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지난해 9월경 한 공기업 사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내사 대상에 올랐다. 인사청탁 의혹 관련 내용이었는데 민정비서관실의 한 경찰관이 사건을 담당했다. 내사가 마무리되어 사건을 경찰이나 검찰에 넘기려는 시점에,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그를 불러 사건의 개요를 물어봤다. 민정비서관실은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있고,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경내에 있는데 민정비서관실 사건 때문에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부르는 것은 드문 경우였다. 해당건은 민정비서관실이 인지해 조사한 사건이었는데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알고 있다는 것도 의아했다.

사건의 개요에 대해 들은 공직기강비서관실 측은 사건을 수사기관에 넘길 정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민정비서관실 측은 반대 입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수사기관에 넘어가지 않았고 민정비서관실에 있던 자료는 공직기강비서관실로 넘어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정수석실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내사를 받던 공기업 사장과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함께 일했던 경력이 있었다”며 “조 전 비서관이 부탁을 받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공직기관비서관실이 민정비서관실 업무에도 서슴없이 관여할 정도로 무게추가 한쪽에 기울어져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내 사정 기능은 이처럼 공직기강비서관실 쪽으로 무게가 쏠려 있었다. 이는 조 전 비서관의 영향력과 무관치 않았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내부에서 박지만 EG 회장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조 전 비서관은 1994년 마약류 투약 혐의로 박지만씨가 기소될 때 담당 검사로 박씨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는 마약 혐의와 관련해 전과가 있었던 박 회장에게 ‘치료감호’라는 조치를 내려서 봐주기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조 전 비서관은 2012년 총선 직후부터 새누리당 김회선 의원 등과 함께 캠프 외곽에서 상대 진영의 네거티브 공격 대응을 담당했고,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다.

박 회장과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지난해 8월 대대적인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있었을 때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무풍지대’와 다름없었다. 당시 개편에서는 허태열 비서실장을 비롯해 곽상도 민정수석, 최순홍 미래전략수석, 최성재 고용복지수석 등 총 5명이 경질됐다. 이 중 곽상도 수석을 필두로 한 민정수석실 내 비서관도 전원 교체될 가능성이 높았다. 검찰 장악력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검찰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는데, 수사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청와대의 부담도 함께 높아가 많은 부담을 느끼던 시점이었다.

지난 12월 3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직원들이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 도봉경찰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3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직원들이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 도봉경찰서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민정수석만 교체됐을 뿐 밑에 있는 비서관은 모두 유임됐다. 민정수석실 비서관이 유임된 배경으로는 조 전 비서관이 있었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이다. 당시 민정수석실에 있던 한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을 제외한 다른 인사들은 모두 교체될 가능성이 높았고, 이중희 전 민정비서관은 교체가 확실시됐었다”며 “조 전 비서관만 자리를 지킬 경우 박 회장과 관련한 이런저런 말들이 있을 가능성 때문에 전원 유임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이 재임하던 시절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원래 업무인 친인척 관리 및 청와대 내부 직원 감찰을 넘어서 민정비서관실의 영역이었던 공직자 인사 검증 및 공직사회 감찰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 쪽으로 기울어졌던 무게추가 다시 민정비서관실로 옮겨간 것은 올해 초 박관천 경정이 경찰로 원대복귀한 시점부터다. 이때부터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하던 일들이 하나둘 민정비서관실로 원상복귀됐고 힘의 균형도 반대로 쏠렸다. 박 경정의 유무가 양쪽 간 균형에 있어서 결정적일 수는 없지만, 조 전 비서관에게는 어느 정도 타격이 있었다. 조 전 비서관도 두 달 뒤인 2014년 4월 청와대를 나왔다. 후임으로 조 전 비서관과 같은 김앤장법률사무소 출신인 권오창 변호사가 임명됐다. 두 사람은 같은 TK(대구경북) 출신에 서울대 법대 선후배로 청와대로 들어오기 전 김앤장에서 일했던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여전히 조 전 비서관 그리고 박지만 회장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으나, 이후 민정수석실 내 경찰과 검찰 직원들이 잇따라 교체되면서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를 잇따라 나가면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됐다. 지난 3월에는 시사저널 보도를 통해 ‘정윤회가 박지만 회장을 미행했다’는 내용의 주장이 불거져 나왔다. 박 경정은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문고리 3인방으로부터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일보는 올해 4월부터 ‘행정관 비위 조사 보고서’ 등 여러 건의 청와대 내부 문건을 보도했다. 당시에도 청와대는 박관천 경정을 유출자로 지목했다. 박 경정이 이를 부인하면서 유야무야됐다. 조 전 비서관이 4월 물러난 것도 문건 유출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였다. 세계일보가 지난 11월 28일 보도한 ‘靑(청와대) 비서실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 문건도 당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청와대는 보안과 관련해서는 심하다 싶을 정도의 조치를 취했다. 지난 7월 민정수석실 내 행정관을 대거 교체할 때도 당일 아침까지 원 소속기관으로 복귀한다는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는 외근 나가 있는 직원들을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한 채 사무실 밖에서 일부 개인 물품만 건네주고 원대복귀시키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조 전 비서관이 작성한 문건이 ‘찌라시’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당시만 해도 유출된 문건이 적지 않은 비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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