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학원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학원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29일 새벽 5시30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골목길은 파르스름한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인적이 드문 가운데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룹스터디를 하고 있는 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공무원시험 전문학원이 밀집해 있다. 그중 한 곳인 N학원 7층 강의실에서 김은영(26)씨를 만났다. 수원에 사는 김씨는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집을 나섰다. 강의는 아침 9시반부터 시작하지만 강의실 앞자리를 잡고 자습도 할 겸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김씨가 공부하고 있는 곳은 한 번에 500명가량이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대형 강의실. 이 학원 2층에는 이와 비슷한 크기의 대형 강의실 세 곳에서 한 명의 강사가 진행하는 강의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된다. 한 번 강의 때마다 많게는 1500명가량이 수업을 듣지만 그래도 사람이 너무 몰려 인원 제한을 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리 경쟁 또한 치열해 새벽 3시부터 학원 문을 두드리는 수강생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학원 강의시간표에도 ‘자리 예약 필수’ ‘선착순 입장’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서울의 4년제 K대학을 나온 김씨는 이 학원을 다니는 이른바 ‘공시생’ 중에서도 ‘구준생’에 속한다. 여기서 공시생은 ‘공무원시험 준비생’, 구준생은 그중에서도 ‘9급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라는 뜻이다. 1년 전부터 시험을 준비 중이지만 이미 한 차례 9급 공무원시험에 떨어져 운이 없으면 ‘장수생’의 대열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김씨는 “대학에서 교도소 수감자들을 보호관찰하는 교정학을 전공해 교정직 9급을 준비하고 있다”며 “공시생 2년 차면 장수생으로 불리는데 그 길만은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9급 공무원시험 수험생들은 요즘 피말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는 4월 9일로 예정된 9급 공무원 필기시험이 바싹 다가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는 1961년 현 공무원 직급 체제가 도입되면서 시작된 9급 공무원시험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몰렸다. 올해 9급 공무원 응시생은 22만2650명으로 작년 19만987명보다 3만여명이 더 늘어났다. 지난 몇 년간 해마다 19만~20만명 선을 유지해 오던 응시생 숫자가 올해는 더욱 치솟은 것이다.

채용 인원 늘었지만 경쟁 더 치열

정부는 최근 몇 년간 해마다 9급 공무원 채용 인원을 늘려 왔다. 특히 올해는 작년보다 420명이나 늘어난 4120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그러나 선발 예정인원은 작년보다 11%나 증가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경쟁률은 오히려 54 대 1로 작년의 51 대 1보다 높아졌다. 9급 공무원 직렬(職列)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심한 일반행정직 경쟁률은 무려 406 대 1로, 지난해 258 대 1보다 1.5배나 치솟았다. 89명을 뽑는데 무려 3만6000명이 몰려든 것이다. 몇 년씩 시험에 매달리는 구준생들로서는 ‘지옥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공시생의 나라’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됐다. 교육부의 2013년 취업통계연보에 따르면, 매년 대학 졸업자 55만여명의 절반 가까이가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청년층 및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에서도 청년층(15~29세) 취업준비자 64만여명 중 “일반직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응답이 34.9%에 달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공무원 양성소’가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공시생의 나라에서도 9급 공무원 열기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9급 공무원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는 ‘민원에 시달리는 말단 동사무소 직원’ 정도에 불과했다. 4년제 대학을 나와 9급 공무원 시험을 본다고 하면 “그런 시험 보라고 공부시켰느냐”는 험한 말이 부모들 입에서 나오기 일쑤였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영어완전정복’에도 동사무소 9급 직원 영주(이나영 분)가 외국인 민원을 처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영어학원을 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영주는 더듬거리는 영어와 자조 섞인 말투로 영어강사 앞에서 “나는 조선의 9급 공무원이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저학력’과 ‘말단직’이라는 이미지로 점철된 9급 공무원에 대한 인식은 이제 낡은 것이 돼 버렸다. 고졸과 지방대 출신들의 일자리라고 여겨졌던 9급 공무원직에 지금은 SKY라고 불리는 명문대 출신들도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3년 서울대 경력개발센터가 학부생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진로의식 조사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학생 비율은 10.6%였고, 그중에서도 7~9급 공채를 준비한다는 비율은 9.3%에 달했다. 2015년 대전시 신규 9급 공무원 합격자 179명 중 인사발령이 난 36명의 출신대학도 서울대 2명, 연세대와 고려대 각 5명, 이화여대 1명, 서강대 2명, 성균관대 5명 등이 포함돼 있었다.

서울시청 9급 공무원으로 주민센터에서 근무 중인 김모씨는 “요즘 9급 공무원 중에는 SKY뿐 아니라 외국 대학 출신도 더러 있는데 내가 본 분 중에는 베이징대 출신도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검찰직 9급 공채에 합격한 신모씨도 “195명 동기 중 SKY뿐 아니라 이화여대, 성균관대 등 소위 중상위권 대학 졸업생이 과반수 이상 되는 것 같다. 부모님 세대 때와는 정말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작년 10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 벌어졌던 ‘서울대 졸업생이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과연 온당하느냐’는 갑론을박도 어찌 보면 세상의 변화에 대한 지각 반응일 수도 있다. 당시 ‘서울대생이 9급 공무원 된 썰’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킨 서울대 출신 9급 공무원은 “월급 150만원 시작이 까마득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 중요해 9급 공무원을 택했다”고 썼다.

현재 9급 공무원시험 수험생은 3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응시생 22만명에다 ‘구준생’에 막 뛰어든 수험생들까지 합한 숫자다. 30만명에 달하는 구준생 숫자는 7급 공무원 준비생에 비해서도 5배 정도나 많다. 작년 7급 공무원 시험의 경우 730명을 뽑는데 5만9779명이 지원해 81.9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구준생 30만명은 대한민국에서 치러지는 공적 시험 중 60만명에 달하는 수능시험생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살인적인 실업률이 구준생 30만명 양산

구준생 30만명을 만들어낸 가장 큰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살인적인 청년실업률이다. 얼마 전 발표된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12.5%. 2014년 10.9%, 2015년 11.1%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9급 공무원시험 지원자 중 청년층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29세 이하도 14만5158명으로 이 역시 지난해보다 2만3412명이나 늘어났다. 취업이 어려워지고 미래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양산되자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9급 공무원직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9급 공무원은 공무원직 중에서도 시험 준비 기간이 1~2년으로 가장 짧아 비교적 손쉽게 진로 선택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노량진 ‘공단기’ 학원 최봉근 실장에 따르면 구준생들의 평균 시험 준비 기간은 ‘18개월’이라고 한다. 나하나(31)씨도 인하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2년째 9급 공무원 일반행정직을 준비 중이다. 나씨는 “인턴 등 다양한 대기업 취업 활동이 잘 안 돼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며 “나이가 좀 더 어리면 7급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둘 다 어차피 경쟁률이 센 상황에서 인원을 더 많이 뽑고 수험 생활도 짧은 9급을 택했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시험 준비가 용이하면서도 공무원의 일반적 속성인 고용 안정과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는다는 점도 9급 공무원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인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그렇다. 9급 세무직 시험을 준비 중인 충남대 경영학부 3학년 홍보경씨는 “과 동기 여학생 중 60~70%는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면서 “육아휴직 등 여성 복지가 좋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검찰직 9급을 준비 중인 이윤나(28)씨는 법률구조공단에서 인턴 근무를 하며 정직원에 대한 갈망이 커져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 이씨는 “공무원시험만큼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시험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9급 공무원시험은 ‘구준생 중 95%가 결국 시험에 낙방하고 만다’는 통설이 있다. 자칫 잘못 발을 들였다간 장수생으로 시험 준비에 인생을 허비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4년째 구준생 생활을 하고 있는 A(28)씨가 그런 경우다.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 졸업생인 A씨가 처음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해도 이것이 ‘수렁’이 될지는 몰랐다. 대학 4학년 첫 시험 도전 때는 응원을 아끼지 않던 부모님도 작년부터는 용돈 지원을 끊었다. “남들은 벌써 결혼도 했을 나이에 백수로 시험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늦은 나이에 특별한 스펙도 없어 일반 기업에는 이력서를 써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 ‘장수생’이 되면서 주변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은 A씨는 최근 자신이 자주 들르는 온라인 공시생 카페에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져 공부만 하다 합격해 돌아오고만 싶다”라고 적었다.

30대 중반 구준생인 김모씨도 최근 지인들에게 “우울하고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라고 자주 말한다. 김씨는 3년 전 다니고 있던 중소기업을 그만두고 9급 공무원시험에 뛰어들었다. “죽은 듯이 공부만 해 1년 내 합격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생각보다 경쟁률도 높았고 점수도 나오지 않았다. 3년 넘게 이어진 수험생활에 회사 다니며 모아둔 돈도 다 떨어진 지 오래다. 현재 김씨의 부모님은 지인들에게 김씨의 취업자리를 물어보고 있다. 김씨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지만 어차피 일을 다시 시작해도 공무원 이상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뿐이다. 김씨는 “다시 취업해 일단 돈을 모은 후 9급 공무원시험에 재도전해야 할지 답답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김씨의 경우처럼 구준생 생활을 오래 버티기 위해서는 돈이 중요하다. 강의 및 교재, 생활비 등으로 지출하는 돈이 백수들 입장에서는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은 규모이기 때문이다. 9급 경찰직을 준비 중인 김상우(25)씨는 구준생의 기본 경비에 대해 “보통 기본서만 3만~4만원이고 인강은 15만원가량, 학원비는 종합반의 경우 40만~50만원가량 든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시험은 보통 필수과목 3과목(국어·영어·한국사)과 각 직렬에 맞는 선택과목 2과목 등 총 5과목을 본다. 각 과목당 인터넷 강의와 그에 맞는 교재를 구입해야 하는데, 교재 또한 기본서 말고도 모의고사, 기출문제집 등을 1~2권 추가 구입하는 게 보통이다. 게다가 매해 기출문제 유형이 바뀌거나 추가되기 때문에 수험기간이 1년 추가라도 되면 교재를 새로 구입해야 한다. 김씨는 “한 번 준비하는 데 12~13권 정도 책이 필요해 교재비만 30만원”이라면서 “보통 1년 준비하면 생활비 제외한 순수 시험준비 비용만 150만원가량 든다”고 말했다.

구준생들을 벼랑 끝에 선 듯한 위기감으로 몰아가는 데는 9급 공무원시험 문제가 너무 쉽다는 점도 한몫한다. 이와 관련 구준생들 사이에서는 45회 행자부 9급 철도행정직 3등을 한 이모씨의 수기가 전설처럼 떠돌아 다닌다. “개인적으로 9급 공무원시험이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9급 공무원시험은 한 개 틀리면 위험하고 두 개 틀리면 끝장이다.”

3~4문제에 희비 갈려

실제 9급 공무원시험은 한 과목당 20문제, 총 5과목 100문제를 100분 동안 푼다. 4지선다형이긴 하지만 1문항을 1분 안에 풀어야 하는 셈이다. 작년에 최종 80명을 뽑은 선거행정직 시험의 경우 500만점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95점 이상이 2명, 90~95점 미만이 17명, 85~90점 미만은 87명 등 85점 이상을 받아야만 1차 합격자 112명에 들 수 있었다. 한 과목당 3~4문제만 틀려도 합격선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은 수험생들 사이에는 “나만 잘한다고 되는 시험이 아니다”란 인식도 강하다. 똑같은 점수라도 경쟁률 높은 직렬, 지역에 따라 합격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장수생들은 매해 직렬을 바꿔 경쟁률 낮은 데를 찾아다니며 도전하거나 아예 주소지를 경쟁률이 낮은 지역으로 옮기기도 한다.

명문대생까지 도전하는 9급 공무원시험 열기는 부작용과 잡음도 낳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생이 시험에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합격률이 낮아진 고졸 구준생들의 불만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고졸 구준생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2013년부터 각 직렬별 선택과목에 고교 과목(사회·수학·과학)을 공통과목으로 포함시키는 등 9급 공무원시험 과목을 고졸자들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하는 조치도 취했다. 또 전국 375개 고등학교와 전문대에서 학교장 추천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6개월 수습기간과 심사를 거쳐 임용하는 ‘지역 인재 9급 선발 인원’을 올해부터 기존의 3배 수준인 160명까지 확대키로 했다.

영어 과목 토익 대체에 시끌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또 다른 불만과 문제점을 낳았다. 고교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포함시키자 세법, 행정학 개론 등 공무원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기존의 선택과목 대신 상대적으로 쉬운 고교 과목만 선택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2015년 9급 세무직 필기 합격자 2075명 중 무려 75.6%인 1569명이 세법과 회계학 중 단 한 과목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시험 준비가 상대적으로 쉬운 고교 선택과목으로 인해 고졸자가 아닌 대학을 졸업한 지 오래된 일반인까지 9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지적 때문에 인사혁신처 내부에서도 행정학 등 전공 지식이 포함된 선택과목 중 하나를 의무 선택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계속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인사혁신처 내부에서 9급 공무원시험 과목 중 하나인 영어 시험을 토익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라는 기사가 구준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회원수만 60만명에 달하는 구준생 네이버 인터넷 카페인 ‘공드림’에서는 관련 기사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렸다. “영어 잘하는 사람에게 손해다” “사실상 4과목 보는 거니 변별력 문제는?” “장수생에게만 유리하겠다” “토익 비용만 또 나가겠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헌법’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추가하는 걸 논의 중이란 소문도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때문에 인사혁신처는 지난 3월 25일 홈페이지 공고를 통해 ‘아직 9급 공무원시험 과목 변경에 관해 확정된 사안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인사혁신처 인재정책과 강준이 사무관은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무것도 없으며 내부 회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강 사무관은 토익 시험 도입에 대해서도 “동점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변별력 논란은 이해한다”면서 “그런 부분까지 충분히 고려해 만일 새 정책을 도입할 경우 최소 1년 정도 유예기간을 가질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9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다 보니 ‘웃픈’ 상황까지 연출된다. 구준생들 사이에서 2009년 폐지된 공무원 시험 연령제를 부활시켜 달라는 목소리까지 나온 것. 40대 주부, 50대 은퇴자들까지 9급 공무원시험에 도전하는 상황에 위협을 느낀 20~30대 구준생들이 연령제 부활을 정부에 주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2~3년이 지나도 9급 시험에만 매달리다 다른 취업 기회를 놓쳐버리는 고시낭인에 대한 우려도 연령상한제 부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올해 9급 공무원시험 응시생의 평균 나이는 28.5세로 취업 마지노선에 몰린 사람들이 상당수라고 봐야 한다.

4년제 대졸 출신 9급 공무원이 늘어나는 것이 9급 공무원 사회의 학력, 학벌 콤플렉스를 부각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지만 아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무원 집단은 아직까지 보수적이어서 학벌보다는 직급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공무원 사회에 발을 디디면 ‘짬밥’이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명문대를 나온 검찰직 9급 공무원의 경우는 명문대 출신이 대부분인 검사들과 ‘신경전’을 벌일 수 있는 재원이 들어왔다는 점에서 오히려 선배 9급 공무원들의 환영을 받는다는 말도 나온다.

20대 청년들, 특히 고학력자가 9급 공무원에 몰리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공공 인력 역량에 대한 실증분석’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우리나라 공무원 역량은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정부에서 숫자를 계속 늘려온 9급 공무원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했다.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많은 역할을 수행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나라 9급 공무원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인력관리론 수업을 맡고 있는 행정학과 이종수 교수는 고급 인력의 9급 공무원 쏠림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객관적인 보수와 직무역량이 정해져 있다. 하급자가 상급자보다 역량 수준이 높아지면 ‘직위 부조화’가 일어나 장기적으로는 조직 내 갈등이나 불만으로 표출될 수 있다.”

9급 공무원은

올 일반행정직 경쟁률 407 대 1

9급 공무원은 크게 국가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국가직과 서울특별시를 제외한 광역지자체의 도청, 시청이나 구청,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지방직, 그리고 서울시 지방직 등이 있다. 보통 국가직은 4월, 지방직과 서울시 지방직은 6월에 시험을 본다.

이들 9급 공무원은 행정직과 기술직 두 가지 직군으로 분류된다. 행정직의 경우 일반행정직·선거행정직·교육행정직·회계행정직·세무직·관세직·통계직·교정직·보호직·검찰직·마약수사직·출입국관리직·철도경찰직 등이 있다. 기술직에는 공업직(일반기계·전기·화공)·농업직·임업직·시설직(일반토목·건축)·방재안전직·전산직·방송통신직 등이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은 기본적으로 학력 제한 없이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 가능하다. 다만 특수직렬에 속하는 교정직·마약수사직·검찰사무직·보호관찰직은 만 20세가 넘어야 지원할 수 있다. 지방직은 시험을 주관하는 해당 광역지자체에 3년 이상 거주해야 응시가 가능하다. 서울시 지방직은 이 같은 거주지 조건이 없다. 사회복지직·보건직·소방직·경찰직 9급 공무원은 국가직이 없고 각 지자체에서 별도의 자격 요건을 두고 자체적으로 시험 제도를 운영한다.

행정직은 영어·국어·한국사 등 필수 3과목과 선택 과목 2개를 보면 된다. 모든 행정직은 고교 과목을 공통선택 과목으로 포함하고 있다. 반면 기술직은 따로 선택 과목이 없고 각 직렬에 해당하는 지정 5과목을 봐야 한다.

올해 행정직군은 3756명 모집에 19만7656명이 지원해 52.6 대 1, 기술직군은 364명 모집에 1만7092명이 지원해 68.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는 일반행정(전국)이 406.6 대 1로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고 교육행정 299 대 1, 마약수사직 261.5 대 1, 시설직 일반토목 157.7 대 1, 방재안전직 146.4 대 1, 시설직 건축 137.3 대 1, 보호직(여) 122.2 대 1 순으로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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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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