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각각 3000만원, 1억원 수수 의혹을 사고 있는 이완구 총리(왼쪽)와 홍준표 경남지사. ⓒphoto 조선일보 DB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각각 3000만원, 1억원 수수 의혹을 사고 있는 이완구 총리(왼쪽)와 홍준표 경남지사. ⓒphoto 조선일보 DB

2004년 17대 총선 이후 당선무효 또는 피선거권 상실에 의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총 27번 치러졌다. 재보선이 치러진 이유를 차근차근 분석해봤다. 공직선거법상 불법기부행위로 인한 사유가 13건으로 가장 많았고, 정치자금법상 불법자금수수도 4건을 차지하였다. 해마다 빠짐없이 혈세를 들여 재보선을 치르는 이유 중 63%가 국회의원의 금품 관련 범죄 때문이다.

중앙선관위가 매 선거 때마다 공시하는 국회의원 선거구당 선거비용 제한액은 1억5000만원 내외이다. 그러나 이만큼의 법정 비용만 가지고 선거를 치러낼 수 있는 후보자는 단언컨대 없다.2013년 4월 재선거에서 당선된 이완구 총리가 당시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실제 3000만원의 불법자금을 수수했다면 그만 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선거현장을 가보면 여전히 최소 수억원씩의 불법 비용이 집행되고 있다.그래서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완구 총리의 죄목이 ‘걸린 죄’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누구나 다 검은돈을 받는 현실에서 ‘걸린 게 죄’라는 얘기다. ‘돈봉투’가 절실한 정치인이 아직도 많은 게 한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지난 2004년 이른바 ‘오세훈법’ 도입으로 한국의 정치는 이전에 비해 많이 투명해졌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국회의원이 검은돈의 유혹 앞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한국에서 정치와 검은돈은 끊을 수 없는 관계인가? 검은돈의 유혹 앞에 약해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고비용 저효율의 상징인 지구당이 폐지됐다. 그러나 여야 정당은 당원협의회(여당) 또는 지역위원회(야당)라는 변형된 지구당을 부활시켰고 이를 당헌·당규에 명문화시켰다. 또한 정당법상 지역사무소가 불법이기 때문에 현역의원의 경우는 개인 지역사무소를 설치하고, 원외는 지방의원 합동사무소 또는 연구소 간판을 내걸기도 했다. 지구당은 폐지됐지만 여전히 유사 지구당이 사무소 형태로 편법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세훈법’이 당초 기대했던 고비용 축소는 몇 발짝 나아갈 수가 없었다.

고비용 정치의 실상을 전하기 위해 필자는 현역 정치인 몇 명의 사례를 직접 알아봤다. 우선 서울 지역구 A 의원의 경우다. 그는 지역 사무실 임대료와 경상비로 월 100만원을 쓴다. 사무국장은 기초의원에게 맡겨 추가비용이 들지 않고 여사무원만 최소 비용으로 월 150만원을 주고 있다. 이 경우 A 의원은 무료 봉사하고 있는 기초의원에 대하여 차기 지방선거에서 공천 보장을 해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사실상 4년간 연봉 4000만원짜리 선출직 공직에 대한 사전 매관매직에 다름아니다. 절반 이상의 국회의원 지역구가 비슷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2004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지역구 내 경조사 축·부의금이 일절 금지됐다지만 “귀가 간지러워 어디 얼굴만 덜렁 들이밀 수 있느냐”는 게 A 의원의 말이다. 그는 월 200만~300만원가량의 축·부의금이 들어간다고 귀띔했다. 다음으로 ‘조직 활동비’로 불리는 밥값이다. 활발한 지역 활동을 하려면 최소한 월 1회는 지역구 간부 당원들과 모임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읍·면·동 책임자, 직능조직 담당자, 고문단 등이 100명 가까이 되고 지역 대의원이 보통은 200명 이내로 구성된다. 간부 당원들과 한번 모이면 식사만 해도 수십만원이 들고 소주 한잔이라도 곁들이면 금방 100만원이 넘어간다. 지역 대의원대회가 연 1~2회 열리고, 전당대회나 시·도당대회라도 열리면 비용은 더욱 추가된다. 얼추 계산해도 조직 활동비로만 연간 3000만원 남짓이다.

1년에 한 번씩 제작하는 의정보고서는 품질과 매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통상 1000만원 이상 들어가며 전액 자부담이다. 국회가 발송비 일부를 지원하는데 가구 수에 따라 300만~6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보통은 당원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배포한다. 이에 따른 인건비, 밥값 등이 제작비만큼은 들어간다. 이처럼 A 의원은 가장 적게 쓰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월 600만원 이상을 지출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지출이며 총선이 다가오면 그 액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방에 지역구를 둔 B 의원의 말도 들어봤다. 그는 월 평균 1000만~1200만원 정도를 지출한다. 사무소 임대료와 경상비 등으로 150만원, 사무국장 인건비 250만원(여사무원은 국회 인턴직 등록), 축·부의금 300만원, 단체 및 행사 협찬금 200만~300만원, 각종 회의 식대 100만~200만원 등이다. 축·부의금과 단체 및 행사 협찬금 500만원은 명백한 불법 지출인 줄 알지만 “빈손으로 찾아갈 수가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최소 금액만 내미는 것이 그 정도”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B 의원은 단일선거구이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다.복합선거구의 경우 최대 4개 군에 이르므로 사무소 4군데의 경상비와 인건비가 최대 4배까지 필요하고, 얼굴을 디밀어야 할 단체도 네 곱절로 뛰게 된다. 지방 지역구 의원은 서울에 숙소도 따로 마련해야 한다. 거기에 한창 집안 살림을 살아야 할 50세 미만 의원 70명(19대 당선자 기준)은 가계 걱정까지 더불어 해야 한다.

이 많은 정치비용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해 2월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의원은 모든 영리 목적의 공·사직을 겸할 수 없게 됐다.결국 연간 1억4000만원(세전) 남짓 하는 세비와 연간 1억5000만원(선거가 있는 해는 2배)까지인 후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과거에는 한도액이 없는 출판기념회를 통한 사실상의 불법 후원금 모금에도 의존했지만 이마저 지난해 ‘입법로비’ 창구로 활용된다는 검찰의 철퇴가 잇따르면서 대부분 중단됐다.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앞으로 더욱 큰 문제는 여당이 이미 당론으로 확정한 오픈프라이머리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이 오픈프라이머리가 ‘돈 먹는 하마’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재보선 투표율마저 20%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경쟁적인 조직 동원이 아니고서는 특정 정당의 경선에 참여할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결국 전 선거구민이 경선 유권자이기 때문에 경선 비용은 이제 무한정 들어가게 돼 있다. 단기적인 재보선의 경우 1인당 동원비로 통상 2만~3만원을 잡는다. 선거구당 평균 선거인 수 17만명의 10%인 1만7000명을 동원한다고 가정하면 5억원 선이다. 여당에 이어 야당까지 오픈프라이머리를 한다면 이러한 동원이 1년 동안 이어질 텐데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최근 내놓은 공천혁신단 초안은 권리당원과 일반 시민의 비율만 조정했을 뿐 지난 19대 경선 룰의 재판이다. 즉 후보자 2~3배수 압축이 기본 원칙으로 여기에 들지 못하면 경선에도 끼지 못하고 자동 탈락이기 때문에 과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당세 강세지역을 중심으로 권리당원 모집과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도 확보를 위한 전화홍보단과 착신전환(부재 시 걸려온 전화를 다른 번호로 연결해주는 기능) 조직 가동은 지금부터 불을 뿜을 터이다. 벌써 당원 모집이 시작됐고 그동안 게을리했던 지역구민과의 접촉 면도 늘려야 하니 몽땅 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모집한 당원을 대상으로 경선 때까지 문자를 보내고 조직원을 내세워 관리까지 해야 한다면 또 얼마가 추가되겠는가? 평소 지역구에 들이던 조직 활동비가 월 100만~200만원이었다면 이때부터는 그 두 배 혹은 세 배가 훌쩍 넘어갈 것이다.

국회의원이 의정활동과 차기 총선 준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재선 혹은 중진이 되면 시·도당위원장도 도전하고 지도부 선거에도 출마하는 등 정치적 위상을 높여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연초 새정치민주연합 시·도당위원장 선거에 도전했던 C 의원의 비용을 알아봤다. 총 소요된 비용이 1억원이라고 한다. 기탁금 3000만원, 대의원들에게 제작 발송한 홍보물비로 1000만원이 들었다. 여기다 한 달간 거들어준 자원봉사자들의 차비와 밥값으로 최소 경비만 썼는데도 3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문자메시지 비용이었다. 건당 30원 하는 장문 문자메시지를 한 번 뿌리는 데 100여만원씩 들어갔다고 한다. 이 문자메시지를 뿌리는 데는 횟수 제한도 없다. 상대 후보와 접전을 벌이다 보니 통신사들 배만 불린 셈이다. 수시로 문자를 받는 당원들에겐 공해에 가깝지만 여기에 3000만원을 날렸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시·도당위원장 경선후보는 따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가 없다. C 의원은 법적으로만 보면 금년 후원금 모금한도액인 1억5000만원 중 1억원을 이미 사용해버렸다.

성완종 리스트 공개를 계기로 ‘박희태 돈봉투 사건’이 새삼스럽게 조명되고 있다. 2012년 1월 당시 고승덕 의원은 박희태 전 한나라당 대표의 300만원 돈봉투 살포를 폭로했고, 박 전 대표는 결국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당 내 금권선거 실상이 처음이자 외부로 공식 드러난 순간이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지난 2011년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는 경선 선거인단이 무려 21만여명으로 확대되어 “20억~30억원은 준비해야 당 대표 선거를 치른다”는 게 여의도에서는 정설로 통했던 때였다.

요즘은 어떨까? 그때나 지금이나 공천권을 가진 지도부 선거이니만큼 당대표 선거가 가열되기는 매일반이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 당시 최고위원에 출마한 중진 D 의원 측에 물어봤다. D 의원은 약 3억원을 썼다고 한다. 우선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시도지사, 시군구청장 등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 예선 통과를 위해 전국을 누벼야 했다. 선출직들이야 관계없지만 취약지역에서 고생하는 원외 지역위원장들에게 전당대회 기간 금일봉을 받는 것은 이미 오랜 관행이다. 그들은 특별히 정치비용을 마련할 길도 없지 않은가? 예선은 1인 3표 연기명 투표이므로 가까운 혹은 중립적인 위원장을 공략하면 대개는 다 넘어오게 돼 있다. 1인당 100만원의 금일봉을 준다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원외위원장의 절반만 계산해도 7000만원이 든다. 예선을 통과하면 기탁금 3000만원을 납부해야 한다. 다음으로 25만명에 달하는 권리당원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 비용으로 1회에 700만원 이상이 사용됐다고 한다. 당선관위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5회로 제한했다지만 경쟁이 과열되면 타인 명의로 발송하는 편법을 쓰기 때문에 제재할 길도 없다. D 의원은 결국 효과가 미지수인 줄 알면서도 여기에 총 5000만원을 썼다. 이어서 선거전략 마련을 위한 여론조사비로 1000만원을 사용했다.

조직 활동비도 컸다고 한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에 조직 책임자를 한 달 동안 파견했다. 서울과 경기도는 2명이다. 총 17명에게 교통비와 식대 등으로 5000만원이 지급됐다. 또한 명함, 현수막, 어깨띠 등 홍보물에 드는 비용만 해도 3000만원 이상이 소요됐다. 이밖에도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합동유세장 박수부대에게도 쏠쏠찮은 비용이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전당대회 당일 지지 대의원들의 표 단속을 위해 설렁탕 값이라도 쥐여줘야 한다고 해서 또 봉투를 만들어 돌렸다. 그렇게 5000만원이 들었다. 그나마 당 대표 후보는 별도의 후원금 모금을 허용하지만 최고위원 후보는 이를 불허하기 때문에 대부분 불법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차기 총선에 줄을 대려는 입지자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이상에서 단편적으로 살펴보았지만 국회의원의 막대한 정치비용 지출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얼마 전 중앙선관위가 선거구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함께 제안한 바 있다. 현재의 비현실적인 정치자금 수수와 정치비용 지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인식하고 있는 선관위가 아니던가? 시도당 후원회 부활을 통한 원외 정치인의 합법적인 정치비용 마련, 최고위원과 시도당위원장 후보의 후원금 모금 허용, 지구당 부활을 통한 당원협의회(지역위원회) 양성화 등등이 선관위안에 담겼다. 당장 시급한 선거구 획정도 중요하지만 국회 정개특위가 정치자금법 개정을 한 치라도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최광웅

서울시의원, 노무현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인사수석실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담당 사무부총장, 현 극동대에서 ‘국가와 행정’ 강의, 데이터정치연구소장

최광웅 데이터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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