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서 단독 과반(152석)을 달성한 새누리당의 승리를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으로 김무성(61) 의원을 꼽는 데 새누리당 내에선 별다른 이견이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 등 친노(親盧) 인사들이 영남권 공략을 위해 대거 출마한 부산·경남(PK) 지역에서 새누리당이 40개 선거구 중 36석을 달성한 데는 공천을 스스로 포기하고 선거 지원에 발벗고 나선 김 의원의 공이 컸다는 것이다.
당내에선 김 의원이 PK 지역뿐 아니라 전체 총선 판도를 바꾼 역할까지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지난 3월 12일 당 공천위가 자신의 공천 문제를 놓고 발표를 계속 미루는 등 공천 탈락 위기에 처하자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감행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총선 불출마 및 당 잔류를 전격 선언했다. “우파 분열의 핵이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였다.
김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으로 당초 부산에서 영향력이 큰 김 의원의 합류를 통해 제3 보수신당 창당에 불을 붙이려던 비박(非朴) 세력의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실제 공천에 대거 탈락한 친이(親李)계 의원들 중 상당수는 김 의원의 거취를 보고 탈당을 감행하려다 김 의원의 불출마 결정 이후 계획을 접었다.
김 의원의 불출마 결정은 현 정권 들어 벌어졌던 박근혜 비대위원장과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효과도 가져왔다. 4선 중진인 그는 2007년 대선 때 친박 좌장 역할을 했으며, 2008년 총선 땐 공천받지 못하자 탈당해 무소속(부산 남구을)으로 당선된 뒤 당에 복귀했다. 이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사이가 벌어지면서 비박(非朴)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전면에 나서 이번 총선에 올인했던 박 위원장으로선 김 의원 덕에 보수 분열이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만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복원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박 위원장은 실제 김 의원에게 여러 차례 중앙선대위 부위원장직을 제안했으나 김 의원은 “불출마 결정의 배경에 박 위원장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 의원은 아무런 당직을 갖지 않은 채 부산·경남·울산 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원 유세에 나서는 등 PK 지역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김 의원에 대해 박 위원장은 지난 3월 28일 부산 방문 때 “부산 사나이다움을 보여주셨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처럼 ‘박근혜-김무성’ 투톱 체제로 치러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PK 지역 40개 선거구 중 36석을 차지했고, 이른바 문재인 고문을 앞세워 ‘낙동강 벨트’ 공략에 나선 민주통합당에는 문재인(부산 사상)·조경태(부산 사하을)·민홍철(경남 김해갑) 등 3석만 내줬다. 이 때문에 김 의원이 곧 새로 들어설 새누리당 지도부 구성에서 당 대표 등 중책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친박계 관계자는 “김 의원은 친박계 좌장 역할을 하며 지난 대선 경선을 치른 경험을 갖고 있고 원내대표를 지내는 등 국회 운영에도 밝아 연말 대선을 본격 준비해야 할 새 지도부를 이끌 적임자란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해 원외(院外)에 머물게 된 데다 영남권 출신이란 점이 당 대표를 맡는 데 부담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친박 진영의 다른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평소 원내정당을 강조해온 데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났듯 수도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수도권이나 충청권 출신 대표가 적합하다는 내부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김 의원 자신은 “백의종군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는 평소 “우파의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한 친박계 중진 의원은 “김 의원이 당 대표에 도전하든 원외에서 박 위원장의 대선 준비를 돕든 연말 대선 정국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