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으로 보따리상과 관광객이 오가고 있다. ⓒphoto 이동훈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으로 보따리상과 관광객이 오가고 있다. ⓒphoto 이동훈

지난 5월 18일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이날 오후 2시, 출국장에서 만난 50대 중국 여성 관광객 류(劉)모씨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 사는 류씨는 패키지 관광상품을 통해 4일 전 카페리를 타고 평택항을 통해 입국했다. 관광 마지막 날, 오전 10시 서울의 호텔을 나서서 관광버스를 타고 평택항까지 2시간을 달려왔다. 하지만 류씨가 탑승할 산동성 옌타이(煙台)항으로 떠나는 배는 오후 8시 출항 예정이었다. 무려 6시간을 발 디딜 틈 없는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서울에서 2시간을 달려온 평택항은 거리도 멀 뿐더러, 주변에는 공장들만 가득했다. 류씨가 찾는 한국 화장품을 살 만한 변변한 쇼핑몰도 없었다. 류씨는 “창사에서 고속철을 타고 산동 연해도시에서 6일을 보낸 후 배를 타고 한국에 넘어와 4일을 보내는 코스의 10일 여행을 3000위안(약 54만원) 좀 안 되게 주고 왔다”며 “30명 단체관광인데 싼 게 비지떡인 모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류씨와 함께 온 일행은 아예 서울에서 산 한국산 전기밥솥 위에 포커판을 벌였다.

평택항 신(新)국제여객터미널 건설을 앞두고 입지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해양수산부(장관 유기준)는 2019년 준공을 목표로 1856억원을 들여 ‘신규 국제여객부두 및 국제여객터미널’을 짓는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지난 5월 14일 33억원의 국비를 들여 국제여객부두 건설공사 실시설계용역을 국비가 드는 재정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은 중국 관광객의 주 동선(動線)인 서울 등 주요 관광지와 거리가 멀고 평택항이 원래 산업항으로 건설된 탓에 국제여객항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수부는 평택항에서 자동차로 1시간20분가량 떨어진 충남 서산시 대산항에서도 국제여객터미널 신축공사를 벌이고 있다. 지상 2층, 연면적 8500㎡의 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이다. 2012년 실시설계를 끝내고 지난해 2월 착공했다. 총 사업비 382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으로 2016년 완공이 목표다. 대산항은 평택항보다도 수도권에서 접근성이 더 떨어진다. 서울에서 대산항까지는 차로 2시간30분가량 걸린다. 해수부 대산지방해양수산청 오영훈 선원해사안전과장은 주간조선에 “내년 5월 30일 준공 예정”이라며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해수부는 평택항에서 북쪽으로 1시간20분 거리의 인천 송도신도시에도 2018년을 목표로 신(新)국제여객터미널을 건립 중이다. 기존 인천항의 제1터미널과 제2터미널을 통합한 여객터미널이다. 그간 평택항에 여객이 몰린 것은 인천항이 제1터미널(인천연안항), 제2터미널(인천내항)로 분산되어 있고, 인천항 여객터미널의 총 수용 규모가 수요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항에 신국제여객터미널이 신설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선사들은 서울과 가까워 이용객 수요가 많은 인천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평택항·대산항 국제여객터미널 건립사업의 타당성이 문제가 되고 이곳에 투입되는 공사비(2238억원)가 허공에 뜰 수도 있다.

서해안 곳곳에 국제여객터미널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한결같이 “중국과 가깝다”며 “중국 관광객 유치”란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하지만 ‘국제여객터미널’이란 이름과 달리 관광객의 동선과는 동떨어진 곳에 들어서고 있다. 항로 개설은 물론 수요 유지마저 의심스러운 곳도 있다. C·I·Q(세관·출입국·검역) 인력 배치와 유지에도 이중삼중으로 비용이 든다. 이에 “우후죽순 들어선 지방 국제항만들이 지방 국제공항처럼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서해안에는 이미 인천항을 비롯 평택항, 군산항, 목포항에 국제여객터미널이 개설돼 있다. 그나마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인천항과 평택항 두 곳 정도다. 군산항(연면적 7167㎡)·목포항(연면적 6621㎡) 국제여객터미널은 각각 1996년과 1998년 개설됐으나, 수요부족과 항로확보 실패로 여객선의 운항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군산항은 중국 산동성 스다오(石島)항과 한 개 항로만 개설 중이다. 군산~옌타이, 군산~칭다오는 각각 지난 2003년과 2009년 수요부족으로 중단됐다. 목포항은 2007년 상하이와 항로가 끊어진 이래 다시 연다는 소식이 없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선원해사안전과의 한 관계자는 “중국 항로는 오래전에 폐쇄됐다”며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국제여객터미널을 대신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평택항에 신국제여객터미널이 들어설 자리도 논란이다. 해수부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의 신형기 항만건설과장은 주간조선에 “신국제여객터미널이 검토되는 자리는 서해대교 안쪽의 내항 해경 부두 자리”라며 “현 터미널은 연안여객터미널로 활용하는 것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선사들은 “내항으로 들어가면 서해대교 진입 때 예인 등으로 인해 외항에 있는 현재 항구에 비해 체선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신국제여객터미널이 내항으로 들어갈 경우 초대형 크루즈선 등은 정작 서해대교(선박 통과 높이 62m) 높이에 걸려 입항이 불가능할 염려도 있다. 교량이 자유로운 선박통행을 가로막는 현상은 부산항대교(북항대교), 인천대교에서 반복된 문제다.

지방 항만의 국제여객터미널은 초저가 중국 패키지 여행객의 주요 입출국 통로가 된 지 오래다. 중국 여행사들이 판매 중인 평택항으로 입출항하는 한국 관광 패키지 상품은 초저가에 나온다. 5일 1000위안(약 18만원), 8일 1800위안(약 31만원), 9일 2000위안(약 35만원) 등 왕복 선박 요금을 밑도는 가격이다. 심지어 상당수 패키지 상품들은 ‘평택항’을 ‘인천’이라고 속여 팔고 있다. 평택항에서 만난 한 조선족 가이드는 “평택항이 인천항보다도 싸다”며 “싸지 않으면 평택으로 들어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제여객터미널임에도 관광객의 개별자유여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택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노선은 단 한 개. 이마저도 하루 9편에 불과하다. 배 입항이 늦어지거나 통관이 지연되면 탈 수도 없다. 평택 산업단지 곳곳과 송탄터미널까지 둘러 올라가는 터라 2시간20분 이상 걸린다. 대산항의 경우 아예 서울행 버스도 없고 가장 가까운 서산 시내까지 가는 데도 버스로 1시간30분 가까이 걸린다.

여객터미널의 규모는 커지나 국제여객터미널들을 떠받칠 고정수요조차 크게 줄고 있어 더 문제다. 평택항 등 지방 항만이 붐비는 것은 보따리상이 몰려든 탓이다. 경기평택항만공사에 따르면,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의 지난해 이용객은 49만명. 최근 중국 단체관광객도 늘었지만 보따리상 수요는 여전히 80~90% 이상이다. 평택항에서 활동하는 보따리상은 2000명가량. 입출항하는 배가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토일 주말이 아닌 월요일에 몰리는 것도 보따리상을 고려한 스케줄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사들이 손님이 많은 월요일을 선호한다”고 했다. 반면 일요일에는 출항하는 배가 웨이하이(威海)행 한 편밖에 없어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보따리상이 평택항을 선호하는 것은 통관절차가 다른 곳보다 쉬워서다. 경기도와 경기평택항만공사도 ‘소무역상인의 날’을 제정하는 등 보따리상에 대해 줄곧 우호적인 정책을 펴왔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안에 ‘소무역상(보따리상)연합회’라는 사무실을 두고 있을 정도다. 선사들도 다수왕복자(보따리상)를 대상으로 무료 배표를 제공하는 등 보따리상 유치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보따리상은 엄연히 관세법 위반 단속 대상이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앞에도 ‘여행자가 반입한 자가소비용 면세물품(농산물 등)을 판매수집할 경우 관세법에 의거 처벌됩니다’라고 평택직할세관장이 붙여둔 현수막이 나부낀다. 초고율 관세가 매겨지는 중국산 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창구로, 국내 농산물 시장을 교란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크다. 밀수·밀항 문제도 있다. 평택항 수화물탁송장에서 만난 보따리상 김모씨는 “옌타이항으로는 의료기기 등 통관 불가능한 품목도 들어갈 수 있다”며 “돈 주면 다 아는 사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보따리상은 “어디서 나왔느냐”며 “사진 찍지 말라”고 했다.

이에 한·중 양국 정부는 보따리상이 휴대 가능한 상자 수와 무게 등을 점차 강화하는 조치를 취해왔다. 통관을 엄격히 하면서 보따리 화물 자체가 지금은 소량컨테이너화물(LCL)로 점차 대체되는 추세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가 연내 발효되고 향후 양국 간 관세장벽이 대폭 낮아지면 그 틈을 공략해 온 보따리상도 줄어들 것이다. 고령화도 심해 자연소멸 과정을 밟는 중이다. 이날 오후 1시 산동성 르자오(日照)에서 평택항으로 입항한 배에서 하선한 보따리상 상당수가 60~70대로 보일 정도였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도 꽤 있었다.

보따리상의 기본수요에 의존해 지어지는 국제여객터미널은 항로 확보 자체가 우려되는 형편이다. 평택항과 대산항의 경우 비슷한 입지에 들어서는 탓에 향후 국제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 한정된 항로를 나눠 가져야 할 공산이 크다. 기존 항로가 없는 대산항의 경우 산동성 룽청의 롱옌항(龍眼港)을 잇는 항로를 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룽청의 롱옌항과 잇는 항로는 평택항에서 대룡해운이 이미 운항하고 있다. 이에 새 터미널이 생기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한·중카페리협회의 전작 전무는 주간조선에 “대산항의 경우 시설도 아직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라 선사들의 선호도를 지금은 판단하기 어렵다”며 “대산항이 준공되고 선박을 띄워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평택항과 대산항 두 항만은 애당초 여객항이 아닌 산업항으로 특화된 항만이다. 평택항은 국내 최대 자동차 항만이다. 바로 배후에 포승국가산업단지(포승산단)를 비롯해 현대차 아산공장, 기아차 화성공장, 쌍용차 평택공장을 두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처리량 635만대 중 24%에 달하는 151만대를 처리했다. 국제여객터미널 주위로 컨테이너 트럭과 자동차 운반차량들이 빈번히 통행해 여객이 드나들기에는 부적합하다. 대산항 역시 석유화학항으로 계획된 곳이다.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등 안전 문제로 인적이 드문 외곽에 있어서 국제여객터미널과는 거리가 있다.

항만 고유 특성을 무시한 국제여객터미널 신설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역구 의원들이 국제여객터미널 신설 공약을 내걸면 중앙 부처(해수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구조다. 전국 각지에 국제공항이 우후죽순 들어선 것과 똑같다.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신설은 평택을 지역구로 둔 원유철(평택갑)·유의동(평택을) 의원 등이 앞장섰다. 민자사업으로 수차례 무산된 것을 국비가 들어가는 재정사업으로 전환시킨 것도 두 의원의 힘이다. 두 의원은 해수부 발표 직후 “해수부, 기재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신설 실시설계비 34억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의 경우 얼마 전 자살한 성완종 전 의원의 지역구(충남 서산·태안)다. 성 전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으로서 국제여객터미널 건설 예산 확보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의원들의 요구를 조정하며 중심을 잡아야 할 해수부는 현역 의원(이주영·유기준)이 줄곧 장관직을 차지했다. 곳간 열쇠를 쥔 기획재정부 장관도 현역 의원(최경환)이다. 동료 의원들의 국비지원 요구를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는 구조다. 원유철 의원은 여당인 새누리당 정책위 의장으로 있어 해수부, 기재부에서도 홀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문제는 항만투자가 분산되면서 정작 여객수요가 몰리는 인천항, 부산항, 제주항 등의 국제여객터미널은 반쪽짜리로 지어지고 있다는 것. 해수부 항만개발과에 따르면, 고부가가치의 크루즈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국내 크루즈 전용부두는 부산 영도, 제주 외항, 여수 신항 등 3개 선석에 불과하다. 각 8만톤급에 그친다. 이에 해수부는 지난해 “크루즈선 증가와 대형화에 대비해 오는 2020년까지 전국 9개 항만에 크루즈부두 13선석을 확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 여수, 제주, 서귀포(강정), 부산, 목포, 포항, 평택, 속초가 대상지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안 된 까닭에 초대형 크루즈선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천항의 경우 국비 1400억원을 비롯 5569억원을 들여 신국제여객터미널을 짓고 있다. 하지만 신국제여객터미널의 크루즈 선석은 15만톤급에 불과해 20만톤 이상의 초대형 크루즈선은 접안할 방법이 없다. 신국제여객터미널 길목에 있는 인천대교의 통과 높이(66m)로 인해 높이 72m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 ‘얼루어 오브 더 시즈’ 같은 세계 최대 크루즈선은 만조(滿潮) 때 입항 시 다리와 충돌 위험마저 있다.

지난 2월 2343억원을 들여 준공한 부산 북항의 국제여객터미널 역시 10만톤급 크루즈밖에 입항할 수 없다. 오는 7월 개장하더라도 부산항대교의 통과높이(60m) 제한으로 14만톤급 이상의 초대형 크루즈선이 입항할 수 없어서다. 이에 해수부는 별도로 부산 영도 동삼동 기존 크루즈 부두에 오는 2018년까지 44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22만톤급 크루즈 부두를 확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허술한 입지선정 탓에 같은 지역에서도 중복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제주도 제주시의 제주 외항도 오는 7월 준공을 목표로 사업비 770억원을 투입해 크루즈 전용부두를 건설하고 있지만 각각 8만톤급, 10만톤급에 그친다. 제주 서귀포 강정항(제주해군기지)에 들어서는 크루즈 부두 역시 15만톤급에 불과하다. 강정항은 설계 문제로 15만톤급 크루즈선의 입항도 의문시돼 왔다. 22만5000톤급의 ‘오아시스 오브 더 시즈’ ‘얼루어 오브 더 시즈’ 같은 선박 역시 입출항이 불가능하다. 현재 로열캐리비안사는 22만7000톤급의 더 큰 크루즈선도 건조 중이다.

중국은 일찍이 톈진, 상하이, 싼야(하이난다오)에 22만톤급의 크루즈선이 정박 가능한 국제여객터미널을 갖췄다. 결국 중국에 기항한 배가 한국을 경유하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셈이다. 해수부 허명규 항만개발과장은 주간조선에 “산업항이라서 (여객들이 사용하기) 불편한 측면은 좀 있다”면서도 “새로 짓고 있는 대산항은 별도의 항로를 새로 개설할 계획으로 있어 평택항과 수요가 분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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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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