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마을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가와 반기문 동상. 생가 뒤로 보덕산이 보인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윗행치마을에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생가와 반기문 동상. 생가 뒤로 보덕산이 보인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충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은 충북 음성에 있는 윗행치마을이다. ‘대망론(大望論)’의 주인공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고향마을이라서다. 반기문 총장은 2006년 10월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고 무려 다섯 번이나 충북 산골의 고향마을을 찾았다. 덕분에 윗행치마을은 유엔 사무총장의 동정을 전하는 CNN 등 외신에도 종종 등장하는 ‘글로벌 마을’이 됐다.

기자는 최근 윗행치마을을 두 차례 찾았다. 평일인 6월 14일과 일요일이었던 6월 19일에 한 차례 더 가봤다. 서울에서 이 시골 마을까지 가는 데는 자동차로 불과 1시간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음성터미널에서 윗행치마을로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0여분 정도. 50대 택시기사는 특유의 충청도 억양으로 기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음성이 이렇게 유명해지기는 꽃동네 이후 처음이유~~~.”

윗행치마을은 음성에서 반 총장의 외가가 있는 증평과 청주 방향으로 넘어가는 행치고개(행치재)에 있다. 행치재에 있는 윗마을이라고 해서 윗행치마을이라고 한다. 아랫마을인 아랫행치와 함께 행치마을로 불린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에 속해 있다. 마을 뒷산인 해발 510m의 보덕산이 아늑히 품고 있는, 전국 어느 시골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자연부락이다.

윗행치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이 평범한 시골 마을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마을 곳곳에 ‘반기문’이란 세 글자가 수두룩했다. 윗행치마을 초입의 반기문 생가를 정점으로 반기문 기념관, 광주 반씨들의 사당인 ‘숭모재(崇慕齋)’가 있고, 마을 고개 너머로 마을 공원이자 광장인 ‘반기문 평화랜드’가 널찍하게 펼쳐졌다. 반기문 평화랜드에는 반 총장의 동상과 함께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를 본뜬 거대한 화강석 조각이 서 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만국기가 많이 보이는 것도 이 마을의 특징이다. 심지어 농가의 헛간에도 반기문 총장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동네 담벼락에는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반 총장의 좌우명이 서명과 함께 벽화로 그려져 있었다. 처음 찾아간 시골 마을이었지만 누가 봐도 ‘반기문 타운’이었다.

윗행치마을에 있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 사당 ‘숭모재’.
윗행치마을에 있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 사당 ‘숭모재’.

수기봉 들고 생가 풍수 연구

‘반기문 대망론’은 지난 5월 말 반 총장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더 탄력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요즘 윗행치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부쩍 늘었다. 기자가 찾은 6월 19일(일요일)에도 반기문 생가를 둘러보기 위해 모여든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생가 바로 옆에 있는 반기문 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주말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몇백 명씩 몰려 온다”고 했다. 반기문 마을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대형 주차장과 공중화장실도 따로 있었다. 이미 반기문 생가가 타 지역 사람들에게 관광코스로 알려졌다는 뜻이다.

반기문 기념관 한편에는 간이 방명록에 해당하는 노란 포스트잇이 줄줄이 붙어 있고, 방명록에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이름이 보였다. 기자가 찾아가기 하루 전인 6월 18일 토요일자의 방명록을 살펴보았다. 서명을 남긴 사람만 50명이 넘었다. 방명록 오른쪽의 남기고 싶은 글을 보니 “대통령 기원합니다” “대선 꼭 나오세요” “대망 이루시길”과 같은 글이 보였다. 주소록을 보니 충청도 사람들 못지않게 대구·경북과 서울 방문객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요즘은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윗행치마을을 종종 찾는다. 기자가 찾은 날도 풍수지리를 배운다는 일군의 동호인들이 몰려왔다. 한 남성은 반기문 생가 앞에서 양손에 TV 안테나와 비슷하게 생긴 수기봉(水氣棒)과 지기봉(地氣棒)을 번갈아 들고 생가 앞을 분주히 걸어 다녔다. 생가 앞으로 난 하수구 앞을 지나칠 때 수기봉이 ‘휙’ 하고 돌아갔다. 이 남성은 기자에게 “이곳에 용맥(龍脈)이 흐른다”며 “생가 앞마당에 잠시 서 있다가 기(氣)를 받아가라”고 권했다. 이 남성에 따르면 반 총장의 생가는 지금의 자리가 아닌 마당 자리에 있었다. 2010년 반 총장의 생가를 복원할 때 반 총장의 동상과 함께 ‘포토존’ 등을 조성하느라 약간 뒤로 물러앉혔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집의 정기는 복원된 생가가 아닌 마당에 있다”는 것이 이 남성의 주장이었다.

마을주민들의 고증을 받아 복원했다고 하는 반기문 총장의 생가는 초가(草家)였다. 일(一)자형의 집에 어른 두 명이 눕기에도 비좁은 방이 세 칸 있고, 가운데 부뚜막이 달린 전형적인 농가 주택이었다. 부뚜막 옆의 방에는 ‘반기문 총장님이 태어나신 방’이란 팻말도 붙어 있었는데, 문지방이 낮아서 허리를 구부려야만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초가에는 반기문 총장과 부인 유순택 여사의 사진이 있어 반기문 생가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광복 직전인 1944년 윗행치마을에서 태어난 반 총장은 다섯 살 때 충주로 이사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반기문 총장님이 태어나신 방’

반기문 생가 옆의 반기문 기념관과 연못 한남지.
반기문 생가 옆의 반기문 기념관과 연못 한남지.

마을주민들에 따르면, 시골 마을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뒷산인 보덕산에서 내려온 영험한 기운 덕분”이다. 마을을 품고 있는 보덕산은 해발 510m의 뒷산이다. 고고한 학이 귀인(貴人)이 탄 수레를 끌고 내려오는 모양과 닮았다고 해서 ‘선학인가형(仙鶴引駕形)’ 명당이라고 불린다고 했다. 보덕산은 이 지역에서 ‘삼신산(三神山)’이라고도 불리는데, 마을에는 ‘삼신산의 정기가 발동하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커다란 사람과 커다란 부자, 커다란 장수가 태어날 것”이란 전설이 예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윗행치마을은 세계적 ‘귀인(VIP)’에 해당하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며 적어도 음성과 충청도 일대에서는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됐다.

특히 반 총장의 생가 앞에는 삼신산의 정기가 한데 모이는 연못도 있었다. 마을에서 ‘한남지(漢南池)’라고 불리는 조그만 연못인데, 풍수학에서 흔히 얘기하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이 연못은 혈(穴)자리 앞에 샘솟는 물이라고 해서 ‘진응수(眞應水)’라고도 불린다고 했다. 한 마을주민은 “보덕산에서 내려오는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연못”이라며 “한겨울에도 절대 얼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지금은 큰 바윗돌로 연못 주위를 두르고, 주변에 푸른 잔디를 심는 등 워낙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인공연못’으로 종종 오해를 사기도 한다. 반기문 기념관에서 문화해설사로 일하는 최현상씨는 “원래 지금 크기의 3분의 2 정도 되는 농업용 소류지로 특별한 이름도 없어 내가 한강의 남쪽 연못이란 뜻에서 ‘한남지’로 이름을 붙였다”며 “깊이가 1.5~2m 정도 되는데 밑에서 샘솟는 용천이 있어서 한겨울에도 10~17㎡(3~5평) 정도는 얼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음성군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2007년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부터 반기문 띄우기에 앞장서 왔다. 15억원을 들여 반기문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세웠다. 21억원을 들여 반기문 평화랜드까지 조성했다. 반기문 생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보덕산 자락의 반기문 평화랜드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뉴욕의 유엔 본부 모형과 반기문 총장의 동상을 세웠다. 엄연히 살아 있는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또 생가가 있는 윗행치에서 아랫행치까지 이르는 농로(農路)는 ‘반기문 비채길’이란 이름의 산책길로 꾸몄다. ‘비움과 채움의 길’이란 뜻의 ‘반기문 비채길’은 2012년 당시 행정안전부(현 행정자치부) 주관 ‘우리마을 녹색길’ 사업으로도 선정됐는데, 산책길 곳곳에는 반기문 총장의 캐릭터가 길과 마을의 유래를 안내하고 있었다.

음성읍내에서 반 총장의 직계 조상인 광주 반씨 장절공 반석평의 선영이 있는 하로1리까지의 왕복6차선 도로는 ‘반기문로(路)’로 개명하고 중앙분리대에는 알 듯 모를 듯한 석물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반기문로 초입에는 역대 유엔 사무총장들의 흉상을 설치한 반기문 기념광장까지 조성했다. 반기문 기념광장에는 반기문 총장의 흉상을 비롯해 반 총장의 롤모델로 거론되는 쿠르트 발트하임 총장의 흉상 등 역대 유엔 사무총장들의 흉상이 둥글게 배치돼 있다. 쿠르트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의 외교장관 출신으로 제4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후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1979년에는 유엔 사무총장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나오는 오스트리아식(式)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은 다분히 ‘발트하임 모델’을 염두에 둔 측면이 있다.

인구 10만의 평범한 군(郡)이지만 그 어느 도시보다 만국기가 많이 휘날리는 곳도 음성이다. 이 밖에 음성군체육회에서는 ‘반기문 마라톤대회’를 열고, 충북도교육청은 ‘반기문 영어경시대회’를 연다. 음성군은 ‘음성의 자랑 민족의 자랑’이라는 반기문 사무총장 홈페이지도 별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주민에 따르면, 음성군에서는 윗행치마을에 있는 소를 키우는 축사(畜舍)를 매입해 더욱 큰 관광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윗행치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소똥 냄새가 나는 축사가 반기문 기념관과 안 어울린다”며 “축사를 밀고 반기문 기념관을 확장하고 영어마을과 주차장을 만든다는 소문도 있다”고 말했다. 마을 이장인 임승순 상당1리 이장은 “음성군에서 축사는 이미 매입했고, 유엔평화관을 짓는다는 계획으로 안다”며 “지금의 기념관이 너무 작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음성에서 만난 택시기사 장씨는 “반기문 총장은 음성에서 태어났지만 충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며 “그래서 음성과 충주 사이에 요즘 반기문 고향 쟁탈전이 치열하다”고도 했다. 충주시 역시 2013년 반 총장이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살았던 집을 매입해 ‘반선재’란 이름을 붙이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반선재’는 ‘반기문의 선한 집’이란 뜻이라고 한다.

윗행치마을의 반기문 평화랜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윗행치마을의 반기문 평화랜드.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요즘 입을 꼭 닫고 산다”

반기문 기념광장의 반기문 흉상.
반기문 기념광장의 반기문 흉상.

윗행치마을의 광주 반씨들이 반기문 총장에 거는 기대는 유별난 데가 있어 보였다. 올해 말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나는 반 총장의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 역시 기정사실화하는 듯했다. 다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기질상 극도로 말을 아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음성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유권자 40%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찍었고, 17대 대선에서는 23%가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 17대 대선 당시는 충청도 출신 이회창씨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여권 표를 상당히 나눠 가졌다. 이를 합치면 보수 쪽에 투표한 비율은 35%에 달했다.

보수 성향 투표는 총선에서도 증명된 바 있다. 여당이 참패한 지난 20대 총선 때 음성에서는 새누리당 경대수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모두 8석이 걸린 충북 전체적으로 보면 20대 총선 때도 여야가 5 대 3으로 의석을 갈라 여권이 우세했는데, 5 대 3 구도는 19대 총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 총장이 만약 여권 후보로 대선에 나올 경우 고향 음성을 포함한 충북에서는 압도적 지지를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한 마을주민은 “윗행치의 광주 반씨 일문들은 요즘 입을 꼭 닫고 산다”며 “괜한 구설에 올랐다가는 자칫 대망론이 틀어질 수도 있어서”라고 말했다. 실제 반기문 대망론이 퍼지면서 요즘 윗행치마을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고 한다. “수확한 오디를 좀 팔아 달라”는 농부부터 “내 아들이 어디어디 공관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인사 청탁성 방문객과 “반 총장의 초상화를 좀 그리고 싶다”는 예술가까지 반 총장과 연줄을 대려는 별별 사람들이 반 총장 일가들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 보니 마을의 광주 반씨들은 반 총장에게 누를 끼칠까봐 아예 입을 꼭 다물고 산다. 이 마을주민은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취임한 뒤에 마을에 내려보낸 돈도 한푼도 없다”며 “다만 자기 부친 묘를 관리해 달라고 보내는 60만원이 전부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예민한 마을 분위기를 의식한 탓인지 반기문 총장 역시 지난 5월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린 유엔 NGO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했을 때 윗행치마을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대신 반 총장은 충청권의 정치적 상징으로 불리는 김종필 전 총리를 예방해 30분간 밀담을 나누는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반 총장은 2013년 8월 방한했을 때는 부인 유순택 여사와 함께 윗행치마을에 있는 선친 반명환씨의 묘를 찾아 성묘를 했다. 반기문 총장은 2013년 방문 당시 환영행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전 세계의 평화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지만 성원과 박수를 보내주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어 힘을 얻고 있다. 계속 많은 성원을 보내 달라. 이 세상이 더 많은 평화와 번영, 인간 존엄성을 발전시켜 공평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리고 반기문 기념관을 찾아 방명록에 “고향 방문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신 음성군민, 종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지나친 음성읍내 종합운동장에는 반기문 총장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려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이란 글귀와 함께였다. ‘반기문 대망론’이 계속되는 한 ‘반기문 타운’은 북새통을 이어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광주 반씨 장절공파와 윗행치마을

노비 출신 팔도감사 반석평이 파조

숭모재 옆에 있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 세계도. 일명 ‘돌족보’.
숭모재 옆에 있는 광주 반씨 장절공파 세계도. 일명 ‘돌족보’.

반기문 총장이 속한 광주 반씨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 반충(潘忠)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거제 반씨에서 분가한 가문이라고 하는데, 멀리는 중국 주(周) 문왕의 손자인 계손(季孫)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손이 지금의 허난성 싱양(滎陽)에 자리를 잡으면서 반씨가 나왔다고 한다. ‘반(潘)’으로 약칭해 불리는 땅이다. “나라 이름을 성으로 삼는다”는 ‘이국위성(以國爲姓)’에 따라 반씨 성을 가지게 됐다. 이후 한반도를 비롯해 베트남으로까지 퍼진 제법 글로벌한 성씨로, 중국에만도 약 800만명이 산다. 2006년 유엔 사무총장 선거 때 반기문 총장이 유엔의 대주주인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숨은 까닭도 있다.

반기문 총장은 광주 반씨 ‘장절공(壯節公)’파에 속해 있다. 장절공파는 조선 중종 때 팔도감사와 형조판서를 역임한 장절공 반석평(潘碩枰)을 파조(派祖)로 하는 가문이다. 최근 ‘백성의 종, 반석평’(도서출판 시루)이란 소설로도 출간돼 화제를 모은 반석평은 노비 출신으로 팔도감사와 한성부판윤, 형조판서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중종은 반석평이 죽자 애통해하며 ‘장절’이란 시호를 내렸다고 한다.

‘백성의 종, 반석평’을 쓴 울산지방법무사 회장을 지낸 저자 최대익씨에 따르면,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밭이 나쁘면 안 됐다. 비록 양반 소생이라고 해도 양반과 평민 사이에 태어난 서자(庶子)와 양반과 노비 사이에 태어난 얼자(孼子)를 통틀어 일컫는 ‘서얼(庶孼)’은 신분상승에 엄격한 제약이 있었다. 최씨는 “감사는 관찰사를 뜻하는 지방행정 최고책임자로 지금의 도지사고, 한성부판윤은 서울시장, 형조판서는 법무장관”이라며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조선 팔도의 감사를 모두 거친 인물은 딱 2명에 불과한데 반석평이 그중 한 명”이라고 했다. 지금으로 치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 ‘금수저’가 된 인생 역전의 표본인 셈이다.

윗행치마을은 장절공 반석평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광주 반씨 시조인 반충의 8세손인 반충익과 9세손인 반윤림이 약 380년 전에 윗행치마을에 터를 잡았다. 마을이 속한 상당1리 임승순 이장은 “마을 전체 주민이 40가구에 80명 정도 되는데, 광주 반씨는 10여가구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마을에서 만난 반기원씨에 따르면, 지금도 광주 반씨가 원래 20가구 정도 됐으나 노인들은 죽고, 젊은 사람들은 서울로 떠나 많이 줄었다고 한다. “반기문 총장과 12촌 지간”이라는 반기원씨는 반 총장과 같은 ‘기(基)’ 자 항렬로, 광주 반씨 장절공파 행치종중에 속한다.

광주 반씨 장절공파 일문들은 반 총장이 2006년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하기 전부터 윗행치마을을 성역화해왔다. 광주 반씨 18세손인 반병선 종회장의 주도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6년간 행한 작업이다. 마을 초입에는 광주 반씨 조상들의 시제를 올리는 사당인 ‘숭모재’를 세우고, 숭모재 앞에는 행치마을의 개조(開祖)인 반충익과 반윤림의 공덕비를 세웠다. 또 숭모재 옆에는 광주 반씨들의 공회당이자, 마을 경로당으로 쓰이는 ‘강당’을 만들고, 마을 입구에는 보덕산에서 이름을 딴 ‘보덕정’이란 팔각정을 만들었다. 그리고 전국 각지 이곳저곳에 따로 묻혀 있는 100여기가 넘는 광주 반씨들의 묘소를 한데 모아서 광주 반씨들의 대규모 선영을 조성했다.

광주 반씨 사당인 숭모재 바로 옆에는 ‘광주 반씨 장절공 행치파 참의공 세계도’라는 커다란 돌로 만든 족보까지 설치했다. 가로 7m에 달하는 일명 ‘돌족보’에는 반기문 총장의 이름이 한 귀퉁이에 새겨져 있었다. 반기문 기념관 측에 따르면, 국내 유일의 돌로 만든 족보첩이라고 하는데, 광주 반씨 장절공파의 계보를 소상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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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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