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프라이데이였던 지난 11월 29일 뉴욕 맨해튼 메이시스백화점의 풍경. ⓒphoto 연합
블랙프라이데이였던 지난 11월 29일 뉴욕 맨해튼 메이시스백화점의 풍경. ⓒphoto 연합

셰일오일은 미국 경제에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던지고 있다. 셰일오일 생산으로 촉발된 유가하락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면서 서비스업과 유통업이 호황기를 맞은 반면 최근 몇 년간 미국 경제를 떠받쳐온 메이저 주도의 에너지업과 금융업이 어려움에 직면했다.

긍정적 효과를 먼저 보자. 셰일오일 생산으로 인한 유가하락은 미국 내 소비증가→기업실적 개선→고용촉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덕분에 미국 경제는 11년 만에 호황을 맞았다. 2014년 3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11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고 일자리도 1999년 이후 가장 크게 늘었다. 5년 내 최저로 떨어진 유가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하루 4억5000만달러 이상의 절감 효과를 주고 있다.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이같은 효과를 ‘미국 경제에 아드레날린을 한 방 놓은 효과’라고 표현하고 있다. 12월 7일자 이코노미스트는 “(배럴당 유가가 100달러에서 60달러로 떨어진) 40달러 효과는 자동차에 연간 3000달러를 지출하는 미국의 전형적 운전자들에게는 연간 800달러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으며 이는 연봉 2%를 인상한 것보다 더 낫다”고 설명했다.

미국 경제의 호황은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대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2월 27일 “미국 소비자들이 가파른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뒤늦게 지갑을 열자 소매업체들이 반색하고 있다”며 “성탄절 연휴 매출이 3년래 최고 성장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사에서 소비자성장파트너(CGP)라는 컨설팅업체의 자료를 인용하면서 “수퍼토요일로 알려진 (12월) 20일 매출은 총 230억달러로, 11월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프라이데이 매출액 200억달러를 초과하면서 지난 10년간 최고 매출 시즌으로 자리 매김한 블랙프라이데이를 압도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유가하락 효과가 고용 증가로 인한 임금 인상 효과와 맞물려 긍정적 시너지를 낸다”며 “소비자들은 유가하락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절약된 돈 가운데 일부를 저축하는 경향이 있으며, 시차는 다소 있겠으나 소비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소비를 늘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2015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 힘입어 미국 경제는 당분간 상승 일로를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셰일오일 생산으로 인한 반대급부도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를 떠받쳐 온 메이저 에너지 업체들이 실적하락에 울상을 짓고 있는 것. 셰일오일이 개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에너지 사업은 전통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 메이저 기업들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전통 유전에 비해 소규모 투자로 생산이 가능한 셰일오일 광구가 곳곳에서 발견되면서 소규모 기업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에너지 메이저 회사인 엑슨모빌이 북극 시베리아의 유전 광구 하나를 탐사하는 데도 두 달의 시간과 7억달러의 비용을 소모했고, 실제 생산까지는 훨씬 더 오랜 시간과 수십억달러의 비용이 들었다”며 “이에 비해 셰일유전은 1500만달러의 비용과 몇 주의 시간이면 시추가 가능하다”고 했다. 소규모 셰일오일 업체들이 200곳이 넘게 생기면서 현재 미국 에너지 시장은 기존 메이저 에너지 회사와 소규모 셰일업체들이 양분하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유가하락으로 인한 에너지 기업들의 어려움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역이 텍사스주(州)다. 텍사스는 미국이 최근 몇 년간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동안에도 유일하게 불황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역이다. 텍사스에는 상당수 메이저 에너지 기업들이 몰려 있다. 텍사스는 지난 5년 사이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의 최대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기름 판매로 큰 이익을 봤다.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은 2014년 6월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지만 지난 12월 20일 56.62달러로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이러한 저유가 현상은 올 상반기 텍사스주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다. 현재 텍사스주 원유·가스 기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41만1372명으로 주 전체 고용 인구의 3.2%를 차지한다. 댈러스 모닝뉴스는 12월 28일자 기사에서 “텍사스주 원유·가스 생산 기업의 수익이 20% 감소하면 텍사스주 전체로는 21만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135억달러(약 14조8000억원)에 달하는 수입 손실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경제 전문 블룸버그통신도 ‘텍사스주와 노스다코타주(미국 내 원유 생산 2위)의 좋은 시절은 갔다’는 기사에서 두 주가 실업 증가, 수입 감소를 피하지 못하리라 예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 역시 최근 기사에서 한 채굴 장비 제조업체를 예로 들며, 현 텍사스주의 상황을 전했다. 휴스턴에 본사가 있는 채굴 장비 제조업체인 ‘허큘리스 오프쇼어’는 2004년 설립 이후 이 지역 원유 생산업체들에 굴착 장비를 제공해왔으나, 최근 재계약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 업체는 조만간 전체 직원의 15%인 324명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업체의 짐 노 부사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막대한 공급 과잉과 이에 따른 시장 혼란은 처음 본다”면서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보는 게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사에 따르면 유가하락은 에너지 업체뿐만 아니라 이 업체에 채굴 장비를 제공해 온 서비스 업체들과, 채굴 장비 제조 업체들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텍사스주의 이러한 상황은 미국 메이저 에너지 업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에너지 업체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를 거의 홀로 떠받쳐 왔다. 원유 업계는 2009년 중반부터 2014년 10월까지 고용 증가율이 50%에 가까워 미국 전체 산업 평균인 7%를 크게 압도했다. 같은 기간 임금 상승률도 원유 업계는 23%에 이르러 미국 평균인 13%보다 높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유가하락으로 인해 메이저 업체들이 2015년 연말까지 전체 인력의 9%인 4만명을 감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메이저 에너지 업체들의 어려움은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 최대 에너지 업체인 엑슨모빌의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던 2014년 7월에 104.38달러까지 올랐으나 12월 16일 86.41달러까지 하락했다. 2위 업체인 셰브런 역시 7월 135달러까지 갔던 주가가 최근 100.86달러까지 떨어졌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유가하락은 에너지 기업과 함께 미국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인 금융회사들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일본과 유럽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 조짐을 보이는 디플레이션과 소비 둔화가 유가하락으로 가속화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기업들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셰일가스 생산으로 인한 유가하락이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National Public Radio)는 12월 29일 방송에서 새해 미국 경제가 순항할 것으로 보는 5가지 이유를 보도했다. 이 방송이 꼽은 5가지 이유는 △GDP 성장이 빨라질 것 △고용과 임금도 늘어날 것 △인플레, 전례 없이 낮게 유지될 것 △장기 금리(채권 수익률), 점진적으로 뛸 것 △증시, 상승 지속 전망 등이다. 특히 이 방송은 2015년 총 28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고, 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6년째 성장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 3%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것은 인상적이라고 표현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문영석 실장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에너지 기업이 당장은 어렵지만 미국 경제의 70%는 내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단기적으로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정책적 개입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관계자도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저유가로 인한) 셰일가스 열기가 둔화되면서 관련 부문의 생산 및 고용창출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석유소비가 많은 가계의 구매력 상승 효과가 더욱 클 것”이라며 “소비와 소득이 같이 늘어나는 선순환 국면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부채조정이 마무리된 가계가 소비를 늘리고 이에 따른 기업 수익 확대가 고용증가로 이어지는 흐름이 2015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며 “서비스 부문의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기업들의 성과 역시 호조를 나타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LG경제연구원 측은 2015년 미국 경제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2014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3%였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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