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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2호] 201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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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준의 차이나 워치]대만의 본성인과 외성인 60년 갈등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 지난 1월 16일 14대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차이잉원 대만 총통. photo 연합
‘대만(臺灣)’에는 3만년 전부터 신석기 인류가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이전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산해경(山海經)에는 ‘바다 신선이 사는 섬 봉래(蓬萊), 영주(瀛洲)’ 등으로 기록돼 있다. BC 221년 진(秦)나라를 세운 시황제(始皇帝)는 불로장생 약재를 찾아 신하를 이 섬에 파견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1544년 부근을 통과하던 포르투갈 선원들이 초록색의 이 섬을 발견해서 ‘아름답다’는 뜻의 ‘포모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그때부터 국제적 통칭은 ‘포모사 아일랜드(Formosa Island)’가 됐다. 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민진당) 사람들은 고구마 모양의 녹색 섬 ‘미려도(美麗島)’를 그려넣은 깃발을 국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582년 7월 2명의 스페인 신부와 1명의 예수(耶蘇)회 신부가 이 부근에서 난파해서 75일간 머물렀다. 1624년부터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주해서 살기 시작했고, 대만 남부 원주민들 언어로 ‘외래자(外來者)’를 뜻하는 ‘Taian(타이완)’을 지역명으로 사용했다. 이 지역명이 한자로 음역되어 ‘대원(臺員)’ ‘대만(大灣)’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1661년 명조(明朝)의 정성공(鄭成功)이 이끄는 점령군이 네덜란드인 정권을 무너뜨렸고, 1683년 청조(淸朝)에 복속됐다. 이때 대만 건너편 푸젠(福建)성에서 한족(漢族)의 집단 이주가 이뤄졌다.
   
   현재 대만에는 대륙에서 건너온 98%의 한족(漢族)과 이른바 ‘고산족(高山族)’이라고 불리는 2%의 소수민족 원주민이 살고 있다. 98%의 한족 가운데에는 명말청초(明末淸初)에 푸젠성에서 이주한 사람들(70%)과 중국 남부에서 건너온 ‘객가인(客家人·15%)’들을 주축으로 하는 ‘본성인(本省人)’, 1949년 중국공산당에 패해서 섬으로 건너온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지지 세력인 ‘외성인(外省人·13%)들이 살고 있다. 본성인들은 대체로 푸젠 방언인 ‘민남어(閩南語)’와 객가인 전통 언어인 객가어(客家語)를 사용하며, 외성인들은 이른바 ‘국어(國語)’라는 이름으로 중국 대륙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자의 발음 표기는 중국 대륙의 병음(倂音·Pinyin)을 사용하지 않고, 서양 제국주의의 중국 침공 때 영국 외교관들이 만든 웨이드 자일(Wade Gyle)식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대만은 우리보다 15년이나 더 긴 51년간의 일본 식민통치를 겪었다. 1894년에 발생한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한 결과 1895년 4월에 대청제국과 일본 간에 맺은 시모노세키조약(중국명 마관조약) 제2조 ‘대만섬과 펑후(彭湖)제도 등 부속도서와 위도 41도 이하의 랴오둥(遼東)반도를 영구 할양한다’는 조항에 따라 일본 군국주의의 식민지가 됐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감정은 우리와 대만 사람들이 다소 다르다. 우리는 “한반도의 한겨레가 일본 제국주의의 침공에 무릎을 꿇고 식민지가 됐다”고 생각하는 반면, 대만 사람들, 즉 본성인들은 “우리의 의사나 능력과는 상관없이 북양대신 리훙장(李鴻章)이 청일전쟁에서 패해 대만을 일본의 손에 넘겨주었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선언 라디오 방송은 대만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들었다. 이후 우리는 남쪽은 미국의 영향권 아래 북쪽은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갔지만 대만은 장제스의 국민당 통치를 받았다. 1947년 2월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대만에서는 Taipei로, 대륙에서는 Taibei로 표기)에서는 ‘2·28사건’이 발생했다. 대륙에서 건너오기 시작한 외성인들과 이전부터 거주하던 본성인들 사이의 감정싸움이 서로 죽고 죽이며 파업과 거리 시위가 이어지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일본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대륙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근대화됐다고 자부하는 본성인들과 새로운 주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는 외성인들 간의 갈등이 폭발하자 장제스의 국민당 군부는 본성인들에게 발포하고 검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2·28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성인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를 그린 영화가 1989년에 만들어진 ‘비정성시(非情城市·A City of Sadness)’다.
   
   ‘비정성시’는 타이베이 북쪽 기륭(基隆)에서 ‘소상해(小上海)’라는 큰 식당을 경영하는 임씨(林氏) 일가 4형제 이야기다. 큰형 문웅(文雄)은 장남이라 경영권을 물려받고, 둘째 문삼(文森)은 의사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필리핀에서 실종되고, 셋째 문량(文良)은 일본 식민통치 말기에 상하이에서 일본군의 통역을 했다고 해서 국민당에 스파이로 낙인찍혀 미치고, 넷째 문청(文淸)은 사진관을 경영한다. 이들에게는 국민당 장제스의 강압통치가 일본 식민통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나은 것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4형제의 여러 친구들이 국민당 조직에 사살당하고 체포당했기 때문이다.
   
   2·28사건으로 대만 전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됐고, 국민당의 계엄통치는 40년이나 지속된 끝에 1987년 대만섬 출신의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때 해제됐다. 외성인들이 지지하는 국민당에 맞서 본성인들이 민주진보당을 발족시킨 것은 1986년이었다. 본성인 지식인들을 주력으로 하는 민진당은 2000년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을 당선시킴으로써 국민당의 50년 통치에 마침표를 찍는 듯했다. 그러나 천 총통과 부인의 부패사건 폭로로 민진당은 2008년 정권을 내주었고, 이번에 천수이볜이 발탁한 차이잉원(蔡英文)이 총통에 당선됨으로써 다시 정권을 되찾았다.
   
   차이잉원의 아버지 차이제(蔡潔)는 중국의 유대인이란 말을 들은 객가족(客家族)으로 일본군의 징집을 피해 지린(吉林)성 기계학교 비행기과를 다녔다. 일본 패전 후에 대만으로 돌아와 운수업과 부동산업을 해서 성공한 사업가가 됐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법학박사 출신인 차이잉원은 차이제가 5명의 부인에게서 낳은 11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로, 아버지가 물려준 토지 4필지와 건물 2채, 현금 1800만대만달러(약 8억원)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이잉원의 의식구조는 철저한 본성인 출신 지식인으로 사실상 대만 분리독립인 ‘Republic of Taiwan’ 추구주의자이며, 중국공산당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에게 앞으로 많은 고민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승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중국학술원 연구위원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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