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문재인 후보 ⓒphoto 조인원 조선일보 기자

대선을 약 3개월 앞두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제 최대 관심사는 안 원장과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느냐이다. 야권이 단일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안 원장, 민주당 후보가 대결하는 3자 구도로 대선이 진행된다면 필패(必敗)한다는 절박감에서다. 10년 전 2002년 대선에서의 승리는 ‘단일화=필승(必勝)’이라는 자기 확신을 민주당원들에게 갖게 했다.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승리 가능성이 낮았으나 정몽준 국민통합당 후보와 극적 단일화를 이뤄내면서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후보를 꺾은 바 있다.

‘야권 단일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 8월까지는 안 원장이 민주당 선두주자인 문재인 대선 경선 후보에게 10%포인트 이상 견고한 우세를 이어갔다. 그래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박근혜 대항마’를 뽑는 게 아니라 안 원장과의 단일화 상대를 선출하는 플레이오프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문 후보가 민주당 지역순회 경선에서 파죽의 연승을 거두면서 지지세가 결집하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8월 27일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안 원장(39.8%)과 문 후보(34.0%) 차가 5.8%포인트로 좁혀지더니, 지난 9월 8일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선 안 원장 43.0%, 문 후보 40.4%로 박빙이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9월 7일 안 원장(39.1%)과 문 후보(36.8%)의 지지율 차가 2.3%포인트였고, 9일에는 문 후보(39.5%)가 안 원장(37.1%)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기 시작하더니 12일에는 문 후보(43.7%)와 안 원장(33.9%)의 격차가 10%포인트가량이나 벌어졌다.

보수층, 약체 후보 의도적 지지

이 같은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 결과는, 박근혜 후보까지 포함한 대선 여야(與野) 후보 3자대결 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크다. 각종 조사에서 박 후보가 40% 안팎으로 선두이고, 안 원장은 25~30%, 문 후보는 15~20%이다. 안 원장은 문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 있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안 원장이 문 후보와의 야권 단일후보 맞대결에서 열세인 것으로 최근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보수층의 ‘역선택(逆選擇)’ 가능성이 거론된다. 보수층의 역선택이란, 여론조사 응답자에 포함된 보수성향 유권자들이 야권 단일 후보로 박근혜 후보가 상대하기 쉬운 약체 후보를 의도적으로 뽑는 것을 의미한다. 새누리당 지지층 입장에선 지난 1년간 강력한 바람을 일으켰던 안 원장보다는 문 후보의 경쟁력이 약해 보인다는 것이다.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도 새누리당 지지층의 46.0%가 문 후보를, 33.6%가 안 원장을 지지했다. 이와는 반대로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無黨派)는 안 원장 지지(49.7%)가 문 후보 지지(23.2%)를 압도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안 원장(50.0%)과 문 후보(45.6%)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안철수 거부감도 한몫

안철수 원장 ⓒphoto 이준헌 조선일보 기자
안철수 원장 ⓒphoto 이준헌 조선일보 기자

과거 조사와 비교하면 문 후보의 상승세에 대한 여당 지지층의 기여가 뚜렷하게 확인된다. 8월 27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와 9월 8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를 보면 문 후보는 약 2주일 만에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가 34.0%에서 40.4%로 상승했는데, 특히 새누리당 지지층에선 33.0%에서 46.0%로 13%포인트나 상승했다.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에서는 소폭 상승에 그쳤다. 연령별로도 20~50대는 문 후보에 대한 지지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보수 성향이 가장 강한 60대 이상에서는 27.1%에서 41.7%로 대폭 상승했다.

이런 현상이 꼭 ‘역선택’ 때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여당 지지층이 역선택으로 문 후보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안 원장에 대한 반감(反感)이 커졌기 때문이란 것이다. 지난 9월 6일 안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의 ‘불출마 종용 폭로’ 기자회견으로 박 후보 측과 정면 충돌하면서 보수층에서 안 원장에 대한 거부감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다. 실제로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지지층은 8월 27일엔 절반에 다소 못 미치는 39.4%가 ‘모르겠다’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금 변호사 기자회견 직후인 9월 8일에는 ‘모르겠다’가 이전의 절반인 20.4%로 줄면서 이들의 상당수가 문 후보 쪽으로 옮겨갔다. 야권 후보 단일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여당 지지층의 눈길이 문 후보에게 쏠리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디어리서치 이양훈 부장은 “박 후보와 안 원장 사이의 대립각이 분명해지면서 보수층이 안 원장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노무현·정몽준 땐 보수층 제외

결국 무당파는 안 원장, 여당 지지층은 문 후보, 야당 지지층은 양쪽 지지율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단일화 방식에 따라 각자 지지층의 참여 폭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쪽이 선호하는 단일화 방식도 엇갈리면서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야권 단일화 방식은 1997년 김대중·김종필 후보 간 정치적 담판,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여론조사, 작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박영선 후보 간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현장투표 절충안,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방식인 오픈 프라이머리(완전국민참여경선) 등이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은 “문 후보로선 조직력이 가동될 수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또 오픈 프라이머리에선 그가 유리한 여당 지지층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배 본부장은 “안 원장으로선 박근혜 후보를 포함한 3자 대결에서 여전히 문 후보에 비해 우세하기 때문에 대(對)박근혜 후보 경쟁력을 묻는 여론조사 방식이 유리할 것”이라며 “여론조사 방식에서는 그가 불리한 여당 지지층의 참여를 배제함으로써 역선택을 방지하는 장치도 마련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상황으로선 안 원장이 10년 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을 제외한 응답자들에게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후보로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은 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할 것이란 설명이다.

양쪽 입장이 팽팽할 경우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오픈 프라이머리와 여론조사뿐 아니라 ‘TV토론의 배심원 투표’ 등 여러 방식의 절충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에도 어떤 방식을 어떤 비율로 조합할지, 여론조사의 질문 내용은 어떻게 만들지, 역선택 방지 장치는 어떻게 마련할지 등 복잡한 변수들을 놓고 치열한 힘 겨루기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안 원장이 야권 단일화를 합의할지도 아직 불투명하지만, 단일화 협상 테이블이 차려지더라도 앞길은 ‘산 너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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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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