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총선·대선 겨냥한 야당의 정책선전용 포퓰리즘 여기서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

서울시의회
“대선 의식 당내 입지 굳히기 위한 정치행보 디자인에 수조원 쓰면서 700억 못 내놓나”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지난 12월 6일 서울 중구 신당초등학교에서  학부모 100여명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서울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이 지난 12월 6일 서울 중구 신당초등학교에서 학부모 100여명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서울시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 정치생명을 걸었다.”

무상급식 관련 조례를 둘러싸고 서울시 의회, 교육청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심경에 대해 측근들이 전하는 말이다. 오 시장은 지난 12월 2일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와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상급식 관련 조례를 통과시키자 내년 예산안 심의를 위한 협의도 전면 중단한 채 강도 높은 장외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오 시장은 12월 6일 서울 신당초등학교에서 직접 학부모들을 상대로 무상급식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하는 현장 대화 시간을 가졌고, 12월 7일에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등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측과 TV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오 시장의 한 측근은 “오 시장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며 “요즘 참모들도 전쟁을 치르듯 무상급식 여론전에 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의 전쟁’이 무엇보다 주목을 끄는 이유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반발의 강도가 세다는 데 있다. 오 시장은 지난 12월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아이들 밥 한 끼 먹이자는 데 왜 반대하냐고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당 시의원들의 이 망국적 포퓰리즘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으로 가슴이 답답하다”며 “만약 서울시가 이번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무상급식이 기정사실화돼 나라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무너지면 서울시가,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무상급식 조례 통과로 대한민국이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가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만큼 임전무퇴의 마지노선을 치고 나온 것이다.

대선용 강성 이미지 변신?

야당을 비롯한 오 시장 반대파에서는 오 시장의 이런 반응에 대해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행보로 보고 있다.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지사에 비해 튀는 언행을 자제해 온 오 시장이 무상급식이라는 첨예한 이슈를 계기로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마지노선을 치는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성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인 박양숙 서울시의회 의원은 “오세훈 시장이 언론플레이를 원하고 있는 것은 당내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굳히기 위한 정략적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며 “시의회와 의견이 다르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인 재의(再議) 요구권 등을 행사하고 그도 안되면 법원의 판단을 받으면 될 일인데 이를 빌미 삼아 시정 협의를 전면 거부하고 시정 질의에 무단 불출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환경연합 등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지난 12월 9일 ‘오세훈 사태’에 대한 비상대책회의를 열며 “(오 시장의 태도는) 한나라당 내부에 어필하기 위해 서울시의회와 시민들과 전쟁을 벌이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며 “오 시장이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때까지 이런 식의 치기와 몽니가 계속될지 모른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오 시장 측은 오 시장의 반발이 ‘충분히 이유 있다’는 입장이다. 일단 오 시장은 서울시의회가 무리수를 두면서 무상급식 조례를 통과시킨 것이야말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야당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오 시장 측은 11월 말 오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 허광태 시의회 의장이 3자 회담을 갖고 “무상급식 재원 마련을 위한 협의를 거치자”며 대화로써 문제를 풀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2일 민주당 시의원들이 다수의 힘을 동원해 조례 통과를 밀어붙인 데는 이런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지난 선거 때 한명숙 후보의 공약으로 처음 제기됐다. 노무현 정권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야당이 이때부터 무상급식에 매달렸다. 야당으로선 이번에 무상급식을 실시해 내년 1년간 정책을 선전할 ‘테스트 베드(test bed)’ 시간을 벌어야 할 초조감이 있다. 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 무상급식의 효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무상급식에 반대해온 한나라당을 몰아붙일 것이다.”

밤샘 고심… 새벽에 측근들에 전쟁 선포

오 시장의 한 측근은 “복지라는 이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한나라당이 이번 무상급식 포퓰리즘에 무너지면 2012년 총선도 대선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 오 시장의 판단”이라며 “선거 악용을 막기 위해서 혼자서라도 외로운 투쟁을 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치적 판단과 함께 여기서 밀리면 시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절박함도 오 시장이 마지노선을 치게 된 요인이 됐다고 한다. 교육감의 소관 사항인 무상급식 문제를 재원 규모와 실행 시기까지 조례로 못박아 시장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그대로 용인할 경우 앞으로 시장이 시의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노선을 치고 ‘큰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번 투쟁에 나서면서 나름대로 상당한 고심을 했다는 것이 측근들의 말이다. 오 시장은 시의회와의 협의 전면 중단과 장외 여론전을 결정한 12월 3일 아침 6시 직후부터 측근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고 한다. 측근들은 “시장이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 결심을 밝히는 것을 보고 밤을 꼬박 새우며 고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종’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오 시장이 밤을 새워 결심한 이상 쉽게 끝날 전쟁이 아니라는 게 측근들의 말이기도 하다.

실제 오 시장과 서울시의회, 교육감 등이 서로의 정치적 의도에 의혹을 던지며 싸움을 시작한 이상 무상급식 전운(戰雲)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무상급식을 둘러싼 각종 쟁점들이 다시 부각되며, 오히려 인터넷상에서는 네티즌들을 상대로 찬반 논쟁이 지난 선거 당시보다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쪽이나 지지하는 쪽이나 모두 감정이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는 상태다.

오세훈 시장을 비판하는 쪽의 논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서울시의 쓸데없는 예산만 줄이면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 700억원’은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는 식이다. 서울환경연합 등 ‘오세훈 사태’에 대한 ‘서울지역범시민사회단체 비상대책회의’ 측은 “오 시장 4년 동안 한강르네상스에 쏟아부은 돈만 약 1조원입니다. 디자인서울에 들인 돈은 또 얼마입니까? 오 시장 임기 중에 서울시의 부채는 4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었습니다. 흥청망청 전시행정, 과도한 홍보행정, 끊임없는 토목행정으로 세금을 낭비해 온 탓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무상급식 예산 700억원(서울시가 이미 배정한 빈곤층 5% 선별급식 예산을 제외하면 585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3%)’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니요?”라며 무상급식 예산 배정에 반대하는 오 시장과 서울시를 비난하고 있다.

서울시 “지금도 매년 급식비로 664억 지원”

지난 12월 2일 통과된 무상급식 관련 조례는 민주당 소속 김종욱 시의원 등 85명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친환경무상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정식 명칭으로, 서울시는 ‘친환경무상급식지원심의위에서 심의한 급식경비를 교육감 및 구청장에게 현금 또는 현물로 지원’(5조)하며 ‘의무교육기관에 대한 무상급식과 관련하여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시행’(부칙 3조)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는 내년도에 서울시내 초등학생 52만4000명의 무상급식을 위해 필요한 예산 2317억원의 30%인 695억원을 분담해야 한다. 전체 무상급식비 중 50%는 교육청이, 나머지 20%는 자치구가 부담하게 된다. 2012년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하면 2317억원의 무상급식 예산이 4000억원 선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러한 조례 제정에 대해 서울시 측은 ‘상위법에 급식은 교육감 권한으로 명시돼 있는데 하위법령인 조례로 이를 시장에게 이관시키고 시장의 예산 편성권을 침해한 위법적 조치’라고 반발하는 반면, 민주당은 ‘교육감이 급식 계획을 세우면 지자체는 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학교급식법 조항도 있고 예산을 구체적으로 정한 다른 조례도 많다’는 등의 이유로 이번 조례 제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논쟁을 언뜻 보면 서울시가 ‘아이들 밥값’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지만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서울시는 “지금도 적지 않은 교육 예산을 써왔고 특히 급식에 관해서는 서울시내 초·중·고 학생의 약 11%에 해당하는 14만3000명의 저소득 가정 학생들(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족, 건강보험료 월 3만4000원 이하 가정 자녀 등)에게 매년 664억원의 급식비를 지원해 왔다”며 “이 비율을 내년부터 매년 5%씩 늘려 2014년까지 30%로 확대할 방침이었는데 무조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것으로 공격받아 억울하다”는 것이다. 이는 오 시장이 서울시의 급식 지원 방침을 ‘순차적 복지’로 주장하며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매년 적지 않은 교육 예산을 부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시는 법으로 서울시교육청 1년 예산(6조5000억원)의 38%를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돼 있다. 이미 교육청 예산을 2조원 이상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 입장에서는 교육감이 자신의 권한인 급식을 무료로 하든 말든 예산 안에서 해결하면 되는데 왜 조례까지 바꿔가며 다시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하느냐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의 1년 예산 중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8000억원 정도가 남는데, 이것만으로 초·중학교 무료급식을 해결하려면 절반가량을 써야 한다. 그만큼 다른 데 쓸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내년도 서울시교육청 예산을 보면 서울시에서 695억원을 지원받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초등학생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대신 중·고등학생 저소득층 급식비 지원액은 올해 492억원에서 395억원으로 10억원가량, 노후시설 보수 교체 등 시설사업비 역시 올해 6836억원보다 27.1%(1850여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돼 있다.

서울시 “완전 무상급식은 스웨덴과 핀란드뿐”

특히 오 시장과 서울시는 2006년 오 시장 취임 후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지원을 매년 1000억원이나 추가로 늘렸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이종현 서울시 대변인은 “오 시장 취임 후 서울 시내 학교 시설과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노후 화장실, 책걸상, 브라운관 TV 교체와 음악·미술 등 창의교육 재원 등으로 매년 법적 지원금 외에 추가로 1000억원씩 서울시교육청에 지원해 왔다”며 “그런데도 부자든 가난한 집 아이든 똑같이 무상급식을 하겠다며 급하지도 않은 돈을 더 내놓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쓸데없는 예산을 아끼면 무료급식 예산 700억원가량은 마련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종현 대변인은 “서울시 역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종합행정을 펴는 곳인데 복지부에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국토해양부에서 이미 검토해 확정한 예산을 더 떼다 준다는 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느냐”며 “무상급식하면 결국 도로 놓고, 다리 건설하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진짜 무상급식이 그렇게 시급한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설령 조례를 받아들여 내년 무상급식 예산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다고 해도 2012년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에 필요한 4000억원은 또 어떻게 마련하느냐”며 “결국 경직성 경비가 돼 무상급식을 위한 세금을 더 걷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세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담세율이 40%에 가까운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 뿐이라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투쟁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결국 여론의 향배에 달려 있다. 이는 오 시장이 그동안 예산을 제대로 썼느냐, 쓸데없는 데 썼느냐는 야당의 논리가 기준이 되기 쉽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오 시장의 주장은 복잡하고 야당의 주장은 단순하면서 전체 싸움의 프레임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 시장이 쉽지 않은 싸움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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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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