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치헬기, F15 등을 양산하며 세계 방산계 메카로 군림했던 보잉 세인트루이스 공장. ⓒphoto 보잉사
아파치헬기, F15 등을 양산하며 세계 방산계 메카로 군림했던 보잉 세인트루이스 공장. ⓒphoto 보잉사

2015년 보잉사(社)는 민간 항공, 즉 상용기 사업에서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총 762대의 상용기를 고객사에 인도했고, 768대(134조5500억원 규모)의 순주문을 달성했다. 그러나 보잉은 잔치는커녕 올해 초 최대 8000명에 달하는 감원(減員) 결정을 내렸다. 본사의 주요 경영진은 현재의 실적보다 엄습해 오는 위기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보잉은 무엇보다 군사용 항공기(방산) 분야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1997년 보잉사는 미국 내 최대 방산업체 중 하나인 맥도넬더글러스사를 인수함으로써 상용기와 군용기의 양대 사업구조로 조직을 재편했는데, 최근 군수(軍需) 분야의 계속된 수주 실패로 생산물량이 급감했다. 상업용 항공기를 팔아 남긴 수익을 방산 분야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때 F15 전투기 등을 양산하며 세계 방산사업의 메카로 군림했던 보잉 세인트루이스 공장의 생산라인은 일감이 없어 가동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결국 보잉은 에버렛 공장에 있던 상업용 항공기 B777의 부품 생산라인을 세인트루이스 공장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군수사업 지원에 나섰다.

보잉은 2002년과 2008년에 한국 차세대전투기(F-15K) 사업자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실시된 국내 전투기 도입 수주전(戰)에서는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2014년 한국형전투기(KF-X) 사업 입찰의 경우 경쟁업체인 록히드마틴사에 밀렸다. 우리 정부는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록히드마틴의 F-35(40대)를 도입하고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합의했다. 보잉은 또 지난해 우리 공군의 공중급유기 사업자 선정에 참여했으나 에어버스 측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미 공군 고등훈련기 사업 수주에 총력

일본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를 차세대전투기로 선정하고 오는 2017년부터 실전 배치에 들어간다. 게다가 일본은 지난 4월 자체 개발한 스텔스 전투기의 시험비행에 성공하며 첨단 전투기 자체 개발 시대를 앞당겼다. 일본 정부가 4000억원이라는 투자비를 지원했고, 막강한 기술력을 가진 미쓰비시중공업이 개발을 주도했다.

미군(美軍)의 주력 전투기인 F-22 기종도 주로 록히드마틴에서 제작했다. 지난해 미국 당국이 선정한 차세대전략폭격기(LRSB) 사업의 경우 보잉은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고도 미국의 또 다른 방산기업인 노스롭그루먼에 밀려 탈락했다. 노스롭그루먼은 록히드마틴, 보잉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방위산업체 중 하나다.

보잉이 방산 분야에서 최근 입찰에 성공한 수주는 자국의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 정도다.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던 에어버스의 A330을 제치고 우여곡절 끝에 보잉이 본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보잉은 2017년 말로 예정된 미(美) 공군 고등훈련기(T-X) 도입 사업 수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X사업은 1차 물량만 370대, 17조원 규모에 달하고 후속 물량까지 합치면 총 1000대의 전투기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방산 입찰이다.

입찰에 참가할 업체들은 벌써부터 치열한 물밑 수주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수주전은 4파전 양상이다. 우선 보잉은 스웨덴의 사브와 손을 잡고 입찰에 참여할 예정이다. 경쟁사인 록히드마틴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카이)과 손을 잡았다. 록히드마틴과 KAI는 이미 미 공군이 원하는 사양을 충족하는 고등훈련기를 보유하고 있다. 노스롭그루먼과 영국 BAE, 미국 레이시온과 이탈리아 에어로마티가 손을 잡고 각각 컨소시엄을 구성, 입찰경쟁에 가세했다.

워싱턴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최근 생산물량이 급감한 보잉의 위기를 감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전망했다.

“보잉은 이번 입찰에 방산 분야의 명운을 걸었다. 어떻게든 수주를 따낸다는 전략으로 임하고 있다. 저가수주도 마다하지 않고 있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상업용 항공기 분야에서도 보잉은 경쟁업체의 도전을 받고 있다. 세계 상업용 항공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보잉과 에어버스는 요즘 싱글아일(단일통로·Single-aisle) 기종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싱글아일은 기내 통로가 하나인 기종으로 트윈아일에 비해 기체가 작고 탑승인원도 200명 수준이다. 주로 4000㎞ 내외의 중단거리용 여객기로 이용되는데, 보잉은 B737시리즈, 에어버스는 A320시리즈가 대표 기종이다.

상업용은 중국 시장서 판가름

싱글아일 기종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국제적으로 저가 항공사가 크게 늘었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단거리 이동에 필요한 작은 체급의 항공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 수요 측면에서 보면 A320이 보잉의 B737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 A320이 B737 기종에 비해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게 그 이유다. 국내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기술력에서 보잉이 앞서 왔기 때문에 비행기 성능도 보잉이 좋다. 그런데 A320은 보잉 B737보다 낫다는 평가가 있다. 가격도 보잉에 비해 저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우 단거리용 항공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B737과 A320의 승패는 중국 시장에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보잉 측에 따르면 중국은 향후 20년 동안 약 6000대의 항공기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잉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신 기종 B787도 개발 단계에서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투입돼 회사에 큰 부담을 안겼다고 한다. 2016년 4월 말 현재 수주잔고가 1100대를 넘어섰지만 아직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더욱이 고객사들이 효율성이나 기술력보다 싼 기종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어서 보잉이나 에어버스 양사 모두 비용절감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 여파는 보잉이나 에어버스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에도 전가되고 있다. 요즘 항공사의 납품업체들은 비용절감에 대한 방안을 놓고 보잉 또는 에어버스와의 줄다리기가 한창이라고 한다.

항공업계는 진입장벽이 높아 후발주자가 경쟁에 가세하기 어려운 구조다. 항공기를 만들 능력이 있어도 엄청난 초기 투자비용을 마련하기 어렵고, 보잉과 에어버스의 틈바구니에서 판로를 찾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브라질 엠브라에르 등의 중형 항공기 회사들은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전투기시장에도 발을 들여놓고 있다. 중국은 최근 상업용 여객기를 개발해 공개하기도 했다.

항공업계 한 인사는 “보잉이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시장의 1위를 지키고 있다. 방산 분야에서 어떻게 활로를 찾느냐가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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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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