같이 세밀한 운동을 담당하는 근육은 하나의 운동신경세포가 몇 개의 근섬유만 지배한다. 이처럼 운동신경세포는 중추신경계와 근육 사이에서 중요한 연결 작용을 한다. 따라서 이 운동신경세포가 죽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 ⓒphoto 뉴시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스티븐 호킹 박사. ⓒphoto 뉴시스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은 뇌의 대뇌피질과 척수의 운동신경세포들만이 선택적으로 서서히 사멸되면서 오는 신경계 퇴행성 질환이다. 운동신경세포는 축색이라고 하는 긴 신경돌기를 통해 근육에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그런데 운동신경세포가 파괴되면 뇌의 통제에서 벗어난 척수가, 근육에 잘못된 명령을 보내 근력이 저하되고 근육이 경직되거나 위축된다. 이로 인해 몸에서는 점점 더 근육이 사라져 바짝 마르게 된다.

환자는 평균 2~5년밖에 살지 못한다. 10년 이상 생존한 비율은 10% 정도다. 발병빈도는 인구 10만명당 1~2명꼴. 50대 후반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드물지만 20~30대에 발병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2배 가까이 발병률이 높다.

숟가락 하나 손에 쥐는 일도 힘겹고 입 주변의 근육까지 마비돼 말조차 할 수 없게 되는 루게릭병.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대부분은 산발적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기지만, 루게릭병 환자의 약 10%는 유전성으로 발병한다. 이 중 약 20% 환자에게서 21번 염색체 위의 SOD1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확인되고 있다. ‘SOD1’는 유해성 물질인 ‘활성산소’에서 세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유전성이 아닌 산발성 루게릭병에서는 ‘흥분 세포 독성(excitotoxicity)’에 의한 아포토시스(apoptosis·세포가 유전자의 제어를 받아 스스로 죽는 현상)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외 특수한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가설, 환경적 독소의 작용이 루게릭병의 원인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산발성이나 유전성 루게릭병은 증상이 둘 다 똑같다. 그래서 루게릭병 연구자들은 발병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인간의 SOD1 변이 유전자를 발현시킨 형질전환 생쥐나 생쥐의 신경세포를 연구한다. 그 결과 신경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가 변형됐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소기관으로 에너지 분자인 ATP(아데노신 3인산)를 생산하는 세포 내 발전소다. 만약 미토콘드리아가 손상되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운동신경세포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문제는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치료제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루게릭병은 그래서 더 무섭다. 지금까지 많은 치료제의 개발이 시도되기는 했다. 동물실험에서 수명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온 약물이 100가지가 넘고, 이 가운데 8종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까지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물은 릴루졸(Riluzole)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또한 2~3개월 정도 생명을 연장하는 수준에 그친다. 근본적인 치료제라고 할 수 없다.

가장 최근에는 국내의 바이오기업 코아스템과 함께 한양대학교병원의 난치성 신경계질환 세포치료센터가 최초의 루게릭병 줄기세포 치료제인 ‘뉴로나타-알’을 개발, 릴루졸과 병용 투여하는 조건으로 지난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특별한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줄기세포 치료제의 개발은 루게릭병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지만, 이 역시 완치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정도다.

따라서 완전 치료제 개발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세계는 지금 루게릭병의 발병 원리와 경과 등에 맞춘 여러 가지 약물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루속히 완치할 수 있는 신약이 개발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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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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