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준 포스코 회장 ⓒphoto 뉴스1
권오준 포스코 회장 ⓒphoto 뉴스1

2013년 11월, 포스코 계열사 회장으로 일한 모씨는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받는다. 포스코 회장을 맡을지 모르니 준비해 두라는 박근혜 정권 실력자로부터의 전갈이었다. 이 인사는 나름 착실히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최고 권력자와 면담도 이뤄졌다고 한다. 분위기는 좋았다. 그는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태준 창업자의 유지를 받들어 열심히 하겠다”는 소감을 무심코 피력했다. 이후 그의 포스코 회장 내정설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 뒤 발표된 후보자 5인의 명단에도 없었다.

포스코는 누가 뭐래도 박정희 대통령의 작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기에 박태준 전 회장은 ‘고용자’일 뿐이다. 그런데 그를 창업자로 ‘칭송’하는 결례를 범하고 말았다고 한다. 지난해 초 포스코 내부에서 나돌았던 얘기다.

그 뒤 포스코 회장 자리는 권오준(65) 현 회장과, 당시 포스코건설 부회장인 정동화씨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지난해 1월 16일 인천 송도의 포스코 글로벌 연구센터에서 진행된 포스코 차기 회장 선정을 위한 2차 면접에선 예기치 않은 상황이 벌어졌다. 권오준 당시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과 정동화 부회장의 면접 때 외국인 사외이사인 제임스 비모스키가 1차 면접 때와 달리 통역 없이 영어로 직접 질문하겠다고 나섰다. 글로벌 경영능력을 갖춰야 하는 포스코 회장이라면 영어 정도는 능숙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유를 내세웠다. 권 후보로서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영어권에서 학위를 따고, 유럽사무소장까지 역임해 영어실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비모스키 사외이사의 질문에 유창한 영어로 술술 답변했다.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면접장에 들어선 정동화 후보는 크게 당황했다. 순수 국내파인 정 후보는 통역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면접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권 후보에게 넘어갔다. 당시 면접 광경을 지켜봤던 포스코의 한 관계자는 “정 후보가 당황해서 준비한 답변도 제대로 못했다”고 전했다. 당일 오후 포스코 이사회는 권오준 사장을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로 선정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전에도 외국인 사외이사가 있었지만, 후보추천위에서 영어로 직접 질문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정동화 부회장은 2차 면접 직전까지는 나름 자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왕실장’이라고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는 경남고 선후배 사이이고 김무성 현 새누리당 대표와는 한양대 동기라는 인맥을 나름 믿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인맥만 믿었을 뿐 자신이 이명박 전 대통령 진영으로 분류돼 그동안 포스코에서 승승장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말았다.

정동화 부회장을 제치고 박근혜 정권에서 포스코 수장 자리에 오른 권오준 현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철강기술 전문가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오직 기술연구의 외길을 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회장 선임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 경영인이라기보다는 기술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과감한 개혁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그의 회장 선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해 권 회장의 부인인 박충선 대구대 교수의 역할론을 일부에서는 제기한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복지 전공)를 땄는데, 대학은 서강대로 박 대통령과 동문이다. 입학연도는 1972년으로 박 대통령의 2년 후배다. 박 교수가 재임 중인 학교도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에 있다.

홍성추 재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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