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8일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 옆 등탑이 있던 자리가 흰색으로 표시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월 28일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 옆 등탑이 있던 자리가 흰색으로 표시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월 28일 오후 3시,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 전망대. 날씨가 맑아 북한 개성의 송악산이 훤히 건너다 보인다. 여기서 개성과의 직선거리는 불과 23㎞. 개성공단도 약 20㎞ 거리에 있다. 북한과는 폭 1.7㎞의 강이 가로막고 있을 뿐인데 양쪽 둑에 모래가 쌓이는 경우 강폭이 700m까지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에 있어 신원조회를 마친 사람과 차량만 들어올 수 있다. 애기봉 건너편은 북한 서부전선을 관장하는 2군단이 지키고 있고, 우리는 해병 2사단이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현재 애기봉에는 1979년 세워진 낡은 전망대가 관광객을 맞고 있다. 그런데 이 전망대 서쪽 벽 바닥 보도블록에 흰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가로, 세로 5m 크기의 사각형이 보였다. 사각형 가운데에는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교대로 칠해진 철제 기구가 놓여 있었다. 현재 애기봉을 관리하고 있는 경기도재향군인회 한승희 관리사무소장은 “2014년 10월까지 점등을 위한 등탑(燈塔)이 놓여 있던 자리”라며 “올해 11월부로 전망대 관리주체가 재향군인회에서 김포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대북 심리전의 대표적 상징물이었던 애기봉 등탑은 올해도 재건되지 않을 전망이다. 애기봉 꼭대기에는 2013년까지 전망대 옆에 철탑이 세워져 있었다. 지난 1971년부터 2003년까지 이 철탑은 매년 연말 불을 밝혔다. 여기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애기봉 등탑은 군사분계선(MDL)과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어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을 밝히면 불빛을 북한 주민들이 육안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평화를 기원하는 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는 2003년을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 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인 2004년 6월, 2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모든 선전 활동을 중지하기로 합의하면서 북한을 자극해온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도 점등하지 않기로 했다.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에 다시 불이 켜진 것은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명박 정부는 다시 등탑의 불을 켰다. 이때 북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11년에는 그해 12월 19일 김정일이 사망하자 상중(喪中)인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 스스로 불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다시 불을 밝혔다. 그러자 새로 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은 “등탑의 불을 켜면 김포지역을 포격하겠다”고 위협해 우리 군이 전면 대응 태세에 돌입하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인 2013년에도 애기봉 등탑은 불을 밝히지 않았다.

2014년 애기봉 등탑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해병대 중령 출신인 한승희 소장에 따르면 그해 10월 국방부는 “안전성을 진단한 결과 ‘D급’ 판정을 받았다”며 애기봉 등탑을 철거했다. 같은 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철거한 등탑 자리에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겠다고 했으나 “북한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인근 주민들로 인해 설치가 무산됐다.

2012년 12월 22일 애기봉 등탑에 불이 켜지고 있다. 이후 애기봉 등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2012년 12월 22일 애기봉 등탑에 불이 켜지고 있다. 이후 애기봉 등탑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다.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연말마다 점등… 2013년 이후 소등

현재 애기봉 꼭대기는 변모를 앞두고 있다. 지난 4월 김포시는 건설된 지 40년 가까이 된 애기봉 전망대를 헐고 2016년 1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애기봉 꼭대기에 평화생태공원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평화생태공원 조성 공사는 행정 절차상의 문제로 착공이 늦어져 실제 공사는 내년 3월 시작된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 조성사업’이라는 명칭으로 약 2년간 진행될 이 사업에는 273억원이 투입되며 지하 1층·지상 3층 전망대, 지상 2층 전시관, 야외광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하지만 이 평화생태공원 조성안에는 이전에 있던 등탑 재건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다. 백성욱 김포시 문화예술과 팀장은 전화통화에서 “현재로서는 등탑을 다시 만들 계획은 없다”며 “새로 만드는 전망대 부지에는 기존에 등탑이 놓여 있던 자리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유영록 김포시장(더불어민주당)은 “애기봉 전망대를 과거 남북 대립과 반목, 냉전체제의 단절된 공간에서 협력과 평화교류의 장인 평화생태공원으로 꾸며 김포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으로 만들겠다”며 평화생태공원 조성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김포시의 이 같은 계획이 알려지면서 현재 보수단체에서는 반발이 일고 있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대북 심리전에 유용하고 역사가 깃든 우리 상징물을 스스로 철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애기봉 등탑을 재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이 애기봉 등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등탑이 그들에게 뼈아픈 상징물이기 때문”이라며 “자유와 평화의 빛을 나타내는 상징물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예산을 확보해 다시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포시가 애기봉 전망대를 ‘과거 남북대립과 반목의 현장’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북한과 대치한 최일선 지자체인 김포시 대북관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보수단체들의 지적이다.

애기봉은 6·25전쟁 기간 동안 ‘154고지’로 불린 봉우리다. 휴전을 앞두고 총 62회의 혈전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북한이 격한 반응을 보여온 애기봉 성탄 트리는 정전 직후인 1953년, 한 병사가 평화를 기원하며 애기봉에 있는 한 소나무에 불을 달아 켠 데서 유래됐다. 1971년부터 높이 18m의 등탑을 만들어 매년 연말 점등을 했다.

애기봉(愛妓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병자호란 당시 청의 군사에게 잡혀간 평안감사를 그리다 죽은 기생 애기(愛妓)에서 비롯됐다. 그가 유언으로 “봉우리 꼭대기에 묻어달라”고 해 묻힌 자리가 현재 애기봉 휘호가 그려진 비석이 있는 위치라고 한다. 애기봉은 지난 1966년 서부전선 최전방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봉 이름의 유래를 듣고 애기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을 세우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매년 추석 때면 애기봉 꼭대기에는 실향민들이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한다.

올 12월부터 일반 관광객은 애기봉 전망대 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 기존에 애기봉 전망대를 위탁 운영하던 재향군인회가 11월 30일부로 철수하고, 김포시가 평화생태공원 조성 공사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포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3월부터는 애기봉 전망대를 허물고 새로 짓는 공사를 시작하는데, 부지가 협소하고 사고 위험이 있어 관광객들의 이용을 통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기봉 전망대에서 맞은편 북녘 땅을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것이 북한의 ‘위장 마을’이다. 북한의 경제력이 우월한 것처럼 과시하기 위해 4층 아파트 몇 채를 지어놓고 주민 일부를 살게 해 놓은 마을이다. 현재는 약 150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장 마을’ 주민들이 애기봉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을 다시 보게 될 날은 언제일까.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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