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마트의 분주한 모습. 지난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0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마트의 분주한 모습. 지난 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4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photo 뉴시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경제지표는 아마 미국의 물가상승률일 것이다. 지난 1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CPI)은 7.5%까지 치솟았다. 1980년 2월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이었고 시장전망치 7.2%를 뛰어넘었다. 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예상보다 2배 넘는 폭등세였다. 1월 PPI는 전년 동월 대비 9.7% 상승해 201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일부에선 인플레이션 탠트럼(인플레이션 발작)을 걱정하기도 한다.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로 금리가 급등해 채권시장에 충격을 주고, 신흥국에서는 자금이 유출되면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는 현상을 말한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불만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미국 바이든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풀어놓은 초대형 코로나19 구제 패키지는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부분적 원인이기도 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지금까지 늘어난 유동성은 미국이 대략 7000조원, 우리나라는 600조원 정도다.

내년 3월 미 금리 2.25~2.50% 될지도

유동성 문제 말고도 물가상승의 배경이 된 요인들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물가상승의 원인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 모두 있다. 수요 측면에서 보자면 코로나19 백신접종 이후 높아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들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동남아를 비롯한 주요 산업 생산 지역이나 원료 공급 지역의 생산 차질이 문제였다. 특히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해온 중국의 제조업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못해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더해 항만 운영 장애와 트럭 운전기사 부족으로 급등한 물류비용이 더해지면서 당초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됐던 가격상승 추세가 지속적인 현상으로 바뀌었다. 기대했던 공급망 차질 현상의 해소는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반복적인 확산으로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경제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도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미·중 갈등과 함께 글로벌 밸류체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화가 후퇴하면서 기업은 과거처럼 무조건 가장 비용이 싼 지역을 찾아 생산기지를 세우지 못한다. 자연히 더 비싼 생산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탄소경제로의 전환, ESG경영에 대한 요구도 친환경적·사회적 기업화를 위한 추가 비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 정책은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위한 변화지만, 기업의 입장으로 보면 더 많은 부담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용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년 만의 물가상승률로 확산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사상 최악의 물가상승을 경험했다. 1%였던 물가상승률이 14%까지 급등했다. 여기에 오일쇼크까지 겹치며 경기가 급랭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펼쳐졌다. 물가는 미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한때 연 21.5%까지 끌어올리면서 잡혔다. 연준은 물가 급등을 초긴축으로 막아냈지만, 그 대가로 경기침체와 장기적인 주가 부진을 겪어야 했다. 실업률 역시 10%를 넘어서 국민의 희생은 매우 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연준으로선 늦어도 올해 중반까지는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 3월 15~16일 열리는 연준의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이 됐다. 시장의 관심은 0.25%포인트 인상이냐, 0.50%포인트 인상이냐다. 충격 요법은 인플레 기대심리를 잡는 효율적 방법이다. 3월에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포인트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1월에 공개된 연준 회의록은 놀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장이 걱정했던 수준의 깜짝 긴축 예고는 없었다.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조만간 적절한 시점에 금리인상을 시작해 FOMC 회의 때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대차대조표 대폭 축소가 적절하며 시점은 올해 하반기가 될 것이란 내용도 시장의 예상대로였다.

원래 연준의 금리인상 폭은 보통 0.25%포인트였다. 연준은 2000년대 들어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해본 적이 없다. JP모건체이스는 올해 7회의 FOMC에서 모두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고 내년 1월과 3월에도 연달아 금리를 인상해서 현재 0~0.25%인 기준금리가 내년 3월에는 2.25~2.50%로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준의 자산 축소도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연준은 금리를 꾸준히 올리는 것만으로도 40년 만에 최고로 뛴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가라앉히는 데에 충분하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에 확산하고 있는 우려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는 구체적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지난 10년간 세계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주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 가깝다.

숫자를 봐도 그렇다.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이 7.5% 상승했다고 하지만 지금의 수치는 2021년 1월의 지극히 낮은 기준선인 1.4%와 비교한 것이다. 월간 물가상승률인 0.6%는 지난해 10월과 비교해도 훨씬 낮은 수치다. 게다가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조금 특별해서 주요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공급망이 교란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른바 경제선진국 중에서 7%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는 나라는 미국 말고는 없다. 일본은 이제야 물가상승률 1%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photo 뉴시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photo 뉴시스

“역사적으로 볼 때 적당한 인플레이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역사적 기준에서 보면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그리 높지도 않고 임금도 건전한 수준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연준이 긴축을 본격화하면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에 영향을 주어 과거와 달리 극단적인 통화정책으로 이어지기 전에 물가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지난 2년과 달리 재정정책의 강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을 덜어줄 요인이다. 특히 코로나19가 가라앉는다면 그 자체로 공급망 차질이 해소되고 동시에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요인인 일부 특정 제품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최근의 물가상승 추세가 과거 1970~1980년대와 같은 급격한 긴축과 그에 따른 반복적 경기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정체가 해소되고 소비가 팬데믹 이전의 패턴으로 돌아가면 가라앉을 수 있다. 주식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지만 금리인상이 반드시 증시에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다행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단기적인 조정을 거친 뒤에는 결국 상승했던 경우가 많았다. 미국 금융자문사인 트루이스트에 따르면 1950년 이후 금리인상은 12차례 있었는데 석유파동 때인 1972년부터 1974년 사이를 제외한 11번은 모두 수익률이 플러스를 기록했다. 금융위기 이후 금리인상과 테이퍼링, 양적축소(QT)를 단행했던 2015년부터 2018년 사이에도 연평균 수익률은 8.4%였다. 물론 증시가 충격을 받는다고 해도 연준이 긴축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은 적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긴축, 즉 경기 확장을 완전히 훼손하지 않는 긴축이 가능할지가 아닐까 싶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연준의 노력이 자칫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미국의 금리인상 리스크로 ‘경기침체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유동성을 빠르게 흡수하다 보면 자산 거품이 터질 수 있다. 시중 유동성 축소와 금리상승은 그동안 팽창했던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일시에 줄인다. 기업금융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이미 나빠지고 있다. 자산가격의 급격한 하락과 부실채권의 증가는 금융기관의 부실과 유동성 부족의 문제로 이어진다. 1980년대 말 일본은행이 그랬고 2007년부터 2008년 미국 연준도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물론 최근의 신용시장 상황은 과거의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 금융 부문의 부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풀린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과정이다. 그러나 유동성 축소의 과정에서 전반적인 신용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시작하면 한국을 비롯해 신흥국은 타격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통화 약세는 물론 기업과 정부 재정 여건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다음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출발할 수도

미국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물가 상황도 만만하지는 않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넉 달 연속 한국은행 물가목표인 2%를 넘어선 3%대 이상이다. 4개월 넘게 3% 이상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10년 만의 일이다. 지난 1월은 10년 만에 최고치인 3.6%까지 치솟았고, 2월에는 4%대가 전망된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전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현재 인플레이션 대책은 이슈가 아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은 아니다.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흡수하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일은 인기가 없다. 물가 관리 문제 대신 쏟아지고 있는 것은 지출 공약뿐이다. 사병 월급 200만원, 기초연금 인상, 각종 수당 신설 공약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가난한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오로지 근로소득만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똑같은 급여를 받아도 구매력이 줄어든다. 연금 생활자와 정부에서 주는 각종 수당을 받는 사람들도 실질소득이 줄어든다. 자산 투자로 인플레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소수다. 차기 대통령이 누구든 인플레와 임기를 시작해야 하고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져올 충격파에 대비해야 한다. 확장적 재정 정책의 후유증이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취합 결과,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은 300조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266조원을 제시했다. 이건 대선후보 측의 얘기일 뿐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들 것이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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