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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59호] 2019.05.27

북한 식량난 호소는 제재 완화 노린 사기극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empas.com

▲ 2016년 9월 김정은이 자신이 현지 지도한 농장에서 수확한 옥수수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쌀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4월 29일자 ‘쌀로써 당을 받들자’라는 제목의 정론에서 소개한 김일성의 발언이다. 정론은 김일성의 발언을 해석하면서 “금보다 쌀이 더 귀중하다”며 “농사야말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천하지대본이라는 심오한 뜻이 그대로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정론은 이어 “모든 힘을 농사에 총집중, 총동원하는 것은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의 정론이 그동안 북한 정권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쌀농사에 전력투구하라는 이런 내용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쌀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북한의 식량난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5월 3일 ‘새 땅을 대대적으로 찾아 경지면적을 늘리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새 땅을 더 많이 찾아내 경지면적을 늘리는 것에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의 식량 부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노동신문이 연일 식량 증산을 강조하는 기사와 사설 등을 게재하면서 식량난을 간접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것은 북한 정권의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식량난을 명분 삼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를 해제 또는 완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국제사회가 실제 식량 지원까지 해준다면 식량난을 어느 정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지난 2월 28일 하노이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에 식량이 부족하니 지원해달라고 SOS를 보냈다. 이에 대해 WFP와 FAO는 현장조사를 직접 해봐야 식량 지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답했고, 북한 정권은 가능한 빨리 오라면서 비자까지 급히 내주었다. 이에 따라 WFP와 FAO는 지난 3월 29일부터 4월 12일까지 실사단을 파견해 북한의 식량 현황을 조사했다.
   
   WFP와 FAO가 지난 5월 3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회계연도(2018년 11월〜2019년 10월) 북한의 식량 부족량은 136만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올해 식량 생산량을 417만t으로 전망했으며, 올해 식량 수요는 576만t이어서 부족량은 159만t으로 집계했다. 여기에 현재 계획된 수입량 20만t, 국제기구가 북한에 지원하기로 한 2만1200t을 고려해도 136만t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 전체 인구의 40%인 101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굶주림에 내몰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식량난은 최근 10년 새 최악이라면서 심각한 식량 안보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마당은 보지도 못한 유엔 실사단
   
   그런데 보고서에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WFP와 FAO는 북한 식량난의 원인으로 지난해 폭염과 홍수 및 올해 초 가뭄이 작황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도 식량난을 야기한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로 인해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농기계의 부품과 농기계를 운영할 유류가 부족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은 북한 정권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북한 인권특사는 “북한 정권은 습관처럼 식량 원조를 요청해왔는데 이번엔 식량난이 대북 제재 때문이라고 강조했는데 이것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서 “북한 정권은 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 제재가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실사단은 북한 정권이 제공한 차량을 타고 6개 도를 돌면서 총 155개 농가를 살펴보고 농민들을 만나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안내를 받아 벌인 이런 조사는 신뢰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이 과거부터 실사단이 조사를 오기 전에 주민들에게 철저하게 사전교육을 시켜 각본대로 말하도록 한다는 것은 이미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실사단은 정작 북한 주민들이 식량 등을 활발하게 거래하는 장마당은 가보지도 못했다. 실사단은 장마당에 가보겠다고 요청했지만, 북한 정권은 ‘장마당에서 마라톤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허가하지 않았다. 실사단은 북한 정권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고 들려주고 싶은 것만 들은 셈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WFP와 FAO의 보고서대로 정말 심각한 것일까. WFP와 FAP의 보고서에서 제기한 북한 식량난의 근거가 되는 인구수와 수요량 통계는 북한 정권이 제공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 정권이 인구수와 수요량을 왜곡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 인구를 250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는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탁성한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이 ‘북한경제리뷰 4월호’에 게재한 ‘북한군 실제 병력수 추정 및 향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군 병력은 2013년 110만5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에서 청년층 남성 인구가 줄기 시작하면서 군 규모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북한군 병력이 2021년 100만명 밑으로 내려가고, 2026년에는 80만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16세 청년 남성 인구가 2012년 21만3000명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북한군 규모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군에 입대하는 청년 남성 인구가 줄어들면 당연히 전체 인구가 감소했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인구에 대한 통계가 왜곡됐다면 북한에 필요한 식량 수요도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 북한 정권이 주민들에게 쌀 생산을 독려하는 내용의 포스터.

   인구수와 수요량 왜곡 가능성
   
   북한의 식량 수요량은 1인당 하루 평균 배급 목표 기준량으로 삼고 있는 500g을 기준으로 산출할 수 있다. 1년을 기준으로 북한 정권이 주민 2500만명 전체에 배급제를 통해 식량을 준다면 456만t이 필요하다. 여기에 식품 생산, 사료 등에 사용되는 곡물을 포함해도 북한이 1년에 필요한 식량 500만t만 확보한다면 굶어죽을 상황까지 내몰리진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수치는 WFP와 FAO가 보고서에서 적시한 북한의 올해 필요한 식량 수요량(575만t)과는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게다가 보고서는 북한의 식량 배급량이 2018년 1인당 하루 380g에서 2019년 300g으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배급량이 기준이라면 식량 수요량은 보고서가 지적한 것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 정권은 더 이상 배급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식량과 소비재의 3분의 2를 장마당에서 조달하고 있다.
   
   또 다른 의문점은 북한 장마당의 쌀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함경북도 청진시 장마당에서 쌀 1㎏은 중국 돈 3.5~3.6위안(603~620원), 옥수수 1㎏은 1.3위안(224원), 메주콩은 3.3위안(568원)에 팔린다. 북한의 한 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이 정도 곡식가격은 지난 4월과 비교해 평균 0.1위안 오른 것이고, 쌀값은 지난해 같은 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의 식량 사정은 장마당 식량 판매상황과 주민들의 생계활동을 보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이상기후로 곡식 수확량이 줄어든 것을 생각하면 식량난이 심해지고 곡식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변동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 정권이 WFP와 FAO에 식량난을 부풀려 지원을 요청한 것은 국제사회를 향한 파렴치한 사기행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엔 식량기구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며 지원을 촉구하고 있지만, 정작 국제회의에 참석한 북한 관리들은 국제사회에 식량 상황 개선을 홍보하고 있다. 말 그대로 ‘식량난은 사기극’이라고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경훈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법제부장은 지난 5월 9일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의 북한 인권 보편적 정례검토(UPR)회의에서 “식량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조치를 통해 지난 3년간 식량 상황이 좋아졌다”면서 “양곡 가격이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식량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채순 북한 보건성 보건경영학 연구소 실장도 “모든 어린이에게 두유를 정상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면서 “식량과 함께 과일과 우유, 수산물을 비롯한 보충 식품들을 어린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정권은 또 식량 부족을 호소하면서도 외국으로부터 식량보다 다른 물자들을 더 많이 수입하고 있다. 국제무역센터(ITC)의 수출입 현황을 보면 북한은 올해 1분기에 밀가루 등 제분공업 생산품 1644만달러어치를, 쌀 등 곡물 180만달러어치를 각각 중국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북한의 전체 대중(對中) 수입액 4억5498만달러에서 식량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4%로, 전년 동기 6.5%보다 줄었다. 북한 정권이 중국으로부터 수입을 크게 늘린 제품은 담배다. 담배의 수입액은 2017년 3274만달러, 2018년 6964만달러였다. 올해 1분기는 1765만달러로, 밀가루 등 제분공업 생산품보다 많았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북한의 식량난은 가뭄으로 인한 북한의 봄철 작물에 대한 것이며 식량난은 시작되지 않았다”면서 “무역 통계와 북한 내 시장 가격 변화 등을 토대로 볼 때 아직 식량난으로 보일 만한 조짐은 없다”고 분석했다.
   
   
▲ 북한 농민들이 황해남도 신천에서 못자리를 내기 위해 논에 물을 대고 있다. photo WFP

   장마당 쌀값 왜 하락하나
   
   UPR 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은 이구동성으로 북한 정권이 국가 재정을 미사일이 아닌 주민들의 식량 등 민생에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 정권이 군사비에 지출하는 엄청난 돈을 식량 개선에 투입하면 만성적인 식량난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UPR이란 193개 유엔 회원국이 각국의 인권 사항을 정기적으로 심사하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특별 절차를 말한다. 호주와 스페인 등 각국 대표단은 식량 접근에 대한 차별 금지, 식량을 정치적 충성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지 말고 주민 우선의 정책을 펼칠 것을 북한 정권에 권고했다. 각국 대표단은 유엔에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긴급 지원을 요청하면서도 값비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북한 정권의 행태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이 만성적인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5월 9일 발사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도 1발에 500만달러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옥수수 시세가 t당 1812위안(263달러)임을 감안하면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1발이면 옥수수 1만9000t을 수입할 수 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국내총생산(GDP)의 23.3%인 33억5000만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하고 있다. 베트남 쌀 940만t(t당 355달러)을 구입할 수 있는 규모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우선 순위를 군사비에서 주민들을 먹여살리는 것으로 재조정하면 식량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맥스웰 연구원은 “북한의 일반 주민은 장마당에 의존해 살아가기 때문에 최근에 고통받는 계층은 북한 정권의 배급에 의존하는 핵심 기관의 성원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사회나 한국 정부가 북한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을 지원해도 분배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레그 스칼라튜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식량 등의 지원 물자가 군부의 창고로 옮겨진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있다”며 “지원 물자가 북한 주민들에 의해 소비되는 단계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베르타 코헨 전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의 취약 계층이 지원 물자를 직접 손에 쥐는 단계까지 추적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크 카세이어 스위스 제네바 주재 미국 대표부 임시 대사도 UPR 회의에서 “북한은 외국 인도주의 지원단체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도록 허용하고, 모든 북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아무런 방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 대표단은 미국 정부의 이런 요구를 거부했다.
   
   
   정치범 수용소 철폐 등 대가 요구해야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더라도 무조건 지원하지 말고 북한 정권에 대가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식량 지원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그 대가로 최소한 정치범 수용소 철폐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은 지난 5월 14일 UPR 실무그룹이 채택한 정치범 수용소 철폐와 강제노역 폐지,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 등 63개 권고 항목을 거부했다. 한대성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는 “정치범 수용소란 말 자체도 없고 성분 차별이나 종교 탄압도 없다”고 강변했다. 한국 역대 정부는 1995~2010년 9차례에 걸쳐 265만 5000t의 쌀을 북한에 지원했다. 노무현 정부가 180만t으로 가장 많고, 김대중 정부(70만t), 김영삼 정부(15만t), 이명박 정부(5000t) 순이었다. 역대 정부는 모두 동포애와 인도주의를 앞세우면서 북한 정권에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쌀 지원이 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의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주민의 진정한 인권 개선을 바란다면 쌀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정치범 수용소 철폐를 강력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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