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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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의 한 공립고등학교. 학교폭력 피해자인 A군(17)은 3월 개학을 앞두고 가해자 B군을 학교에서 마주칠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재학생 대부분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 특성상 둘의 생활 반경은 학교폭력 발생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해자 B군은 대전광역시교육지원청에서 열린 학교폭력 징계심의위원회에서 징계 처분을 받았지만, 처벌이 ‘교내 봉사’ 수준에 그쳤다. B군의 출석정지나 학급교체를 조치할 수 있는 ‘교육환경 변화’에는 못 미치는 수준의 징계였다. 이런 경징계의 원인 중 하나는 B군이 수십장의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해 A군은 동급생 B군에게 이유 없이 수십대를 구타당하고 학생들 앞에서 심한 욕설을 들었다. 사태가 경찰 및 학교에 알려진 직후에 B군은 학교와 교육청 측에 10여장의 반성문과 서면 사과를 제출했다. 사건은 이후 교육청에 부쳐졌고, 지난달 열린 대전광역시교육지원청 심의위원회에서는 B군에 대한 징계 수준을 확정했다. 별 이유없이 갑자기 동급생을 폭행했다는 사건의 심각성은 높게 측정됐지만 사건 이후 사과를 여러 차례 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심의위 설명에 따르면, B군이 학교에 제출한 10여장의 반성문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문제는 피해자인 A군이 서면사과나 반성문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A군 학부모는 “실제 피해자인 우리에게는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가해자 측과 학교가 피해 학생 모르게 반성문을 주고받은 걸 두고 반성을 했다, 화해를 했다 평가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이어 “학교생활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분리조치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면 학교에서는 ‘가해학생에게도 미래가 있다’고 말한다”며 “학교가 앞으로 대입에 미칠 영향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심의를 담당하는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심의위원회는 기본적으로 잘잘못을 법적으로 가리기보다는 학생을 선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교육적인 측면, 법적인 측면 등을 모두 고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답했다.

학교폭력자치위원회나 교육청의 심의위원회가 열리면 가해 학생은 서면 사과를 필수적으로 1번 이상 해야 하고, 추가로 반성문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행정적인 절차에 필요한 것으로, 피해자에게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해학생의 반성문이 감형이나 경징계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만 사용될 뿐, 진정성 있는 사과가 피해자에게 전달되지 못한채 오히려 피해자를 조치 과정에서 배제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폭력 피해자 치유 전담기관 해맑음센터의 차용복 부장은 “피해 학생 대다수가 형식적인 서면사과에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사과 이후에도 가해행위에 따른 조치가 추가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나 교육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보호를 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청소년폭력예방단체인 푸른나무재단의 김석민 연구원은 “학교폭력 사안 처리 내규나 규칙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진행되는 거라, 학교 측에서 확실하게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반성을 보여주는 등 노력을 해줄 필요가 있다”며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정책이나 법적인 제도를 명확하게 마련하면 반성문의 교육적 효과가 살아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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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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