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성들이 송혜교나 김지원 때문에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본다고 할지 모르지만 내가 주목하는 것은 송중기였다. 그를 통해 군인 제복을 다시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인과 국가만 나오면 ‘국뽕’(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로, 애국주의를 조롱하는 속어)이라니 군인에 대해서 평가절하하는 것은 안타깝다. 또한 인위적으로 군대를 부각하는 것도 과잉반응이겠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경찰은 이미 자아실현의 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군대도 그렇게 여겨질 수 있다. 그 역할을 공적으로 잘 해낸다면 말이다.

내가 본방을 사수하지 못해도 IPTV 등으로 꼭 챙겨 보는 이유가 있다. 외모는 아닐지라도 그가 또 하나의 나(?)로 느껴지게 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송중기는 외형부터 포스가 넘치는 그간 드라마 속 군인들과 다르다. 예컨대 송중기는 아침 구보 때 웃통을 벗지 않았다. 국방색 속옷을 그대로 입고 있다. 다른 부대원들이 모두 옷을 벗어 번들번들한 몸통을 그대로 보였는데 말이다. 유시진 대위 역할을 권상우가 했다면 진즉에 한 번 벗었을 것이다. 하지만 괜히 벗었다가 본전도 못 찾을 것 같아 벗지 않은 듯하다. 일례로 드라마 ‘아이리스’ 때에는 정준호가 웃통을 벗고 구보를 했다가 이병헌 몸매와 비교돼 ‘하얀 두부살’이라며 망신을 당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 가릴 것은 가려주는 것이 매력을 증대시키는 법이기도 하다.

‘유시진’이라는 캐릭터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근육질의 인간병기 같은 군인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근육질의 우월한 몸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린 면이 있는 그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걸 응원한다. 오히려 서대영(진구 분)이 진짜 군인에 가깝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진짜 군인 같은 캐릭터가 과연 매력적인지는 의문이다. 드라마는 문화 콘텐츠에 속한다. 문화는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 염원을 담아내고 있어야 한다. 때론 그것이 너무 심해 현실도피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실 속 군인에 가까운 서대영은 문화적인 관점이 덜한 셈이다.

그렇다면 유시진은 현실을 어떻게 넘고 어떤 이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는 것일까. 유시진(송중기 분)은 강하기보다는 유약해 보인다. 외모상으로는 앳된 소년의 이미지다. 얼굴은 ‘군인’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구릿빛이 아니라 햇빛도 제대로 쐬지 못한 듯한 우윳빛이다. ‘늑대 소년’이라는 영화에서 송중기는 소년의 외형 속에 이미 야성(野性)이 있었다.

강한 남성을 기다리는 시대

하지만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은 겉으로는 여릴 뿐이다. 하지만 속은 딴판이다. 강단 있고 남성미가 넘친다. 더군다나 그는 군인 중 군인이라는 특전사 소속이다. 대체적으로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극적 효과를 위해 힘들고 어려운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선택하는데, 이런 점에서 특전사는 딱이다. 특전사가 주로 하사관들이 중심인 조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유시진 대위의 위상은 더욱 극적이다. 환경적 조건도 거칠고 같이 근무하는 구성원들도 만만치 않다면, 그 안의 유시진 대위는 더욱 대단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결정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 특유의 결단이나 돌파력을 통해 문제와 갈등 상황을 해결한다. 모순에 저항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결기도 보여준다. 그렇기에 여러 번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또한 자신의 신념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 때문에 감수한 일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결단을 내릴 줄 아는 남자인 셈이다. 그런 면모들이 유시진을 서대영보다 돋보이게 한다.

서대영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윤명주(김지원 분)를 모른 체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쟁취하기 보다는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서대영의 태도에 많은 여성들은 답답해 한다. 물론 달리 보면 서대영이야말로 프로 중에 프로, 고단수 중에 고단수일지 모른다. 여성을 애태우게 만들고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여성을 애태우게 만들려면 서대영은 엄청난 매력을 지니고 있는 남성이어야 한다. 소위 나쁜 남자 캐릭터다.

그에 비하면 유시진은 착한 남자다. 유시진은 강모연(송혜교 분)을 애태우게 하지 않는다. 강모연이 위기에 처하면 어디라도 출동해 수퍼맨처럼 구해낸다. 유시진은 이성과 감성은 물론 물리적인 강함과 사고의 유연함도 갖춘 완벽한 인물이다. 때론 냉철하고 합리적이지만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할 줄도 안다. 보기와 달리 육체적으로도 우월하기에 위험한 상황에서 여성을 구출해낼 줄 안다는 점에서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원(현빈 분)처럼 돈과 조직에 기댄 차도남같이 굴지 않는다. 스스로 위험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연인을 안전하게 만들기에 누가 그 역할을 해도 멋진 캐릭터다.

결국 유시진의 매력은 인간적인 매력이다. 군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 됨됨이가 보여주는 매력이다. 오히려 군인의 매력을 느낀다면 서대영에게 쏠리는 것이 맞다. 그렇기에 송중기의 매력이 군 제복 자체에서 나온다고 할 수는 없다. 군인 이전에 그는 누가 봐도 멋있는 사람이다. 다만 그가 현실에 있을 수 있는 존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현실 결핍의 이상적 지향점에 있다.

불황이거나 암울한 사회적 상황일수록 강한 남성을 원한다는 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보호받기 원하기 때문에 남성다운 남성을 원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남성상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재난 위기 상황에서 송중기와 송혜교가 펼치는 로맨스의 대히트가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군인이라는 캐릭터에 한정되었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는 제복과는 별개로 이상적인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다.

그럼 그는 왜 하필 군대의 장교인가. 정말 위기 재난 구조 속에서 송중기 같은 캐릭터가 본인은 물론 사랑하는 여성까지 능히 구출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이 드라마의 상황은 꼭 군대 안에만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남성들이 여성을 케어할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들고 있다. 남성이 남성다움을 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영역은 많지 않아졌다. 다만 그 가운데 하나가 군대다. 일상에서 가족과 연인,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남성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들의 그런 심리가 특전사 장교 유시진에게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