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트닷컴’ 창업자 마크 로어
‘제트닷컴’ 창업자 마크 로어

파란만장, 산전수전, 우여곡절의 세상이지만 글로벌 비즈니스의 종결자는 미국이다. 연 수익률 20% 이상을 보장하는 ‘미다스의 땅’으로 미국만 한 곳도 없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불안, 버블경제 폭발 직전의 중국 경제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번영의 나라가 미국이다. 고용이 급증하고 소비가 살아나고 있다. 세계 투자가들의 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제트닷컴(Jet.com)은 그같은 2015년 미국의 분위기를 웅변한다.

제트닷컴은 지난 7월 21일 오픈한 전자상거래 IT 기업이다. ‘제트닷컴’은 모바일이나 통신 비즈니스와 무관한,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상품거래에 착안한 IT 기업이다. ‘제트닷컴’은 출발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모바일이나 통신과 무관한 곳이란 점과 함께, 엄청난 투자가가 몰린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제트닷컴이 활동에 들어간 것은 1년 전부터다. 끌어모은 투자금액은 2억2500만달러에 달한다. 기존의 모바일 관련 IT 기업에 대한 투자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전자상거래 업체에 대한 투자액치고는 엄청나다. 전자상거래 IT 기업의 대명사는 아마존닷컴이다. 1994년 7월 6일 제프 베조스가 아마존을 인터넷에 띄울 당시의 투자액은 불과 1000만달러 정도다.

전자상거래 기업의 ‘수확 시기’는 모바일에 비해 느리다. 아날로그 상품을 디지털화하는 과정을 포함해, 돈이 손에 잡힐 때까지 몇 년이 걸린다. 시스템이 한번 구축되면 안정된 이익이 보장되기는 하지만,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은 ‘치고 빠지는’ 초스피드 투자 패턴에 익숙해 있다. 제트닷컴이 2억2500만달러를 끌어모으고, 준비기간에 불과하던 지난 1년간 지출액이 4000만달러에 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IT업계의 기대주로 부상하게 된다. 그같은 기대에 힘입어 제트닷컴이 미국 소비자 눈앞에 등장한 첫날, 월스트리트는 제트닷컴의 시장가치를 30억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2015년 7월, 아마존의 시장가치는 2250억달러다.

확실한 비즈니스 플랜은 투자가 몰려들고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핵심이다. ‘제트닷컴’만이 가진 비즈니스 플랜, 즉 비즈니스 모델은 어떤 것일까. 전자상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격경쟁력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격대는 아마존과 거의 비슷하다. 실제 ‘제트닷컴’은 아마존을 의식해 구체적인 가격을 열거하고 있다. 아마존에서의 가격이 얼마인지 밝히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아마존 사이트로 바로 연결해 주고 있다.

실제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 ‘제트닷컴’에 들어가 살펴보자. ‘제트닷컴’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등장하는 ‘쇼핑 시작’을 클릭하면 곧바로 생활용품이 등장한다. 세탁용 세제인 타이드(Tide)가 등장한다. 클릭하면 각각 다른, 크기나 가격에 따라 다르게 나눠진 84종류의 타이드가 나온다. 타이드 100온스짜리 상품을 클릭해 보자. ‘이틀 내 배달’이란 설명과 함께 1개당 14.11달러라는 가격표가 눈에 띈다. 바로 옆에 아마존과의 가격비교 창이 떠 있다. 한 개를 살 때는 가격이 똑같이 14.11달러지만 개수가 늘어나면 가격 차가 나기 시작한다. 가격비교 창에 따르면, 두 개를 사면 아마존보다 9.54달러가 싸고, 4개를 사면 19.88달러가 싸다고 나온다. 8개를 사면 무려 42.88달러가 싸다.

지난 7월 21일 웹사이트 정식 오픈 전 ‘제트닷컴’이 정식 출범 카운트다운을 하며 회원 모집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정식 오픈 전 가입회원에게는 3개월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15만명이 가입했다.
지난 7월 21일 웹사이트 정식 오픈 전 ‘제트닷컴’이 정식 출범 카운트다운을 하며 회원 모집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 정식 오픈 전 가입회원에게는 3개월 무료배송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15만명이 가입했다.

세제 하나를 통해 볼 경우 ‘제트닷컴’의 가격경쟁력은 아마존을 압도한다. 아마존이 방관해 온 박리다매(薄利多賣)를 통한 가격파괴다. 아마존은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을 열거해 중간자 입장에서 전자상거래를 주도하는 기업이다. 아마존 독자 브랜드도 있지만, 중심은 판매자다. ‘제트닷컴’은 중간자로서가 아니라, 직접 개입해서 가격을 조정하는 곳이다. 하나 살 때와 대량으로 구입할 때의 가격을 ‘과학적’으로 차별화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아마존의 최대 이점은 소매 판매상의 가격보다 낮다는 데 있다. 일부 주의 경우 세금을 물리지만,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구입에 따른 세금을 면제한다는 장점도 있다. 하루이틀 늦게 도착하기는 하지만, 거리의 상점보다 싼 것이 아마존의 매력이다. ‘제트닷컴’은 아마존의 매력을 넘어선, ‘가격파괴의 파이어니어’에 해당한다. 타이드 세제 하나만이 아니라 모든 상품을 아마존의 가격과 비교하면서 아래로 끌어내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제트닷컴’의 가격파괴가 가능할까.

가장 큰 배경은 도매상에 있다. 미국 내 전자상거래 상품의 90% 정도는 소매가를 기준으로 한다. 전국적 체인망을 가진 대형 도매상이 물건 한두 개를 팔려고 아마존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아마존에서 활동할 ‘개미군단’, 즉 개별 판매상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대재벌’과 같은 존재가 대형 도매상이다. 제트닷컴은 이들 대재벌 도매상을 자신의 판매창구로 연결한다. 1개당 가격은 아마존과 같거나 조금 싸지만, 구입량이 늘어날수록 할인폭이 대폭 증가한다. 작은 소매상점들이 한꺼번에 물건을 사들이면서 얻게 되는 ‘규모의 경제’와 같은 효과를 ‘제트닷컴’이 제공하는 셈이다.

대형 도매상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마존도 응용할 수 있는, ‘고양이 따라하기(Copy Cat)’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무시할지 모르겠다. 이미 글로벌 전자상거래 대제국을 구축한 아마존이 도매 판매에 들어갈 경우 ‘제트닷컴’ 같은 기업은 한순간 없어질 것이라 판단할 듯하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결코 아마존이 흉내 낼 수 없는 가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마존은 소매 판매상을 발판으로 한 기업이다. 대형 도매상을 끌어들일 경우 기존의 아마존 이용 소매 판매상들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대형 도매상들이 가격파괴로 내리칠 경우 소매 판매상들의 아마존 이탈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대형 도매상들만 우글대는 아마존의 장래는 결코 밝지 못하다. 대형 도매상으로 채워진 ‘제트닷컴’도 아마존과 같은 운명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기업 규모라는 점에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아마존이 항공모함이라고 할 때 ‘제트닷컴’은 초소형 고속정에 비유될 수 있다. 아마존에서 일하는 직원은 전부 15만4000여명에 달한다.(2014년 12월 기준) 직원의 절반 정도는 아마존 특유의 초대형 물류시스템에 관련돼 있다. ‘제트닷컴’은 현재 300명 선의 직원이 전부다. 물류 관련 직원은 거의 없다. 이유는 자신들이 아니라 도매상들이 현지에서 직접 물건을 배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가격파괴를 유도하기는 하지만 물류까지 넘보지 않는 순수한 전자상거래 역할에 만족한다. 따라서 무인비행기 드론을 활용한 직접 배송시스템은 ‘제트닷컴’의 영역 밖의 일이다.

아마존과 타이드 세제 가격비교를 하고 있는 ‘제트닷컴’ 웹사이트.
아마존과 타이드 세제 가격비교를 하고 있는 ‘제트닷컴’ 웹사이트.

가격파괴에 관한 잠재력은 이해가 되지만, 탐욕스러운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을 만족시켜 줄 수익 여부에 대한 답이 궁금해진다. 49.99달러에 달하는 연회비가 답이다. 가입할 경우 배송비가 무료인 회원제 서비스다. 아마존의 경우 1년 연회비가 99달러다. 아마존과 마찬가지로 제트닷컴 연회비 무료배송 서비스의 경우 늦어도 이틀 만에 주문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제트닷컴은 2020년까지 연회원 15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총 200억달러의 매출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1500만명의 1년간 연회비 총액은 7억5000만달러다. 제트닷컴이 노리는 수익창출의 기본이다. 제트닷컴 운영비와 도매상들이 보내는 물건의 배송비는 이들 연회비를 통해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다고 한다. 투자가들은 제트닷컴의 비즈니스 모델과 플랜에 대해 이의가 없는 상태다.

현재 ‘제트닷컴’이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자신의 매장으로 도매상을 유입하는 것이다. 연회원 확산도 중요하겠지만, ‘제트닷컴’을 통해 저가의 도매상품을 팔 수 있는 네트워크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아마존에서 팔리는 상품 규모는 전부 450만 종류에 달한다. 막 문을 연 ‘제트닷컴’은 아직 10만 종류에 불과하다. 현재로서는 ‘제트닷컴’이 도매상에 접근하는 양상이겠지만, 인기를 끄는 순간 양자의 입장은 역전될 것이다. 도매상들이 보다 더 저가의 상품을 ‘제트닷컴’에 올리려 할 것이다.

제트닷컴의 등장은 IT 세계가 갖는 가능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증거다. 글로벌 골리앗 IT 기업을 쓰러뜨릴 약점을 발견해 한순간 절벽 밑으로 밀어내는 작전이다. 천하의 아마존이지만, 불똥이 떨어진 상태다. 2L짜리 세제 10통, 30개짜리 화장지 5다발, 이탈리아산 생수 5케이스를 한꺼번에 마련하려는 소비자들은 ‘제트닷컴’으로 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집이 크다. 한꺼번에 물건을 왕창 사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패턴이다. 흥미롭게도 제트닷컴은 아마존만이 아니라, 아날로그 도매상인 코스트코(Costco)에도 극심한 영향을 줄 전망이다. 코스트코는 한국에도 진출해 크게 성공했다. 초대형 가격파괴 공간이 디지털의 제트닷컴으로 옮겨갈 경우 아날로그 기업 코스트코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제트닷컴’ 창업자 마크 로어

아마존에 자신의 소프트웨어 팔고 수년간 운영 아마존 장단점 속속들이 꿰뚫고 있어

2010년 하버드대학의 폴 곰퍼스 교수는 흥미로운 비즈니스 리포트를 썼다. 벤처기업의 성공률을 창업자의 배경과 연결시킨 필드 스터디다. 결론만 말하자면 실패 경험을 한 창업자의 경우 22% 정도 비율로 벤처기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 실패를 하지 않고 곧바로 성공한 창업자의 성공률은 어떨까. 30% 정도다. 곰퍼스 교수에 따르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 성공이 성공의 어머니”다.

‘제트닷컴’의 창업자 마크 로어(Marc Lore)는 이 같은 필드 스터디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미국 IT업계에 널리 알려진 ‘성공한 창업자’이기 때문이다. 2011년 미국 벤처업계에서 화제가 된 ‘퀴드시(Quidsi)’를 만든 주인공이다. ‘퀴드시’는 로어가 친구인 비니트 바라라(Vinit Bharara)와 공동출자해 만든 IT기업으로, 도매 판매 전문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낸 곳이다. 어린이 기저귀와 관련용품을 파는 ‘다이퍼스 닷컴(Diapers.com)’이 대표적으로 이를 쓰는 곳이다. 로어가 만든 퀴드시의 소프트웨어는 아마존닷컴도 구입했다. 구입 가격은 약 5억5000만달러. 로어는 이후 2년 반 동안 아마존에 들어가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의 활용을 돕는다. 결국 그때 아마존을 속속들이 파악한 것이 이번에 ‘제트닷컴’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로어는 아마존을 통해 돈을 벌고, 아마존의 장단점을 습득해 아마존에 도전한 ‘트로이의 목마’다.

이번에 ‘제트닷컴’을 출범시키기도 전에 억 단위의 투자금이 몰려든 것은 로어만이 가진 이 같은 특별한 배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5억달러 성공담’과, 골리앗인 아마존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그의 체험담으로 투자금을 끌어당긴 것이다. 로어는 자신이 만든 박리다매 소프트웨어는 “다른 IT기업들이 모방하기 어려울 것”이라 단언한다. 가장 싼 도매상품을 찾아서 소비자와 빠르게 연결해 주는 비즈니스 모델은 자신만의 특허라 말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은 손자병법만이 아니라 IT세계에도 통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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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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