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 직장인 김보영씨 집에는 가구가 단 두 개다. 침대 하나, 테이블 하나가 전부다. 침대에는 서랍장이 달려 있고, 테이블은 식탁과 책상을 겸한다. 부부가 단둘이 사는 50~60㎡(20평대) 오피스텔에는 싱크대와 냉장고, 옷장과 세탁기가 빌트인돼 있어 많은 가구가 필요치 않다. 소유를 줄이려 빌트인된 집을 구했다.

집에는 소파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그릇도 간소하다. 머그잔 두 개, 프라이팬 하나, 냄비 하나, 접시와 밥공기 등이 전부인데, 다 합쳐도 15개가 넘지 않는다. 냉장고도 텅텅 비었다. 두고두고 먹는 음식은 들이지 않는다. 마트 장을 보지 않고 인터넷 장을 보는데, 친환경 농수산물 전문 인터넷 쇼핑몰 ‘마켓컬리’ 등을 통해 다음 날 먹을 식재료를 소량만 주문한다. 그의 집에 들어선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신혼부부세요?”라고 묻고, 그를 잘 아는 지인은 입을 쩍 벌리며 “예상보다 훨씬 휑뎅그렁하다”며 놀란다. 김씨는 16년 차 주부다.

김씨는 물질 소비를 최소화하는 대신 경험 소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맛집 투어를 즐기고, 공연과 영화를 자주 보며, 여행을 자주 한다. 얼마 전에는 ‘Magazine. B(매거진 비)’에서 일본서점 ‘쓰타야’를 다룬 것을 읽고 바로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는 주말을 이용해 쓰타야서점을 보고 왔다.

최근엔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일본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핀란드 슬로우 라이프’는 ‘핀란드식 행복 보고서’로, 소박하고 간소한 삶에서 행복을 찾는 북유럽 사람들의 철학이 잘 녹아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는 버리는 삶을 소재로 풀어낸 드라마다.

물질보다 정신, 익숙함보다 차이

김보영씨는 대표적인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다. 미니멀리스트란 삶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소박한 삶, 최소의 삶, 단순한 삶을 지향한다. 여기에서 ‘최소’란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맥과 시간 등도 포함된다. 불필요한 부분을 정리함으로써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삶이 이들이 지향하는 바다. 이들은 물질보다 정신에, 타인의 기준보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익숙함보다 차이에 가치를 둔다.

최근 국내에 미니멀리스트들이 급증하고 있다. 미니멀리스트 열풍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서점가다. 2년 전쯤 서점가에 등장한 ‘심플라이프’라는 키워드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제목만으로는 이 책인지, 저 책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단순’ ‘정리’ ‘심플’ ‘홀가분’ 등을 제목에 내세운 책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나온다. 눈에 띄는 몇 권만 뽑아봐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부자가 되는 정리의 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잡동사니 정리의 기술’ ‘미친듯이 심플’ ‘심플을 생각하다’ ‘미니멀리스트’ 등이다.

아예 ‘심플라이프’라는 이름의 출판사도 있다. 이름 그대로 심플라이프의 철학을 담은 책을 주로 내는 곳이다. ‘홀가분한 삶’ ‘소로우가 되는 시간’ 등을 냈다. 이 회사의 박경란 편집장은 대형 출판사에서 경제경영 및 자기개발 서적을 내다가 2년 전 독립해서 1인 출판사를 차렸다. “머지않아 개인의 가치 있는 삶이 전면에 나서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트렌드를 읽고서다.

“책을 만들다 보니 트렌드에 관심이 많다. 성장시대가 끝나면서 각자가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봤다. 기존의 성장 위주의 삶, 복잡하고 경쟁하는 삶, 천편일률적 삶과는 반대되는 삶 말이다. 5년 전 ‘심플라이프’라는 출판사 상표등록을 했고, 2년 전에 출판사를 열었다. 처음엔 심플라이프라는 출판사명에 대해 주변에서 100% 반대했다. 삶의 방식이라기보다 인테리어 회사 같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크게 공감하며 백만달러짜리 이름이라고 부러워한다.”

‘정리 컨설턴트’라는 직업도 생겼다. 한국의 정리 컨설턴트 1호는 윤선현씨다. 윤씨는 20여만부가 팔린 ‘하루 15분 정리의 힘’의 저자이자 5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카페 ‘정리력’의 운영자다. 그는 ‘베리굿정리컨설팅’을 운영하면서 ‘정리의 힘’을 전파하고 있다. 그가 배출해낸 정리컨설턴트는 30여명에 이른다. 그들의 ‘정리력’ 범위는 물건 위주지만 인맥정리, 시간정리로 점차 확장해 가는 모양새다. 두 번째 책 ‘관계정리가 힘이다’에서 그는 인맥정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인맥도 정리를 하지 않으면 시간과 감정, 돈을 허비하게 된다는 얘기다.

심플라이프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북유럽에서 시작해 미국, 일본을 거쳐 최근 한국에 본격적으로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사실 심플라이프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삶을 간소하게 살려는 삶의 철학이라는 점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월든’으로 유명한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대표적 미니멀리스트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선비들도 심플라이프의 삶이라 할 만하다. 티셔츠와 운동화, 청바지로 상징되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심플라이프를 추구했고, 옷장에 똑같은 디자인의 회색 티셔츠를 조르르 걸어놓고 사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삶도 심플라이프다.

물건을 정리하기 전과 후. ⓒphoto 비즈니스북스
물건을 정리하기 전과 후. ⓒphoto 비즈니스북스

성장시대 종말의 산물

그런데 왜 최근 들어 대한민국에 심플라이프 열풍이 거셀까? 전문가들은 ‘성장시대의 종말’이라는 경제상황, 각종 SNS로 야기되는 ‘네트워크 사회 피로증’이 심플라이프를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경제전문가 홍성국 대우증권 대표는 “심플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소박하고 간단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한 건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증거다. 과거 성장시대에는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성취가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저성장시대에는 쉽지 않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좌절을 느끼고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리는 거다. 21세기가 만들어낸 복잡한 네트워크 사회도 심플라이프의 급증에 한몫했다. 여기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들이 복잡성의 등 뒤로 숨어버렸다.”

네트워크에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4년 한 해 동안 유튜브에는 1분 동안 306시간 분량의 영상이 업로드되고, 트위터는 분간 43만건의 글이 올라온다. 이런 정보의 홍수와 네트워크의 복잡성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의 대척점에 있는 ‘단순함’에서 가치를 찾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나미 서울대 의대 겸임교수(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장)는 “저성장이라니까 우울해지는데, 저성장은 선진국의 특징”이라며 “심플라이프가 트렌드로 부상했다는 건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자존감 낮은 사람들이 인맥이나 물건에 집착한다. 저장강박증은 저소득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삶과 돈에 대한 철학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이 과소비를 많이 한다. 일종의 과시욕이다. 심플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건 사회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인맥을 간소화하는 것도 좋은 징표다. 영장류가 무리를 지어 살 수 있는 숫자는 200~250마리밖에 안 된다. 그 이상의 인맥은 가짜다.”

이를 세대론으로 보는 시각도 강하다. 한국의 심플족 내지 미니멀리스트 중에는 40대가 가장 많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1968~1974년생)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홍성국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차 베이비부머는 성공과 성취의 기회가 많았다. 여유가 있으니 물질도 풍족하다. 반면 2차 베이비부머는 불안하다.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압박감이 몰려오는데, 자녀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심플라이프를 지향하는 2차 베이비부머 중에는 적극적·자발적으로 심플라이프를 택한 사람도 있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아 자의반 타의반 심플라이프로 내몰린 사람도 상당수라는 얘기다. 홍 대표는 이에 대해 “이들의 심리 기저에는 일종의 자기 미화 내지 자기 합리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나미 교수도 세대론 측면에서 본다. 그는 “40대인 X세대(1971~1977년생) 중에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모세대의 과소비에 대한 거부감에서 연유했다”고 본다. “X세대의 부모들은 못 입고 못 먹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비닐봉지 하나도 못 버릴 정도로 저장강박이 있는 사람이 많다. 냉장고도 꽉꽉, 옷장도 꽉꽉 채워야 마음이 놓인다. 욕심과 욕구가 많은 사람들이다. X세대들은 그런 부모들을 보면서 ‘저런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과소비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거다.”

40대 초반 직장인 김소희씨가 이 경우다. 김씨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절대 사지 않는다. 경험 소비에는 과감하지만, 물건 소비에는 인색하다. 어머니의 저장강박에 질려서다. 60대 중반 김씨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대형 냉장고 4대를 사용한다. 놀랍게도 냉장고는 하나같이 음식재료들로 빈틈이 없다. 김씨와 그의 어머니는 소비성향 문제로 종종 갈등을 빚는다. 어머니는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김씨에게 “그게 무슨 남는 게 있다고…”라며 타박하고, 김씨는 그의 어머니에게 “경험 소비야말로 진짜 남는 것”이라며 반박한다.

환경 문제에 관심

21세기 현대판 심플족은 ‘와이파이를 든 소로’에 비유된다. 삶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간소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19세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닮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소비를 기꺼이 즐긴다는 점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건 자발적 소박함이지, 자발적 가난은 아니다. 이들의 삶은 무소유와는 거리가 있다. 특별한 소비 취향을 가진 사람들,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다. 몇 개 안 되는 물건마다 분명한 스토리를 지닌 경우가 많다.

또한 이들은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 미니멀리스트들 대부분은 쓰레기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앞서 등장한 김보영씨 역시 “쓰레기를 내보내는 것이 싫어서”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한다. 물건 대신 경험을 선물하는 것도 미니멀리스트들의 특징. 콘서트 티켓이나 영화 관람권, 행사 초대권이나 집에서 요리한 식사 등이 이들이 즐기는 선물 목록이다.

현대판 심플족의 대두는 2010년쯤으로 본다. 네트워크사회에 접어든 시기와 맥을 같이한다. 각종 정보와 인맥들이 인터넷 네트워크망을 타고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는 시기, 이에 대해 염증을 느낀 ‘미니멀리스트’ 또한 자신의 철학을 인터넷 망을 타고 하나의 운동이자 조류로 확산시켜 갔다. ‘미니멀리스트’ 저자인 미국의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가 그 예다. 이들은 자신의 웹사이트(TheMinimalists.com)를 통해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전파해 나갔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없애는 도구’를 표방한 이 웹사이트에 쏟아지는 관심은 컸다. 2010년에 개설한 웹사이트는 개설 1년이 되지 않아 한 달 10만명이 넘는 방문자가 몰려들었다. 이들이 낸 책은 151개국으로 수출됐다.

두 사람이 미니멀리스트로 전향한 과정은 반성문에 가깝다. 이들은 과거 억대 연봉을 받는 직업에 좋은 차, 큰 집, 넘쳐나는 물건을 소유한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성공한 삶이었지만 그들 스스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70시간 이상을 일하고 번 돈으로 더 많은 물건을 사들이는 삶이 반복됐다. ‘조금만 소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전향한 이들은 과거 자신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퍼진 터무니없는 기준에 집착하고 있었다. 성공한 줄로 알았던 바보였다.”

미니멀리스트 붐은 ‘누가 누가 더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나’로 화제몰이를 하기도 했다. ‘100개만으로 살아보기’의 데이브 브루노가 등장한 데 이어 72가지, 51가지, 50가지 물건만으로 살아가기 신기록이 잇달아 탄생했다. 현재까지 미니멀리스트 신공은 단 47가지 물건만 남긴 니나 야우다. 그런가 하면 심플족의 생활방식은 물건을 넘어 주거 방식으로도 확산됐다. 일본에서 일어난 ‘스몰 하우스’ 운동이 대표적. 10만엔으로 지은 집, 바퀴 달린 집 ‘모바일 하우스’가 그 예다.

“물건을 줄이자 삶이 달라졌다.” 미니멀리스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특히 미니멀리스트가 되면 부수적으로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미니멀리스트가 된 후 10㎏이 줄었다고 한다. 미니멀리스트 중에는 비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필요한 만큼만 먹으면 몸에서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사인을 보낸다는 것. 욕심이 적어졌으니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얘기다.

바깥의 욕망이 아닌, 내면의 욕망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본질에 충실한 삶. 심플족의 지향점이자, 심플족에게 뒤따르는 선물이다.

물건 잘 버리기 tip

- 한 가지를 사면 한 가지를 버려라.

- 여러 개 있는 물건은 버려라.

-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버려라.

- 남의 눈을 의식해 갖고 있는 물건은 버려라.

- 버릴까 말까 망설여지는 물건은 버려라.

- ‘언젠가’ 쓸지 모르는 물건은 버려라.

- 잊고 있던 물건은 버려라.

- 버리기 힘든 물건은 사진으로 남겨라.

- 물건씨의 집세까지 내지 마라.

- 수납장이라는 둥지를 버려라.

- 죽은 공간은 살리지 마라.

- 버릴 때에는 창조적이 되지 마라.

- 버릴 때에는 산 가격을 떠올리지 마라.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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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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