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대강당에서 데이비드 말란 교수가 CS50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photo 비즈니스 인사이더
하버드대 대강당에서 데이비드 말란 교수가 CS50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photo 비즈니스 인사이더

2014년도 가을학기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많은 학생을 불러모은 강의가 탄생했다. 학부 학생의 12%가 수강신청을 했다. 과목명은 ‘CS50’. 그동안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과목으로는 탈 샤하르 교수의 ‘긍정의 심리학’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있다. ‘경제학10’과 ‘통계학104’와 같은 스테디셀러 강의도 있다.

CS50 수업은 2002년도만 해도 수강생이 100명에 불과한 비인기 수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도 가을학기 CS50의 수강신청자 수는 자그마치 875명이다. 하버드대학의 대학신문인 ‘더 하버드 크림슨’은 지난 9월 11일, CS50가 작년 가을학기에는 수강학생 700여명으로 경제학원론에 이어 2위였으나 올해는 1위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신문은 작년에 CS50 과목이 2위였기 때문에 1위 부상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CS50는 ‘Computer Science(컴퓨터 과학)’의 줄임말로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입문과정이다. 얼핏 듣기에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이 과목이 수재집단 하버드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CS50 과목을 맡은 데이비드 말란 교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이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더 하버드 크림슨’에 “최근 컴퓨터공학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 프로그래머 출신인 스티브 잡스(애플 창업자)의 성공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이 현대의 경영적 성공과 무관하지 않음을 입증한 사례다. SNS 서비스인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트위터의 설립자 잭 도시 또한 모두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경영인이다. 이들의 성공 신화는 성공을 꿈꾸는 젊은 대학생들의 관심을 받기 충분하다.

이 수업이 인기를 끄는 진짜 이유는 비전공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는 수강생 다수의 의견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수업을 듣는 78%의 학생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사전 지식이 전혀 없다고 말란 교수는 말한다.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의 CEO(최고경영자)인 수잔 위치스키도 이 수업을 들었지만 그녀는 역사와 문학을 공부한 컴퓨터 비전공자였다. 그녀는 하버드 재학생들에게 전하는 영상편지에서 자신이 대학 4학년 때 컴퓨터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보통 1, 2학년들이 듣는 CS50 수업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수업을 듣고 사고하는 관점과 방식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졸업 후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로 들어갔고 구글을 거쳐 현재 유튜브 CEO 위치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수강을 통해 바뀐 사고가 그녀를 성공적 경영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손바닥보다 작은 아이팟 하나로 움켜쥔 애플의 설립자 스티브 잡스 또한 미국의 모든 사람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자체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수재집단 하버드생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목에 몰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버드 컴퓨터공학부 학과장인 해리 루이스는 더 하버드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 “컴퓨터공학적 사고와 도구는 거의 모든 학문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하버드생들이 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의 젊은 두뇌들이 앞다투어 듣는 수업은 도대체 어떨지 궁금했다. 공식 홈페이지 ‘cs50.harvard.edu’로 접속해 둘러보았다. 대학 강의 홈페이지라기보다는 신생 기업이라 해도 될 만큼 세련되고 깔끔했다.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첫 강의가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수업 영상을 틀자 캐주얼 차림을 한 데이비드 말란 교수가 핸즈프리 마이크를 꽂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열정적으로 강의를 이어갔다. 강의 내내 그의 목줄기는 땀으로 가득했다. 교수라기보다는 세일즈맨 같았다. 그는 성공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 경영인들을 소개하는 영상과 수업이 어떤 내용을 담을지 소개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말란 교수는 날씨나 요일 등 환경적 요인에 따라 색이 바뀌는 전구 시연을 앞서 보였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어떻게 유용하고 창의적인 제품으로 탄생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말란 교수는 전화번호부에서 사람 이름을 찾기 위해 처음부터 한 장 한 장 넘길 것인지 아니면 책의 중간을 열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이름이 들어있지 않은 나머지 반을 제쳐놓고 찾을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전화번호부가 1000장일 경우 한 장 한 장 넘기면 이름이 가장 뒤에 있을 경우 원하는 이름을 찾기 위해 1000번을 넘겨야 한다, 하지만 정확히 반을 갈라 이름이 없는 반을 제하는 방법을 택하면 어떤 경우에도 10번 만에 찾을 수 있다. 말란 교수는 전화번호부 책을 찢어 던지며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의 미학이자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은 문제해결을 하는 방법에 있어서 어떤 명령체계를 어떤 방법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부분을 다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진법과 알고리즘 같은 수학적 요소가 강하다. 하지만 수업 내내 수학이나 과학수업이라기보다는 재미있는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는 것 같았다. 수백 석 규모의 큰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은 열정적인 말란 교수의 지도에 적극적인 수업 참여로 호응했다. 설명을 위해 지원자를 구하는 말란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든 학생들로 물결을 이뤘다. 첫 번째 여학생 지원자가 상기된 표정으로 강단에 올라섰다. 뒤이어 지원자는 직접 간단한 프로그래밍 해킹을 시도했다. 약간 시간이 걸렸지만 곧 해킹이 성공하자 말란 교수는 앞서 선보였던 변색 전등을 선물했다. 그러자 두 번째 지원자를 구할 때는 강의실 전체가 손을 든 학생으로 가득 찼다. 한국 대학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또한 강의를 통해 만들어질 최종 프로젝트를 실제 기업의 운영진들이 와서 검토하고 사업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30명가량의 초대받은 졸업생과 선배들이 강단 위로 우르르 몰려나와 후배들과 격의 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DJ(디스크자키)가 나와 화려한 불빛과 전자음향으로 강의실을 가득 메우며 첨단과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직접 느끼게 했다. 말란 교수의 45분짜리 강의 영상을 보고난 뒤 방금 내가 본 게 수업이었는지 콘서트였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지루할 수도 있는 공학 분야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통해 세상에 어떻게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시각화하고 체험하게 하는 수업 방식이 상당히 참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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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인턴기자·캔자스주립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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