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런던의 상징인 빅벤 앞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영국 국기와 잉글랜드 기. ⓒphoto AFP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사진은 런던의 상징인 빅벤 앞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영국 국기와 잉글랜드 기. ⓒphoto AFP

브렉시트 투표 직전인 지난 6월 15일부터 19일까지 영국 런던과 옥스퍼드를 방문했다. 그 기간은 우연히 브렉시트 국민투표(6월 23일) 캠페인 기간과 겹쳤다. 나는 옥스퍼드와 런던에 머무는 동안 국민투표 분위기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거리와 음식점에서 만났던 영국인들은 모두 브렉시트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논리를 주장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브렉시트 찬성파들은 영국이 유럽의 제약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주권국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파들은 영국은 이미 유럽연합(EU)의 핵심 국가이므로 탈퇴는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반박하였다. 옥스퍼드대학에서 만났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잔류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영국이 EU에 가입한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인 이들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영국에 도움이 안 되며 우리는 영국인이기 전에 유럽인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일부이긴 하지만 탈퇴파도 있었다. 이들은 이민 문제, 보조금 문제 등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였다.

영국 체류 중 EU 잔류를 주장하던 노동당의 조 콕스 여성 하원의원이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의 EU 탈퇴를 주장하는 남성 테러리스트에 의한 것으로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그 때문에 EU 탈퇴의 목소리를 잠시 가라앉히는 효과는 있었지만, 오히려 그에 대한 역풍이 불어서 EU 탈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에 대한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브렉시트는 보수당의 선거 전략

여기서 브렉시트가 왜 촉발되었는지 그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당초 브렉시트 문제는 집권 보수당 내부의 계파 갈등에 의해서 촉발된 면이 있다. 작년 5월 총선거에서 보수당은 사전에 패배를 예측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공약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것은 보수당의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이었다. 이에 반하여 노동당은 영국의 EU 잔류는 지지하지만 국민투표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가장 친유럽적인 자유민주당(LDP)은 기존 57명 의석이 8명으로 축소되면서 선거에서 참패하였다.

캐머런 총리는 EU로부터의 이민자 유입과 주권제약을 완화하기 위해 EU와 특별협상을 하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으면 국민투표를 통해서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지난 2월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저지를 위한 협상안이 타결되었고, 이를 통해 EU 집행위원회가 영국 측의 핵심 요구사항인 이주민 복지제한에 대해 진전된 안을 내놓았다. 그것은 영국에 4년간의 이주민 복지혜택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캐머런 총리의 생각은 그 정도의 양보를 받아내면 영국의 EU 잔류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올라갈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판단 착오였다. 같은 보수당 내부에서 유럽 탈퇴를 주장한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그 정도 가지고는 영국의 국익을 보장할 수 없고 이민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잔류파를 공격했다. 이러한 집권당 내부의 의견 충돌은 차기 총리를 겨냥한 권력싸움으로 변질되어 파벌 대립을 심화시켰다. 결국 집권당 내부의 파벌싸움이 국민투표 실시라는 무리수를 두게 하였고, 그 결과 영국 국민들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는 정치 실패의 결과였다.

영국은 현재 무정부 상태

현재 가장 우려되는 것은 현 상황에 대응하는 영국 정부의 리더십 부재이다. 브렉시트는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온 글로벌 사안이다. 하지만 차기 정권을 두고 영국 국내 정치세력 간에 벌어진 경쟁으로 인해 내각은 물론, 의회 정치 자체가 마비 상태에 이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에 대해 ‘무정부 상태(anarchy)’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수습하고 EU와의 협상에 나서려면 국가 리더십 기능의 회복이 급선무이지만,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당론으로 잔류 캠페인을 주도했기 때문에 투표 결과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양당 모두 당수가 사임을 발표했거나 사임 압박을 받으면서 동시에 레임덕을 겪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보수당은 캐머런 총리가 10월 사임을 발표한 이후, 탈퇴 캠페인을 주도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힘을 얻는 형세이다. 이튼과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기자 출신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존슨 전 시장은 실제 업무능력에 대해서는 당내 동료 의원들의 지지가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특히 존슨 전 시장이 주도하는 탈퇴 진영이 캠페인 기간 동안 제시했던 정책 공약과 각종 수치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예를 들어 영국이 매주 EU에 내놓는 3억5000만파운드를 탈퇴 후에는 영국 내부로 돌려 고질적인 자금난에 시달리는 국민건강보험(NHS)제도에 투입하겠다는 탈퇴 진영의 대표적 공약은, 전국을 도는 유세 버스에 크게 써붙여 국민을 설득하는 데 큰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실제 영국이 EU로 보내는 기여분의 규모에 대한 논쟁은 물론, 해당 금액이 공약대로 NHS로 돌려질 수 있는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며 탈퇴 진영의 ‘거짓말 캠페인’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한편, 이번 투표결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잔류 진영 인사들 가운데에서도 존슨 전 시장의 대항마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보수당 내 당수 후보군으로 꾸준히 거론되어왔던 테레사 메이 여성 내무장관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존슨 전 시장의 지지율을 추월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 역시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제레미 코빈 당수는 본격적인 국민투표 캠페인 기간 전에도 당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투표 후에는 잔류 캠페인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권을 내놓아야 할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는 캠페인 기간 중에도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해온 동료들도 하나둘씩 돌아서고 있다. 급기야는 6월 28일 의원총회에서 당수 불신임 투표를 진행한 결과, 압도적 차이로 불신임안이 가결되었다. 노동당은 보리스 존슨 전 시장 등 보수당 차기 지도부 후보군에 필적할 만한 중량급 인사를 찾기 힘들어, 지난 총선 패배 이후 이어져온 침체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지난 6월 16일 피살된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조 콕스(41·가운데)가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주에서 영국의 EU 잔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IN)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photo 조 콕스 의원 페이스북
지난 6월 16일 피살된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조 콕스(41·가운데)가 잉글랜드 북부 웨스트요크셔주에서 영국의 EU 잔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IN)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photo 조 콕스 의원 페이스북

이민자·난민 문제는 불난 데 부채질한 격

영국 국민의 브렉시트 결정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영국 국민 다수는 이민 문제가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났고 영국의 질서와 관습을 위협한다고 생각해왔다. 작년에 이민자 수는 33만3000여명으로 영국 정부가 목표한 10만명을 세 배 이상 초과하였다. 이민자 문제에 더하여 난민 문제는 불난 데 부채질한 격이었다.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유입도 외국인에 대한 반감 내지 혐오감을 자극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피살된 조 콕스 노동당 의원은 평소 시리아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던 난민 보호 옹호론자였다.

탈퇴 진영이 강조했던 이민 ‘고위험국가’의 EU 추가 가입 여부도 국민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터키를 비롯한 세르비아, 알바니아 등 저개발국이 곧 EU에 합류하면 더 많은 이민자들이 국경을 건너 영국으로 유입될 것이므로 그전에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것이 탈퇴 진영의 논리였다. 그러나 실제로 터키가 단기간 내에 EU에 가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영국 내 소득수준에 따른 사회적 계급 갈등보다는 각 지역의 이익과 학력에 따른 의견 차이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민자 유입에 위협을 덜 느끼는 고학력층일수록 경제적 안정 등을 이유로 잔류 지지에 나섰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지만, 영국 내 이민자 및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는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물론 과열된 캠페인 이후에 나타나는 단기적 후유증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실력행사에 성공한 ‘침묵의 다수(silent majority)’가 앞으로 이민 정책과 관련하여 얼마나 급진적인 요구를 하게 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2년 전 국민투표 부결로 실패로 돌아갔던 스코틀랜드 독립 시도 역시 다시 추동력을 얻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의회 및 웨스트민스터 원내 지역구 의석의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니콜라 스터전 당수는 브렉시트 결과 발표 직후 ‘중대하고 실질적인 상황의 변화’가 있었으므로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한 2차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이것은 지난 5월에 열린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총선에서 SNP가 내건 공약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2차 국민투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스코틀랜드는 영국 연합 왕국을 구성하는 4개의 ‘홈 네이션스 지역’(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가운데 유일하게 전 선거구에서 EU 잔류 지지가 다수를 점한 지역이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인들의 열망과는 반대로 EU를 탈퇴한 영국에 갇혀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잘못된 이분법 잘못된 선택

이번 국민투표에서 영국 국민은 잔류(remain)냐 탈퇴(leave)냐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잔류한다면 어떻게 잔류하고, 탈퇴한다면 어떻게 탈퇴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불분명했다. 그러면서 탈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완전하고 깨끗한 탈퇴’ 쪽으로 추세가 기울었다. 하지만 제3의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즉 EU에서는 탈퇴하지만 단일 공동시장에는 남아 있는 방안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렉시트 투표 이후 현실적 차선책은 영국이 EU와 협상을 통해 유럽공동체(EC) 단일 공동시장에 편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간 탈퇴론자들이 영국 국민에게 약속했던 사항, 즉 EU로부터의 완전한 독립과 유럽으로부터의 노동인력 차단 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노르웨이와 스위스의 방식이다. 이들은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단일 공동시장에는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제3의 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백 논리로 잔류냐 탈퇴냐의 선택을 요구한 것은 잘못된 이분법이라는 인식이 뒤늦게 확산되고 있다. 43년 만의 EU 탈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영국의 선택이 몰고온 일파만파의 지구촌 충격파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는 우선 영국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국민투표의 결과는 국민의 정치적 판단일 뿐 법적 구속력은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영국은 지금부터 EU와의 힘든 협상을 2년 동안 감내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 독일과 프랑스 같은 유럽 주요국들은 유럽의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 영국에 탈퇴 스케줄과 협상 절차를 명확히 내놓을 것을 촉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6월 27일에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정상들이 만나서 영국이 빠른 EU 탈퇴 절차를 개시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전까지는 영국과 EU 간에 어떠한 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정치권에서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불복하고 이를 무력화하거나 또는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제러미 헌트 보건장관은 공개적으로 “재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캐머런 총리도 “영국 정부는 지금 단계에서 (리스본조약) 50조를 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발 빼고 있다. 리스본조약 50조는 EU 회원국의 탈퇴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인데, 이 조항을 일단 발동하면 사태를 다시 뒤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EU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도 “(영국이 EU를) 빨리 떠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명치 못한 것일 수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 정치지도자들의 입장 번복은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다. 캐머런 총리는 브렉시트 투표에서 이길 것으로 판단하고 만약에 ‘탈퇴’라는 결과가 나와도 총리직을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리스본조약 50조가 자동적으로 발동될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그러나 반대의 결과가 나온 이후 캐머런 총리는 3개월 내에 사임할 것이며 50조를 즉각 발동시키지 않겠다고 번복했다. 탈퇴를 지지했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도 “우리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고 하면서 한발 빼고 있다. 이것은 아무도 통제 불능의 상태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따라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당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제레미 코빈 당수는 원래 EU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 투표 과정에서 잔류를 위해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받고 있다. 생각해보면 브렉시트 투표는 단순히 보조금이나 이민, 난민문제 그리고 부유층에 대한 반발의 차원에서만 다룰 문제는 아니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영국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문제이며 유럽의 장래를 위한 철학적 문제였다. 영국이 EU에 가입한 것은 유럽의 장래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그 방향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이 바로 영국의 국익에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하는 근본적 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국민투표에서는 그러한 지정학적·철학적 차원의 논의가 깊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국가우선주의와 보호주의를 선호하는 감정적 주장들이 튀어나왔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 비유하자면 영국 정부는 EU 잔류를 위해 늑대가 없는데도 늑대가 온다고 불안감을 조성했고, 이것은 오히려 유권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탈퇴로 이어졌고 결국은 바로 문 밖의 커다란 늑대를 마주 보는 형국이 된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영국 독립당 대표 나이절 파라지(맨 왼쪽)가 당원들과 함께 켄트주 시팅본에서 “우리나라를 되돌려받고 싶다”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유럽연합(EU) 탈퇴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AFP
지난 6월 13일 영국 독립당 대표 나이절 파라지(맨 왼쪽)가 당원들과 함께 켄트주 시팅본에서 “우리나라를 되돌려받고 싶다”라고 쓴 현수막을 내걸고 유럽연합(EU) 탈퇴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AFP

미국 대선에 미치는 브렉시트의 파장

브렉시트를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photo AFP
브렉시트를 이끈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 ⓒphoto AFP

뉴욕타임스는 브렉시트 결과를 경제보다는 외교안보에 중점을 두면서 미국의 외교정책 기조가 아시아 중심에서 유럽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과 유럽 간 균열을 막기 위해 독일·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하여 대서양 동맹을 강화해야 하며, 만약 이러한 노력이 실패할 경우 서구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브렉시트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 결과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의 사실상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영국의 EU 탈퇴 결정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생겼다”라고 언급하면서 “침착하고 꾸준하고 경험이 많은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해왔다.

이에 반해 트럼프 후보는 “영국 국민이 독립을 되찾았다”라며 투표 결과를 환영하면서,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투표는 닮은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영국의 EU 잔류를 지지한 것을 비판하면서 그러한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이 오히려 영국 국민의 탈퇴 여론을 자극해서 이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후보는 이제 미국도 다시 한 번 ‘경제적 독립’을 선언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과거 클린턴 대통령이 추진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현재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잘못된 것이며 이를 바로잡겠다며 보호무역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가 미국의 대선 판세에 영향을 미치고 그 대선 결과에 따라 한국에도 적잖은 충격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브렉시트는 아시아에도 지정학적·경제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태 지역 국가들은 영국의 EU 잔류를 이구동성으로 촉구해왔다. 따라서 투표 결과에 대해서 충격을 받고 그것이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은 EU의 제1 무역 파트너이지만 영국과의 교역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작년에 영국을 방문하여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하여 역외 최초 위안화 채권거래시장을 런던에 만든 바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이러한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정책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만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영국의 EU 탈퇴는 중국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영국은 세계 제5위 경제대국으로서 EU 국가들 중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왔고, EU에서 탈퇴한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브렉시트 과정에서 유럽의 영향력은 축소되고 상대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앞당기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중국은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는 논평에서 중국은 브렉시트로 인해 단기적 충격을 받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정치·경제적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브렉시트 투표가 자국에 지정학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영국은 EU 국가들 중에서도 미국과 외교정책의 보조를 가장 잘 맞춰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입장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대(對)러시아 제재 전선에 균열이 생길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현재 대러시아 제재는 6개월마다 EU 국가의 합의로 연장되고 있다.) 다만 영국은 러시아 집권층과 파워 엘리트가 선호하는 해외 투자처이므로 파운드화의 가치폭락은 러시아 부호들의 자산 감소에 영향을 줄 것이다. 어쨌든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과의 밀월관계 해체, 영국의 EU 탈퇴 과정을 둘러싼 EU 국가들 간의 갈등, 그리고 브렉시트에 따른 EU의 불확실한 장래로 인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약화 등을 기대하면서 탈냉전 이후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던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나갈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브렉시트 투표 직후인 지난 6월 25일 시진핑 주석과 베이징에서 만나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전략적 안정’을 위협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를 침해하는 서구의 행동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브렉시트의 충격에 대응한 중국과 러시아 양국 간의 전략적 협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브렉시트의 최대 피해국 중 하나이다. 지난 3년여간 아베 총리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아베노믹스’를 통한 양적완화 정책이 브렉시트로 인하여 한순간에 무력화되고 있다. 일본 엔화 가치는 현재 1달러당 102엔 선으로 3~4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서 아베노믹스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 10일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10조엔의 경기부양책을 검토하고 있다. 안보 측면에서도 브렉시트는 일본에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고, 동중국해나 남중국해 문제에서 영국이 EU에 남아 있을 때보다 탈퇴했을 때가 친중 노선을 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권도 정신 차려야

브렉시트는 가뜩이나 경제 상황이 어려운 한국에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등 악재가 겹쳐 있는 상황에서 영국의 EU 탈퇴 투표와 불확실한 유럽 시장 전망은 우리의 수출 전선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은 EU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유일한 동북아시아 국가이며, 지난 5년간 한·EU 무역규모는 14%포인트 증가하여 작년에는 1050억달러를 기록하였다.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우리의 대EU 수출에서 FTA로 관세가 철폐되거나 인하된 수혜품목의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5%포인트나 증가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최종 결정되면 EU와 영국의 경기가 크게 둔화하고 파운드화와 유로화의 약세로 수입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유럽의 수입 감소는 중국 경제를 통해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고, 또한 브렉시트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서 국내 외국 자본 유출의 위험성도 얼마든지 안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수출중심의 우리 경제가 가진 취약성을 탈피하기 위해서 효과적인 부실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개혁 등 실질적인 구조개혁을 적극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브렉시트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영 FTA를 추진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대내외적인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정치권은 중심을 바로잡고 국익을 보존하기 위한 정책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정부가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어떤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등 주요 3당이 모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되는 리더십의 공백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여야는 하루빨리 리더십 부재 상태를 수습하고 머리를 맞대고 협치를 통해서 국내외적인 난제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브렉시트는 민주주의의 원조인 영국의 정치 실패가 초래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브렉시트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정치 실패를 사전에 예방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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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전 국회외교통상통일위원장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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