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철원
일러스트 이철원

2003년 4월 26일, 19살 A군이 서울 동대문구에 있던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져 있는 채로 발견됐다. A군은 동성애자로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이 사무실에서 일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금 34만원과 함께 놓인 A군의 유서에는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이 나라가 싫고 이 세상이 싫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11년이 흐른 지난 5월, 자살이나 자해를 시도한 성소수자가 전체의 63%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게이인권운동단체인 ‘친구사이’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에 의뢰해 성소수자 3208명을 대상으로 펼친 ‘한국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른 결과다. A군의 죽음은 당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는데, 동성애가 청소년보호법의 유해 단어와 인터넷 금지 단어에서 삭제된 계기가 됐다. 그러나 A군이 목숨을 끊었던 2003년과 지금의 우리나라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제정하며 제4조에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도입하려 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12월 3일 현재 서울시민인권헌장은 폐기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국제적인 통계는, 우리나라가 동성애에 열린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미국의 조사전문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2013년 조사한 ‘동성애 인정해야 하나?(Should society accept Homosexuality?)’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우리나라 사람은 39%에 불과했다. 캐나다와 스페인, 독일은 80%가 넘는 사람이 ‘예’라고 대답했고 호주는 79%, 프랑스는 77%, 영국은 76%, 아르헨티나는 74%, 멕시코는 61%, 동성애 찬반 논란이 거센 미국도 60%가 넘게 ‘그렇다’고 답했다. 일본은 54%였고, 인구의 90%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가 우리보다 높은 42%의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전 세계 123개국 10만여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나라가 동성애자가 살기에 좋은 나라인가, 나쁜 나라인가?(Is the city or area where you live a good place or not a good place to live for gay or lesbian people?)’를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69위에 머물렀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8%에 불과했고, 57%는 살기 나쁜 곳이라고 대답했다. 중국이 살기 좋은 곳 14%, 살기 나쁜 곳 53%의 응답으로 73위를 차지한 것과 비교해 봤을 때 얼마 차이 나지 않는 수준이다. 일본은 50위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응답이 28%, 나쁜 곳이라는 응답은 39%에 그쳤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도 같은 질문의 조사를 했다. 2012년 시행한 ‘동성애자 관용 수준’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32개국 중 유일한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를 제외하고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나라의 점수는 19.5점. 이스라엘과 그리스가 각각 34.5점, 25.2점이었고 일본은 44.0점이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를 포함한 여러 통계지표를 토대로 우리나라의 사회자본이 OECD 회원국의 최하위 수준이라고 밝혔다.

기자는 지난 12월 2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B씨를 만났다. B씨는 지난 2008년 가족, 친구를 포함해 당시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한 게이다. 커밍아웃 후에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B씨는 “만약 커밍아웃을 고려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지 마라’고 말리고 싶다”고 말했다. “‘쟤 게이래’라는 말은 ‘쟤랑 가까이하면 병 옮는대’나 ‘쟤 불륜남이래’ 같은 말처럼 쓰입니다. 커밍아웃이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소문처럼 퍼트려달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어디를 가든 어느 곳에서든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수군수군하며 말하더군요. 특히 남자들이 저를 많이 피합니다. 제가 게이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특별한 마음을 먹을까 봐요.”

익명을 요구한 인권단체 관계자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사례가 확실히 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 그룹 내에서 아웃팅을 당하고, 집단괴롭힘 때문에 자퇴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심심찮습니다. 그 이유로 들 수 있는 게, 동성애자 본인의 인권 의식이 늘어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스로도 동성애자임을 부인하고 산 사례가 많았다면, 요즘은 성 정체성을 자각하고 드러내는 동성애자도 많아 반대급부로 차별 사례 또한 늘어났다는 얘기다.

임재형 단국대 교수(정치학)가 지난 5월 발표한 ‘한국 사회의 혐오집단과 관용에 관한 경험적 분석’이라는 논문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 집단이 상당히 배척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장 혐오하는 집단 1위는 종북세력(44.7%), 2위가 동성애자다. 21.5%의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가장 싫어하는 집단으로 꼽았는데 연령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영·호남권에 사는 사람일수록 동성애자를 혐오집단으로 꼽은 사람이 많았다.

이런 경향도 예전보다는 많이 달라진 추세다. 퓨리서치센터의 동성애 인정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2007년에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18%만이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3년에는 39%로 5년 사이 21%나 상승했다. 이는 퓨리서치센터의 응답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늘어난 속도다. 그 원인 중 하나로는 젊은 세대의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꼽을 수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를 연령대별로 나눠 보면,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18~29세 젊은층은 71%에 달했다. 50대 이상이 16%만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2000년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국내 최초의 게이 커뮤니티 사이트 ‘엑스존(http://exzone.com)’을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심의·결정한 결과에 대해 사이트 운영자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장장 7년에 걸친 소송에서 대법원은 동성애에 대해 “전통적인 성에 대한 관념 및 시각에 비추어 이를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면서 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2009년, 남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 ‘친구 사이’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의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고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동성애에 관하여는 이성애와 같은 정상적인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사회적 분위기 역시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영화 제작사의 손을 들었다. 최유 한국법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두 판결에 대해 “근 10년 동안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는 증거”라며 “엑스존 사건에서는 사이트 운영자들이 패소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내고 결과적으로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등을 개정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법적·제도적으로 동성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는 항상 논란거리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는 구체적으로 ‘성적 지향’이 차별금지 사유로 포함돼 있다. 그러나 지난 2007년부터 발의된 바 있는 ‘차별금지법’ 법안에서는 성적 지향은 차별금지 사유에서 삭제됐다. 표류 중인 서울시민인권헌장 역시 혼란스러운 동성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찬성과 반대도 치열하게 대립한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서울 노원갑)은 지난 12월 1일 국회에서 “(동성애는) 인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일부 국가의 일부 지역에서 개인의 동성애를 허용하는 바가 있지만, 인류 보편의 가치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민인권헌장에 대해 “인권헌장이란 수단을 빌려서 동성애를 합리화하려는 시도”라면서 “(동성애와 같은) 반인륜적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는 “우리나라는 2011년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채택했다”며 “차별금지 조항은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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