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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수업 안 들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단, 좋아하는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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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228호] 201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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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수업 안 들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단, 좋아하는 일을 하라!

교토대 노벨상의 비밀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 

▲ 교토대 정문
한국인 과학자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이 두 명 있었다. 반세기나 더 전의 일이지만, 한 사람은 이승기 박사(1905~1996)이고 또 한 사람은 이태규 박사(1902~1992)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 모두 교토대학 출신의 과학자다.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에 일본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토대학 교수가 뽑힌 것 때문에 한국에서는 교토대학에 관심이 모아졌다. 그리고 ‘한국인은 왜 아직인가?’라는 초조한 목소리도 많이 들린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는 지금까지 총 19명이지만, 문학상이나 평화상을 제외한 과학 분야는 16명이고 그중 제1호였던 유카와 히데키 박사(1948년 물리학상)를 시작으로 8명이 교토대학 관계자다.(교토대학 발표) 일본에서도 ‘교토대학은 노벨상의 산실’이라고 불린다. 왜 도쿄(東京)대학이 아니고 교토(京都)대학인가? 그 비밀은 무엇인가? 교토대학이란? 나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교토대학 출신(경제학부)의 신문기자로서(한국식으로 말하면 60학번이다) 교토대학과 노벨상의 ‘비밀’을 소개하고자 한다.
   
   
   교토대의 한국인 과학자들
   
   첫머리에 인용한 두 사람의 한국인 과학자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교토대학에서 공부했고, 광복 후에는 한국 과학계의 지도자가 된 분들이다. 이승기 박사는 서울대 초대 공학부장이 되었지만, 한국전쟁 즈음 북쪽으로 건너가 북한에서 최고 과학자가 되었다. 그는 화학 합성섬유 ‘비나론’의 개발자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지금도 ‘2·8 비나론 연합 기업소’라는 대규모 화학공업단지가 함남에 있다. 그는 또 영변 원자력연구소의 초대소장이 되어 많은 핵 과학자를 길러냈다. 북한에서 ‘핵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다.
   
   ‘비나론’이란 1939년 일본 교토대학에서 개발된 ‘비닐론(vinylon)’과 같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나일론 개발의 뒤를 잇는 세계 두 번째의 화학 합성섬유다. 이 박사는 교토대학 유학 중 화학과의 사쿠라다 이치로(櫻田一郞) 교수와 공동으로 비닐론 개발에 성공했다. ‘비닐론’은 이 박사와 함께 북한으로 건너가서 ‘비나론’이라는 이름이 되었다. 북한은 그것을 ‘자주 개발’이라며 소위 ‘주체 과학’의 상징으로 추대했다.
   
   사쿠라다 교수는 노벨 화학상의 유력 후보로 알려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및 일본 패전 등 복잡한 사정 때문에 수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승기 박사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태규 박사도 이승기 박사와 같은 세대다. 광복 후 서울대 초대 이공학 부장을 맡았다. 1920년대에 교토대학에서 유학하고,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박사(이학박사)가 되었다. 1938년 교토대학에 이어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유학한 후 교토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일본에서 제1호 한국인 교수였다.
   
   이태규 박사의 전공은 ‘양자화학’으로, 광복 후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유타대학의 화학과 교수가 되었다. 유타대학의 동료 교수와 함께 연구한 양자(이론물리)에 관한 ‘Lee―Eyring 이론’으로 알려진 국제파 학자였다. 1973년 영구 귀국해 1992년 돌아가셨다. 그동안 노벨 화학상 후보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었다.
   
   
   안철수 후보와 헤이스케 교토대 교수
   
   두 사람은 모두 교토대학 공학부 화학과 출신이다. 이 화학과에서는 그 후 두 사람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후쿠이 겐이치(福井謙一) 교수(1981년 수상)와 노요리 료지(野依良治) 교수(2001년 수상)다. 교토대학의 화학 연구 전통을 말해주는 성과다.
   
   2002년 노벨 화학상에서는 민간기업의 40대 샐러리맨 연구자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씨가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예부터 교토에 있는 의료기기 메이커 ‘시마즈(島津) 제작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교토대학 출신이 아니었지만, 그의 수상도 ‘교토가 낳은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국제학술상으로 ‘필즈상(Fields Prize)’이라는 것이 있다. 노벨상에 수학상이 없기 때문에 1930년대에 캐나다인 수학자 존 찰스 필즈(John Charles Fields)에 의해 창설되었다. 국제수학자회의가 4년마다 수상자를 발표한다. 이 상도 이미 일본인 세 명이 수상했는데 그중 두 명이 교토대학 출신이다.
   
   여담이지만 필즈상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국 대통령선거의 안철수 후보 이야기다. 나는 안철수 후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화제가 된 그의 책 ‘안철수의 생각’을 읽었다.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한 부분 외에는 그다지 재미없는 지루한 책이었지만, 마지막 장 ‘미래의 주인공들에게’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책 속에서 인용된 유일한 일본 사람 이야기로 필즈상 수상자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廣中平祐)씨의 저서 ‘학문의 즐거움’이 소개되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그 책의 한 구절을 자신의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고 하면서 ‘책을 보면 한 평범한 사람이 노력을 거듭한 끝에 원래 천재였던 사람보다 더 빛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은 미리 남보다 두세 곱절 투자할 각오로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가진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인도하는 빛을 발견한 듯한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씨는 교토대학 출신 수상자의 한 사람이고 지금도 교토대학 명예교수다.
   
   
   한국 학생들 교토대에 왜 안 오나?
   
▲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지난 10월 8일 기자회견 중 노다 요시히코 총리로부터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photo 로이터
사실 이번 여름, 교토대학의 마쓰모토 히로시(松本紘) 총장이 세미나차 서울에 왔다. 그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교토대학 동창회가 한·일 졸업생들과 함께 총장 환영 오찬회를 가졌다. 나는 서울 주재 일본인 동창회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환영인사를 했는데 그때 위에서 소개한 이승기·이태규 박사에 관한 역사를 소개했다.
   
   왜냐하면 최근 교토대학으로 한국의 우수한 학생이나 연구자가 좀처럼 유학을 오지 않는다는 불만이나 고민을 마쓰모토 총장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토대학 출신자 중에는 이런 훌륭한 한국인 과학자가 있다”라는 사실을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PR하는 건 어떨까 권했던 것이다.
   
   마쓰모토 총장 자신도 교토대학과 이승기 박사나 이태규 박사의 역사를 몰랐다. 한국 젊은 세대에게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 배경의 하나로, 어떤 대학보다 ‘자유의 기풍’과 열린 분위기를 가진 교토대학을 PR해야 하고 그러한 교토대학 출신 한국인 과학자들이야말로 많이 어필해야 한다.
   
   덧붙이자면 마쓰모토 총장은 공학부 출신으로 전공은 지구물리학 또는 우주공학이다. 그의 연구는 ‘우주 태양 발전소’의 실현이라는 것으로 우주에서 태양에너지를 전기로 발전 변환시켜 지구로 보낸다는 장대한 구상이다. 무한적이고 궁극의 클린에너지(clean energy)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상천외한 발상 또한 교토대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서 많은 우수한 연구자나 학생을 받아들이고, 국제화를 추진하는 교토대학으로서는 지금 한국이 불만스러운 대상이다. ‘노벨상의 기회가 많은 교토대학인데도 왜 찾아주지 않는 것일까’라고.
   
   이 배경으로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오해라고 할까, 이해 부족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일본은 한국처럼 뭐든 수도에 집중되어 있는 ‘일극(하나의 중심)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 문화는 동서 양극으로 나눠져 있고, 그 전체 모양은 ‘타원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본 이해에는 이러한 관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나 문화구조가 지극히 중앙집권적이어서 모두가 서울 중심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서도 같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므로 일본 유학에 대해서도 도쿄 선호가 심하고 교토 같은 지방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등이 될 필요는 없다
   
   대학을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국립 서울대학 다음은 사립의 연세·고려대가 상위 랭크되지만, 일본의 경우 도쿄대학 다음으로 국립대학인 교토대학이 존재한다. 한국의 연세·고려대에 해당하는 게이오(慶應)·와세다(早稻田)는 그 아래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넘버 투의 교토대학은 수도 도쿄가 아니고 지방 교토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교토는 도쿄보다 문화적으로 앞선 지역이었다.
   
   도쿄는 동일본에 위치하지만, 서일본(西日本)에 위치하는 교토는 역사적으로는 문화선진 지역이었다. 일본 문화는 중국이나 한반도에 가까운 서쪽에서 점차 동쪽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서쪽의 교토는 1000년 넘게 천황이 존재했던 일본의 중심지역이었다. ‘권력’은 동쪽에 존재했지만 ‘권위’는 서쪽에 계속 존재한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권력(정부)도 권위(천황)도 동쪽 도쿄에 존재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일본 문화에 있어서 이례적이며 정상적이지 않다. 교토 시민 사이에는 천황가에 대하여 ‘교토로의 귀환’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지금도 있다. 즉 일본에는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으로 상징되는 것처럼, 문화적으로 두 개의 중심이 있다. 그것이 동서로 나뉘어지고, 항상 경쟁하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키워왔다.
   
   그 경우 중요한 것은 반드시 상대를 타도해서 혼자 이기고 일등이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반드시 이등이 있고 일등과 함께 서로가 그 존재와 가치를 인정하는 구조다.
   
   가장 전통적 일본 스포츠인 스모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스모는 언제나 동서로 나눠져서 싸운다. 게다가 동서 각각 톱 랭크의 요코즈나(橫綱)가 있다. 격은 동쪽이 위지만, 그때그때 성적에 따라 동서 위치가 바뀐다.
   
   전통 예능 라쿠고(落語·만담)도 동과 서로 나눠지고, 그 웃음 스타일에도 차이가 있다. 애초부터 요리의 맛도 동과 서는 다르다. 서쪽은 담백하고 좀 싱거운 맛이지만 동쪽의 입맛은 짜고 진하다. 프로야구에서도 동쪽 자이언츠와 서쪽 타이거스가 예부터 최대 라이벌로 서로 경쟁해 왔다.
   
   그러므로 일본 문화는 반드시 넘버원이 안 되어도 괜찮다고 할까, 아니 일등이 둘이어도 좋다는 구조다. 가치가 양분된 동서양립의 타원형 문화다.
   
   
   도쿄대 잡는 교토대 출신 검찰
   
▲ 마쓰모토 히로시 교토대 총장
교토대학은 분명히 도쿄대학을 항상 의식하면서 경쟁 관계에 있다. 대학 순위로 말하면 도쿄대학이 위에 위치한다. 설립 시기도 도쿄대학이 먼저였다. 그 결과 교토대학은 도쿄대학에는 없는 독자성을 항상 추구해 왔다. 독자성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노벨상으로도 연결된 것이다.
   
   예를 들면 도쿄대학은 무엇보다 국가경영에 필요한 ‘국가유용(有用)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최대 목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도쿄대학 출신자 중에는 관료나 관료 경험을 토대로 한 정치가가 많다. 국가의 기간(혹은 권력기관)을 짊어지는 인재를 주로 육성해 온 것이 도쿄대학이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국가기관 중에서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검찰은 예부터 의외로 교토대학 출신자가 많다. 이유가 흥미롭다. 일본에서 검찰은 정의사회의 핵심(보루)으로서, 고급관료나 정치가 등 권력범죄에 대한 단속이 최대 과제였다. 그런데 관료나 정치가에는 도쿄대학 출신이 많다. 그들을 단속하기 위해서는 도쿄대학 출신으로는 안 된다. 그래서 교토대학 출신이 검찰에 많이 기용되었다는 것이다. 과장된 면이 있는 것 같지만, 도쿄대학과 비교한 교토대학의 이미지를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교토대학은 국가나 권력을 의식한 도쿄대학에 비해, 졸업생의 대부분은 민간 분야를 목표로 하고 또 연구자들이 많다. 교토대학에는 일본 대학 중 가장 많은 14개의 연구소가 있다.
   
   ‘동서이원주의(東西二元主義 )’라는 타원형 문화구조의 일본에서 교토대학은 ‘서쪽의 중심’으로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하다. 그러나 나라의 중심은 지금 동쪽의 도쿄다. 특히 정치, 경제는 그렇다. 이 현실은 객관적 사실로서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현실의 중심을 담당하는 것이 도쿄대학인 것도 틀림없다.
   
   그러나 교토대학은 나라의 중심, 정치나 경제의 중심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인지 국립대학이지만 ‘여유와 자유’가 있다. 단기적·현실적인 국가의 요청으로부터는 거리를 두게 되면서 자유와 독자성이 보장된다. 시간적 여유 속에서 자유로운 발상이나 기초연구에 몰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발상과 기초연구’는 노벨상, 특히 과학 분야에서의 수상에는 불가피하다.
   
   
   지방의 여유가 교토대를 만들었다
   
   교토대학에는 몇 년 동안이나 논문 하나도 내놓지 않고 연구만 계속하는 엉뚱한 연구자들도 있다. 그것을 포용하는 연구 분위기가 있다. 그만큼 개인의 독자성이 존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때의 실패나 낙오도 용서된다. 실패를 되풀이해도 쫓겨나지 않는다. 노력과 성공을 위해 시간을 준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교수는 젊은 시절 실패가 많아서 ‘쟈마나카’라고 야유받았다고 한다. ‘쟈마’는 ‘방해’라든가 ‘지장’ ‘장애물’이라는 의미다. ‘쟈마나카’는 실패가 많아서 ‘방해가 되는 야마나카’ ‘장애물과 같은 야마나카’라는 뜻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노력, 이것도 노벨상의 배경이다. 안철수 후보가 감동했다고 하는 히로나카 헤이스케씨의 구절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1960년에 교토대학에 입학했다. 이과계가 아니고 문과계의 경제학부였지만, 먼저 교수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자유와 자율’이었다. “교토대학은 자유롭다. 무엇을 해도 좋다. 좋아하는 일을 해라. 모두 너희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단지 그 책임은 너희들이 져라”라고.
   
   강의실에서는 출석을 확인하지 않았다. 강의에 대한 출석은 자유로웠다. 따라서 큰 강의실에 학생은 몇 명뿐인 적도 자주 있었다.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의에는 나가지 않고 시험만 치는 학생도 많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일본은 정치의 계절이었다. 학생운동이 활발해서 반정부·반미 데모가 전성기였다. 나도 강의에는 대부분 나가지 않고 데모와 독서·영화에 몰두했다. 독서만은 한 달에 몇십 권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하숙에서 모든 장르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나는 경제학보다 문화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래도 경제학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아니 졸업시켜 주었다. ‘자유와 자율’은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교토대학의 노벨상 수상 배경으로는 교토라는 도시의 영향도 크다. 인구 면에서 비교해 보면 도쿄(특별구)는 약 850만명이지만 교토는 약 150만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교토는 산에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도시 공간은 도쿄에 비해 훨씬 좁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역사적 문화도시이며 학술도시이기도 하다.
   
   
   독창성을 포용해주는 곳이 필요하다
   
   관광도시지만 정치나 경제와는 관계가 없다. 즉 학자나 연구자에게 있어서 교토는 쓸데없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에만 전념하기 좋은 곳이다. 도시 공간이 좁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다른 분야와의 대화를 포함해 많은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교토대학에는 당연히 우익도 좌익도 존재한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좌익 중심의 반정부·반미학생운동이 활발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을 대표하는 헌법학자가 우파적 헌법개정론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배제당하는 일은 없었다. 좌우가 서로 그 존재를 허용했다.
   
   교토는 또 학생을 소중히 여기는 도시다. 내 경험으로 보면, 교토에서 학생은 시민들로부터 ‘가쿠세이상’이라고 불린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학생님’이다. 교토에서는 학생과 함께 연구자는 언제나 시민들의 기대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교토는 연구자에게 있어서 지극히 자유롭고 동시에 집중도가 높은 공간이다. 이 ‘자유와 포용과 집중’ 역시 노벨상 연구에는 필요한 조건이다. 내가 교토대학에서 배운 것도 ‘자유로운 발상과 독자성’이었다.
   
   나는 30년 동안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해왔다. 작년에 고희(만 70세)를 맞이했는데 이것은 한반도 전문기자로서 아주 이례적인 외길이다. 이러한 경력은 일본 언론에서 분명히 독자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한·일 역사 문제에 관해서 한국인의 공식적 역사관과 다른 역사인식을 주장할 때가 있다. 그 때문에 때로는 망언이라고 비판을 받고 네티즌에게는 ‘망언 제조기’라는 야유까지 받는다. 일본 언론계에서는 주류가 되어 있는 아사히신문 보도와는 다를 때가 많다. 이것도 ‘자유로운 발상’의 산물이다.
   
   야마나카 교수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노벨상의 비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다양한 개성을 살리는 장소가 있고 상식을 벗어난 테마가 나와도 어딘가 가능성이 있으면 평가를 해주고 기회를 준다. 그러한 포용력이 큰 사람과 장소가 있어야만 독창적인 발견도 생긴다.’
   
   교토란 도시와 교토대학에는 그러한 사람과 장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 은혜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도쿄 vs 교토
   
   1074년간 수도… 문화의 산실 교토대, 인문학도 강세
   
   한국의 ‘남남북녀(南男北女)’에 해당하는 말이 일본에 있다. ‘아즈마오토코 교온나(東男京女)’다. ‘아즈마오토코’는 간토(關東)지방의 남자를, ‘교온나’는 교토 여자를 각각 가리킨다. 남자는 씩씩한 간토지방 출신이 좋고 여자는 우아한 교토 출신이 좋다는 뜻이다.
   
   한자 京(서울 경)은 중국에서는 베이징(북경), 한국에서는 서울을 가리킨다. 일본에서는 교토를 가리킨다. 일본 속담에 나오는 京자 붙은 말은 모두 교토를 가리킨다고 보면 된다. 수도를 순일본말로는 ‘미야코(みやこ)’라고 하는데 이 역시 ‘교토’를 가리킨다.
   
   도쿄가 수도이고 교토는 수도가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교토는 794년부터 1868년까지 1074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 지금의 수도인 도쿄가 일본의 수도가 된 것은 144년밖에 안 된다. 도쿄(東京)라는 말도 교토(京都)의 동쪽에 있는 수도라는 뜻이다. 일본 역사는 동진(東進)의 역사였고 일본 역사의 주무대는 교토를 중심으로 하는 긴키(近畿)지방이었다. 기(畿)는 왕도(王都) 주위로 오백리 이내의 땅을 가리킨다. 전통시대 일본에서 기는 교토를 뜻했다.
   
   도쿄에 수도는 빼앗겼지만 교토 사람의 자부심은 여전하다. 다도, 노(能) 등 일본이 자랑하는 고급 문화는 모두 교토에서 나왔다. 지금의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간토지방은 교토 사람들이 볼 때는 ‘촌놈’에 불과하다. 교토의 기온(祇園)마쓰리는 일본 3대 축제의 하나이며 여성들의 교토 말씨는 아직도 우아함의 대명사로 남아 있다. ‘일본의 현재를 알려면 도쿄를 보고, 일본의 과거를 알려면 교토를 보라’는 말도 그래서 있다.
   
   교토대학은 문과도 세다. 중국학을 예로 들면 일본은 중국학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이 양대 산맥이다. 교토대학 교수를 지낸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는 수호전 관련 세계적 권위자이며, 그가 쓴 ‘중국사’는 방대한 중국 역사를 쉬우면서도 수준 높게 다룬 불후의 명저로 유명하다.
   
   교토 사람들은 상인 기질도 풍부하다. 교토상인은 일본 5대 상인의 하나로 불리며, 교세라 등의 유명 기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교토대학의 학풍(學風)은 교토 사람들의 기질에서 유래한 바 크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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