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9일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에서 이뤄진 러시아-벨라루스 합동 군사훈련.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9일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에서 이뤄진 러시아-벨라루스 합동 군사훈련. ⓒphoto 뉴시스

러시아군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이후 독립 30년 만에 사실상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특수 작전”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직후 벨라루스에 배치된 러시아 육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의 수도를 향해 진격하는 것이 목격되었으며,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포성이 들렸다고 서구 언론들이 전했다.

푸틴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특별한 군사 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목표는 지난 8년 동안 키예프 정권에 의해 협박당하고 학살당한 인민을 구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및 비나치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시민들과 러시아연방에 대해 많은 유혈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법정에 세우는 것도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군사시설과 국경초소 등에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 동부의 교통요지인 하리코프, 흑해의 대도시인 오데사 등에 포격을 가하고 있으며, 오데사에는 상륙공격도 가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CNN 등도 수도 키예프에서 포성이 들렸으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 진영에 미사일과 야포 공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푸틴은 공격과 함께 우크라이나군 장교들에게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우크라이나 정부의) 명령에 불복하고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촉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의 15만 대군이 우크라이나를 동·남·북 3면에서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하는 한편 이들 2개 지역에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했다.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는 대군을 유지해온 푸틴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의 창조물”이라며 국가주권을 부정해 왔다. 이에 맞서 미국 등 서방 측은 러시아에 대한 대대적인 제재에 착수했다. 미국은 키예프의 자국 대사관을 국외로 이전하는 등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발생할 최대 규모의 전쟁에 대비해왔다.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이 불타고 있다. ⓒphoto 트위터
지난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이 불타고 있다. ⓒphoto 트위터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의 창조물”

푸틴이 서방 측의 제재를 무릅쓰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공격을 감행한 이유는 러시아 안보에 대한 집착 때문으로 분석된다. 존 볼튼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최근 이탈리아의 쿠리에 델라 시에라와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근본적 목표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약화시키고 유럽의 안보체제에 의문을 품게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대사도 역임했던 그는 “푸틴이 지금이 (행동하기에는) 호기라고 판단한 것 같다”며 이런 분석을 했다. “독일은 정권 교체기이며,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 선거에서 고전이 예상된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국내적으로 많은 난제가 발생했으며, 이탈리아도 국내 정치가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서둘러 철군한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에 대해 푸틴이 약체라고 판단한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어떤 경우든 푸틴은 생각 없이 일을 벌인 것이 아니다. 그는 장기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월 발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나토의 확장을 막고, 1997년 이후 나토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서 탈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핵무기를 유럽에서 철수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크게 보면 러시아의 근본 목표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의 외교 및 안보를 러시아가 통제하는 것이라고 CSIS는 분석했다. 결국 이번 갈등의 핵심은 “소련 붕괴 30년 이후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들이 독립주권국가로 생존할 수 있는가, 아니면 러시아를 사실상의 주권으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문제”라는 분석이다.

푸틴은 동유럽과 캅카스 지방에서 러시아의 배타적 영향력을 요구하는 것이 러시아의 안보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따라 푸틴은 나토의 동진(東進)을 소련 붕괴 이후의 국제관계를 해치는 원죄(原罪)로 보며 교정해야만 한다고 판단했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안보를 수호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푸틴의 이런 속내가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푸틴이 지난 2월 21일 돈바스 지역으로 러시아군 진입 명령을 내렸을 때 미국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당시 독일은 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의 봉쇄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돈바스 지역은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곳이기 때문에 대군을 장기간 동원한 푸틴이 나토의 동진 중단 등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군사행동을 멈출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서방 측은 판단해 왔다.

민간인 사상자만 5만명 발생할 수도

사실 푸틴이 돈바스에 군대만 배치하고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한 대군을 철수시킨다면 심각한 국제 제재를 초래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푸틴이 결국에는 수도 키예프 공격 등 지상군을 총동원한 전면침공을 감행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미국 측은 정보기관 등의 판단을 근거로 러시아군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해 왔다. 미군과 우크라이나의 군간부들과 정보기관들은 수주 동안 키예프에서 다양한 침공 시나리오를 검토해 왔다고 서방 언론들은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향한 러시아군의 총공세는 미국이 가장 우려하던 시나리오였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블링컨 국무장관은 특히 280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군의 폭격을 우려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2월 17일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이 시작될 것이다. 러시아는 미사일과 폭탄을 우크라이나 전역에 퍼부을 것이다. 사이버공격으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기관들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러시아군 전차와 군인들은 사전에 정해진 목표물을 향해 공격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블링컨은 러시아가 위장술책으로 우크라이나 내에서 “거짓” 또는 “실제 화학무기 공격”조차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비상회의”를 열어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행동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 수도를 향한 전면공격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러시아군의 최우선 목표는 키예프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고 선출된 지도자들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격의 주요 목표물은 대통령궁, 의회, 미디어, 반러시아 민주화투쟁의 성지인 마이단광장 등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야포, 공습 등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가 최소 5만명가량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리아에서처럼 화학무기 공격으로 인한 사상자 발생도 우려된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희생자는 급증할 수밖에 없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탈출하여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이번에 푸틴은 ‘하이브리드 공격’ 명령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의 공격 직전에 우크라이나 주요 기관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대부분 마비되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이버공격이 지속되면 우크라이나 통신이 중단되고 난방시설 가동도 중단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수도 키예프가 혼돈에 빠지면 이미 활동을 시작한 친러시아 주민들이 공개적으로 의회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을 전복하고 러시아와의 평화를 택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분석가이자 ‘크림반도 합병, 하이브리드 전쟁 연대기’의 저자인 타라스 베레조베츠 역시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돈바스 점령에 이어 수도인 키예프 공격 가능성을 예상한 바 있다. 그는 “러시아군의 공격은 벨라루스 국경에서 시작될 것이다. 푸틴은 (소련의 정보기관인) KGB(국가보안위원회) 장교였다. 그는 항상 하이브리드 작전을 한다. 그는 러시아 육군은 돈바스에서 싸우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벨라루스군이지 러시아군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이 벨라루스 군복을 입고 침공하면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피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조각낼 것”

지난 2월 22일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
지난 2월 22일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푸틴 대통령.

존 볼튼 전 안보보좌관은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여 “영토를 조각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러시아어와 러시아정교회가 압도하는 지역을 먼저 점령할 수 있다. 돈바스에서 벨라루스 국경까지 흐르는 드네프르강 동부를 점령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오데사를 포함한 흑해연안을 점령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러시아가 키예프, 하리코프 등 대도시에서의 전투를 회피하고 전략요충지를 점령할 가능성도 있다. 또 러시아군의 아조프해 장악도 예상된다. 러시아는 2014년에도 아조프해 장악을 시도했지만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러시아군이 남진하여 항구도시 마리우폴(주민수 47만7000명)을 장악하고 크림반도에 도달하는 작전도 가능하다. 러시아가 아조프해를 완전히 통제하게 되면 우크라이나로서는 매우 중요한 상업적 출구를 빼앗기는 셈이 된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대한 보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크림반도에 대한 보급은 육로와 철도로만 가능했다. 2019년에 육로가 개통되었을 때 EU(유럽연합)는 구두항의에 그쳤다.

러시아군의 가장 전략적인 목표는 수도 키예프를 제외하면 오데사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2월 24일 오데사가 폭격을 받고 있으며, 상륙작전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2월 18일 러시아 해군함대가 흑해에서 “완전한 배치”를 끝냈다고 말해 러시아군이 흑해에서 공격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었다.

러시아 해군은 오데사에 대한 봉쇄뿐만 아니라 해양루트에 대한 심각한 장애도 일으킬 수 있다. 오데사는 주민이 10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일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경제의 중심이다. 우크라이나 수출입의 50%는 오데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장악한 후에는 교역이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그 이후 오데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러시아 함대의 위협이 지속되면 오데사의 경제는 붕괴될 수도 있다. 나토가 전함들을 흑해로 파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는 오데사에 대한 사이버공격뿐만이 아니라 크림반도로부터의 신속한 상륙 공격도 가능하다.

러시아가 드네프르강까지의 영토를 점령하고, 이어서 몰도바로부터 분리를 추진하는 친러 트랜스니스트리아 지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오데사를 포함하는) 벨트 형태의 영토를 추가로 점령하여 우크라이나의 흑해 접근을 막을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을 제외하고 남게 되는 ‘소국’ 우크라이나는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나 러시아가 점령하게 될 지역과 우크라이나 내륙 사이에는 경계가 될 만한 동서를 잇는 자연지형, 강, 산맥 등이 없다. 새로운 국경은 끝없는 평야와 산림을 관통하므로 러시아로서도 지켜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물론 푸틴의 목표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라면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하려 들 가능성도 크다. 이럴 경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점령한 뒤 벨라루스와 대러시아연합을 선포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러시아는 장기간 저항하는 4100만 인구를 동화시켜야 한다. 이 많은 인구를 통제하고 나토 국가들과의 새로운 국경을 방비하려면 엄청난 규모의 점령군이 필요하다. 점령지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스탈린 치하처럼 러시아화를 강요당할 것이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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