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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9호] 201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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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연구의 최전선]카이스트 응집물질물리학자 이성빈 교수

photo 조현호 영상미디어 기자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이성빈 교수(응집물질물리학 이론)는 에너지가 넘쳤다. 학과 내 유일한 여성 교수로, ‘과학 연구의 최전선’ 취재를 하면서 만난 네 번째 여성 물리학자이기도 하다. 양자스핀 아이스(Quantum Spin Ice)라는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고만 듣고 지난 12월 12일 대전 카이스트로 찾아갔다. 이 교수는 “양자스핀 아이스 연구자 맞다. 하지만 양자자성(Quantum Magnetism) 연구자가 내 연구를 더 잘 표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Lab) 이름이 ‘양자자성 이론 랩’이라고 했다.
   
   이성빈 교수는 2016년에 카이스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신진학자다. 응집물질물리학 분야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내게 몇 사람이 이성빈 교수 취재를 권했다. 한 물리학자는 “양자스핀 아이스라는 물질이 있다. 스핀 아이스는 자성물질인데, 전자의 스핀이 얼음처럼 거동한다”고 얘기해줬고,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단장으로 일하는 한 연구자는 이 교수를 활발히 연구하는 젊은 학자라고 표현했다.
   
   이성빈 교수는 대구 혜화여고를 졸업하고 2003년에 일본 도쿄공업대학으로 유학갔다. 이 교수에 따르면,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간 합의에 의해 일본에서 국비 장학생으로 공부하는 게 가능했다. 한국의 우수한 고교생을 일본의 국립대학들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프로그램의 취지였다. 이 교수는 당시 선발된 90여명의 고교생 중 한 명이었다. 한국에서 6개월, 그리고 일본의 대학에서 6개월 연수하고 도쿄공업대학 물리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도쿄공업대학이라는 이름이 낯설었는데 이 교수에 따르면 도쿄공업대학은 설립된 지 100년도 넘었다. 미국의 MIT나 한국의 카이스트와 같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일본 대학 물리학과 학생은 학부 4학년 때는 연구실에 소속되어 직접 연구를 한다. 이성빈 학생은 오시카와 마사키(押川正毅·현 도쿄대 교수) 교수를 택했다. 오시카와 교수는 전자의 스핀(spin) 등 응집물질 이론을 연구했다. 이성빈 학생은 학부생으로서 이곳에서 그래핀이라는 물질을 연구했다. 그래핀은 연필 심으로 사용되는 흑연을 얇게 떼낸 것이다. 흑연은 탄소로 되어 있으므로, 그래핀은 2차원 탄소 물질이다. 이 교수는 그래핀이라는 놀라운 물질이 당시 막 알려졌고, 그래서 그래핀을 무작위로 잘랐을 때 제로 에너지 상태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양자스핀 아이스를 만나기까지
   
   이성빈 학생은 성적이 좋아 남들보다 한 학기 조기졸업을 했다. 3년6개월의 학업을 마치고 미국 샌타바버라-캘리포니아대학으로 박사공부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이성빈 교수가 ‘양자스핀 아이스’를 연구하게 된 건 지도교수인 리온 발렌츠 때문이다. 리온 발렌츠 교수는 ‘양자스핀 아이스’라는 물질 상태가 양자요동이 일어나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이론으로 보인 바 있다. 양자스핀 아이스 연구는 리온 발렌츠와, 같은 과 교수인 매튜 피셔 교수가 공동으로 했다. 이들의 논문이 나온 때가 2003년이었다. 이성빈 박사과정 학생이 LA에서 북서쪽으로 60~70㎞ 떨어진 태평양 연안의 이 도시에 도착한 건 이 두 사람의 논문이 나오고 3년이 지난 2006년이었다. 샌타바버라대학이 낯설어서 인터넷 사전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있다. ‘2019년 현재 이 대학의 교수진은 1998년 이래로 화학, 물리, 경제 분야에서 6개의 노벨상을 수상했다. 퍼블릭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양자스핀 아이스’는 ‘양자스핀 액체(Quantum Spin Liquid)’라는 물질 그룹 안에 있는 하나의 물질 상태다. 양자스핀 아이스니, 양자스핀 액체니 하는 게 응집물질물리학의 전체 그림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가 궁금했다.
   
   이성빈 교수에 따르면 응집물질물리학 분야는 전자 간 상호작용의 크기를 기준으로 두 개로 분류할 수 있다. 강(强)상관전자계(strongly correlated electronic system)와 약상관전자계(weakly correlated electronic system)다. 강상관전자계에 속하는 분야가 모트 절연체, 고온 초전도체, 다강체, 양자스핀 액체, 스커미온, 무거운 페르미온이다. 약상관전자계에 속하는 분야는 밴드 절연체, 반도체, 도체가 있으며 이 분야의 연구 커뮤니티가 한국에서는 크다고 했다.
   
   이 교수의 연구실 이름이 ‘양자자성 이론 랩’이라고 들었는데 ‘양자자성’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교수는 양자요동(quantum fluctuation) 현상이 매우 중요한 효과가 되어 나타나는 자석의 성질이 ‘양자자성’이라고 했다. 양자요동이란 공간에서 가상입자(virtual particle) 쌍이 만들어져 아주 짧은 시간 존재하다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두 가상입자의 에너지 크기는 같고 부호는 다르기에 전체적으로 에너지 크기는 0이다. 그러니 생겼다가 사라져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아주 작은 미시세계의 공간에서 양자요동 현상이 나타난다고 현대 물리학자들은 보고 있으며, 이게 우주를 만들었다고 보는 게 주류 물리학계의 견해다. 이 양자요동으로 인해 자성이 나타나는 방식이 있는데, 이게 양자자성이다.
   
   이성빈 교수는 ‘양자자성’ 분야의 하위 그룹으로 크게 세 가지를 말했다. △양자스핀 액체 상태, △양자자성과 자유전자가 상호작용하여 나타나는 곤도(Kondo) 효과 분야, △스핀 모멘트의 특이 정렬 상태 분야다. 이 연재 기사의 앞에 나온 성균관대 한정훈 교수의 연구 분야인 스커미온이 세 번째 그룹에 속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양자자성 분야 연구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외국에서 활발하다”고 말했다.
   
   

   ‘쩔쩔맴’ 효과와 양자스핀 아이스
   
   그러면 양자스핀 액체와 양자스핀 아이스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 교수는 양자스핀 액체는 매우 다양하며, 양자스핀 아이스는 그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빈 교수가 하는 양자자성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봐야 한다.
   
   이성빈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칠판 앞에 섰다. ‘스핀의 쩔쩔맴’ 상태로 설명을 시작해 ‘양자스핀 액체’와 ‘양자스핀 아이스’로 개념 설명을 계속해나갔다. 화이트보드에는 양자스핀 액체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의 구조 그림과 원리가 금세 가득 찼다. 그가 설명을 마치고 자리에 앉기까지 30여분은 족히 걸렸다.
   
   첫 번째 ‘쩔쩔맴 효과’. 생각해 보니, 역시 응집물질물리학자인 양범정 서울대 교수 취재를 할 때 ‘쩔쩔맴(frustration)’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양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을 이 주제로 썼다고 했다. 양 교수 논문 제목은 ‘쩔쩔매는 자성체의 초전도 및 들뜸 현상’이었다. 이성빈 교수에 따르면, 물질은 원자들이 빼곡한 구조이고, 이 구조를 2차원에서 보면 격자로 볼 수 있다. 4각 격자가 반복해서 있고, 격자점에는 원자가 있다고 본다. 원자가 있는 곳은 전자가 있는 곳이다. 이 교수 설명을 들어본다. “원자 안에 있는 전자는 자유전자처럼 이동은 하지 못하고 격자점에 고정되어 있으나, 이웃에 있는 전자들의 스핀과 상호작용을 한다. 그 상호작용이 스핀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하는 걸 선호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스핀은 ‘위’(+1) 혹은 ‘아래’(-1) 상태 중 하나를 갖는다. 중간 상태는 없다. 모든 스핀이 한쪽 방향으로 정렬한다면 이게 강자성체이고, 이걸로 된 물체는 냉장고 문에 잘 붙는다. 이와 달리 격자 위의 스핀들이 위, 아래, 위, 아래로 방향이 달라지는 경우에 이 값을 전부 더하면 0이 되는데 그러면 반강자성체다. 이런 경우의 물리학은 우리가 잘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재밌는 건 격자 모양이 다른 경우다. 지금까지는 4각형 격자 무늬를 보았다. 그런데 카고메, 즉 삼각 격자를 보니 상황이 다르다. 삼각 격자에서 전자들이 같은 스핀 방향을 선호한다면 문제가 없으나, 다른 방향을 선호한다면 당혹스러운 상황이 된다. 세 점의 스핀이 이웃한 점과 모두 다른 스핀 방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두 개의 점이 ‘위’ ‘아래’를 가리킬 경우에 세 번째 점은 ‘위’를 가리킬 수도 ‘아래’를 가리킬 수도 없는 것이다. 세 번째 점이 어쩔 줄 모르게 되는 이게 쩔쩔맴 현상이고, 서울대 양범정 교수가 박사과정 때 연구한 주제다. 여기까지는 양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이성빈 교수 설명을 계속 들어본다. “쩔쩔매는 상태에서 전자의 스핀은 위 혹은 아래가 된다. 위와 아래를 가리키는 상태가 중첩된다. 이 일이 세 개의 꼭짓점 모두에서 일어난다. 세 개의 꼭짓점 모두 전자 스핀들이 쩔쩔매는 상태다. 하나의 삼각 격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구조물 전체로 보면 어떻겠는가. 구조에는 삼각 격자가 무수히 많다. 아보가드로 수(6.022×1023)만큼 많다. 그러니 격자 구조 전체로 보면 한 전자의 스핀이 ‘위’도 되고 ‘아래’도 되는 양자중첩 상태가 엄청나게 축퇴되어 있다. 양자 세계에서는 이런 중첩 상태를 허용한다. 따라서 이 상태에서는 절대온도 0도까지 냉각시켜도 스핀들이 어떠한 방향으로도 정렬하지 않고, 이러한 물질을 양자스핀 액체라고 한다.”
   
   그러면 ‘양자스핀 액체’의 하위 분류에 들어간다는 ‘양자스핀 아이스’는 또 무엇일까. 양자스핀 아이스 상태는 3차원 구조인 정사면체에서 나타난다. 정사면체들이 꼭짓점으로 서로 연결돼 있는 구조에서 출현하는 물질 상태다. 정사면체는 정삼각형을 4개 오려가지고 붙여 만들 수 있는 구조다. 삼각형 한 개에서도 스핀 방향을 정하지 못해 쩔쩔매는 구조가 출현한다고 했다. 그런데 정삼각형 4개가 붙어 있는 정사면체 구조에는 훨씬 더 쩔쩔매게 된다. 중첩되어 있는 경우의 수가 삼각형 한 개일 때보다 상상할 수 없이 많다.
   
   물질은 에너지가 가장 낮은 게 바닥 상태다. 꼭짓점 4개를 가진 정사면체 구조가 바닥 상태가 되려면 꼭짓점 네 개에 있는 전자스핀 값의 합이 0이어야 한다. 즉 ‘위’(+1)를 가리키는 전자와 ‘아래’(-1)를 가리키는 스핀의 수가 같아야 한다. ‘위’를 가리키는 전자 두 개와, 아래를 가리키는 전자 두 개가 있으면 스핀 값이 0이니, 정사면체는 스핀 값의 합을 0으로 만들기 위해 ‘쩔쩔맴’ 상태에 있다.
   
   사면체는 3차원 구조다. 꼭짓점에서 스핀들은 로컬 Z축을 기준으로 위, 아래 방향을 가리킨다. 정사면체 기준으로 보면 밖이나 안으로 가리키는 모양이다. 이로 인해 정사면체의 꼭짓점 스핀 4개 중 2개는 사면체 밖으로, 다른 2개 스핀은 사면체 안으로 향한다. 이 교수는 이러한 구조를 “2 in, 2 out”이라고 표현했다. 정사면체 구조에서 스핀 방향이 2개가 들어가고 2개 나오면 에너지는 가장 낮은 상태가 된다. 하지만 로컬 Z축 말고, 로컬 X축과 로컬 Y축 변수가 있다. 이 두 개의 축에서도 스핀들 간의 양자요동을 주는 상호작용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무수히 많은 ‘2 in, 2 out’ 구조가 중첩되어 하나의 바닥 상태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이로 인한 들뜸 상태는 분수(分數·fractionalized) 양자수를 가지는 준입자로 설명되는 이상한 현상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이를 일컬어 “양자스핀 아이스 상태”라고 했다. 이해가 쉽지 않았다.
   
   이 교수는 이어 “이 스핀 아이스 상태의 스핀 4개를 보면 물이 얼어붙었을 때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 간의 위치 상태와 같다. 얼음 결정에서 산소 원자 한 개를 기준으로 수소 원자 4개가 두 개씩 쌍을 이뤄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중 수소 원자 두 개는 산소와 가깝고, 다른 수소 두 개는 산소로부터 조금 멀다. 이런 얼음 구조와 같다고 해서 ‘2 in, 2 out’ 구조에 ‘양자스핀 얼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고 말했다.
   
   
   양자컴퓨터와 연결 지점은 ‘양자 얽힘’
   
   양자스핀 아이스 성질은 주기율표 58번에서 70번에 있는 희토류 입자가 들어간 물질에서 나타난다. 원소기호 59번인 Pr(프라세오디뮴), 원소기호 58번인 Ce(세륨)이 들어가 있는 Pr2Zr2O7, Ce2Zr2O7이 대표적인 양자스핀 아이스 물질이다. 이 물질은 세 개의 원소가 각각 2개, 2개, 7개인 구조이며 이를 희토류 파이로클로어 산화물이라고 한다.
   
   이성빈 교수는 양자스핀 액체 물질의 연구는 “양자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특별한 조건하에 있는 입자가 서로 상태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양자얽힘(Quantum entangelment)’이라는 현상을 이용한다. 양자얽힘의 극대화 버전이 양자스핀 액체라고 했다.
   
   이 교수 연구 분야의 설명이 끝났다. 이 교수는 그러면 이 분야에서 뭘 연구한 것일까. 그는 박사과정 때는 ‘양자스핀 액체상의 특이점’을 연구했다고 했다. 더 포괄적으로 말하면 쩔쩔맴이 있을 때의 양자스핀을 연구했다고 했다. 내가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쩔쩔매자 그녀는 “스핀 아이스 관련해서만 말하면, 희토류 이온에서 전자를 짝수로 가지는 비(非)크라머르스 이온의 경우 대칭성을 이용한 모델링을 하고 양자스핀 아이스에서 어떤 양자 상태의 상전이가 있을 수 있나를 처음으로 연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2년에 미국 샌타바버라-캘리포니아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한국 학자 김용백 교수에게로 갔다. 그리고 2014년까지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했다. 자성도 연구했고, 위상 상(topological phase) 연구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위상 상과 자성이 만났을 때 어떤 양자 상태가 나올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 후 어바인-캘리포니아대학에서 1년 있다가 2016년 2월에 카이스트 교수로 왔다.
   
   교수로 일하면서는 위상 초전도체와 준결정 연구를 새롭게 하고 있다. 이성빈 교수는 자신은 “양자자성 쪽에서 계속 연구해 새로운 양자스핀 액체 상태를 모델링하고, 실험적으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지에 특화되어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과학 연구의 최전선’ 취재를 위해 만난 물리학자의 연구는 쉬운 게 거의 없었다. 이번은 좀 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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