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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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주한미군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공식화 이후 주식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공식화에 중국 정부와 여론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발이 강해질수록 한국의 주력 산업과 기업을 향한 경제·무역 보복 가능성이 주식시장과 기업들 사이에서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 생산시설과 영업망을 운영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기업과 매출 대부분을 중국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기업, 또 상당한 수준으로 중국 자본의 투자가 이루어져 있는 기업, 한류의 수혜를 받아온 기업 등 각종 중국 관련 기업들이 사드 후폭풍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월 8일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이후, 아직까지 한국을 향한 중국의 공식적 경제 보복조치가 발표된 것은 없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언론을 중심으로 어떤 형태로든 한국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돼 있다.

그동안 중국은 외교·안보·경제적 문제가 불거진 국가의 기업과 산업에 대해 공식·비공식적인 경제·무역 보복조치를 취해온 게 사실이다. 2010년 일본의 중국 어선 나포사태와 2012년 오키나와 남서쪽 섬인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의 영유권을 두고 일본과의 분쟁이 격화되자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 금지 및 일본산 수출입 통관지연, 중국인들의 일본 여행 자제라는 경제·무역 조치를 단행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재 한국과 중국 관계 역시 당시 일본과 중국만큼 껄끄러운 상태다. 중국 외교부의 사드 배치 반대 성명 발표는 물론, 중국 언론이 한국은 물론 한국 기업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쏟아내며 중국 내 한국 관련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경제·무역 보복 기반을 갖춰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주식시장이 표적 되나

이런 중국의 경제·무역 보복 움직임이 가장 먼저 포착되고 있는 곳이 한국 주식시장이다. 적극적으로 중국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에 대한 우려가 특히 높아지고 있다. SM과 YG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연예기획사들의 주가는 사드 배치 공식화 이후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 연예기획사들은 그동안 중국의 한류 붐에 가장 큰 수혜를 받아온 기업들이다. 이들 중 중국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여온 한류 연예기획사로는 SM과 SM C&C, YG엔터테인먼트 등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 공식화와 함께 이들 기업의 중국 사업이 당분간 힘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방송 및 영화·광고 출연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이다. 실제 사드 배치 공식화 이후 몇몇 한국 연예인들의 중국 행사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SM과 SM C&C, YG엔터테인먼트 등 연예기획사들의 주가가 추락하고 있다. 사드 배치 공식화 전인 7월 7일 SM의 주가는 3만8400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주가가 계속 떨어지며 8월 5일에는 2만8150원까지 폭락했다. 한 달이 채 안 돼 주가가 26.69%나 떨어진 것이다. 8월 10일 SM의 주가는 3만350원에 불과하다. 또 다른 대형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역시 7월 7일 3만9850원이던 주가가 3만2250원까지 떨어졌다. 채 한 달이 안 돼 19% 이상 주가가 추락하기도 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JYP와 SM C&C 등 다른 연예기획사들 역시 주가 동반 추락 상태에 빠져 있다. 이들 연예기획사는 중국 등지에서 일고 있는 한류 붐을 타고 소속 연예인들의 중국 진출을 적극 추진하며, 매출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되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만이 아니다. 중국 사업을 확대하며 2010년 이후 급성장한 한국의 화장품 기업들 역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수입품 통관지연 등 확인이 쉽지 않은 비관세 장벽이 한국 화장품 기업을 괴롭힐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 공식화 이후 주식시장에서 이런 내용들이 부각되며 화장품 기업의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한국 화장품 기업 LG생활건강의 주가 폭락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7월 7일만 해도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중국 사업 기대감’이 부각되며 무려 118만1000원에 이르렀다. 종가를 기준으로 연일 사상 최고 주가를 깰 만큼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7월 8일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한국 화장품산업이 중국이 가장 빠르고 쉽게 무역 보복을 취할 수 있는 산업이란 가능성이 제기되며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사드 배치를 공식화한 지 약 한 달이 지난 8월 5일, LG생활건강의 주가는 92만원까지 떨어졌다. 한 달 만에 주가가 22.1%나 추락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한국의 화장품은 아모레퍼시픽이 만든 제품들이다. 이런 아모레퍼시픽 역시 사드 배치 공식화가 불러온 중국의 경제·무역 보복 가능성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7월 7일 44만1000원이던 주가가, 8월 5일 36만3000원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채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17.69%나 주가가 하락했다.

또 다른 한국 화장품 기업 코스맥스 역시 7월 7일부터 8월 5일까지 채 한 달이 안 되는 동안 주가가 22.16% 추락했고, 한국콜마도 같은 기간 주가가 17.26%나 떨어졌다. 중국 사업이 활발한 연예기획사와 화장품 기업은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만으로도 이렇게 주가가 폭락했다.

경고성 보복 이미 시작됐나

중국에서 ‘K-푸드’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한국의 식품기업들 역시 경제·무역 보복의 사정권에 들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심 등 중국 시장에 라면과 과자를 팔아온 식품 기업들의 주가 역시 사드 배치 공식화 후 상당한 약세에 빠져 있다.

중국 자본이 상당량의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들 역시 고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게임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 초부터 중국 자본의 한국 게임 기업 투자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일부 게임사들의 경우 중국 자본이 갑작스럽게 이탈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사드 배치 공식화 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우려 역시 주식시장에서는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는 한국의 최대 수출품목 중 하나다. 문제는 한국산 반도체를 가장 많이 사주고 있는 최대 소비처가 바로 중국이라는 점이다. 생산량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을 중국이 소화해주고 있다는 게 업계와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와 관련한 경제·무역 보복이 현실화될 경우 관련 산업과 기업들의 타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서 우려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LCD 등 디스플레이산업과 석유화학산업 역시 반도체와 같은 이유로 7월 8일 사드 배치 공식화 이후 주식시장에서 관련 산업에 대한 우려가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보다 중국 현지 사업을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한 기업들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공장을 중국 시안에 만든 삼성SDI와 난징에 만든 LG화학의 사례가 이런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시장으로 떠올라 있다. LG화학과 삼성SDI는 현지 공략을 위해 중국에 설비 확충 등 상당한 투자를 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 논란이 커지던 지난 6월 20일 중국 정부가 돌연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업체’ 선정에서 이 두 기업을 탈락시켰다. 당시 LG화학과 삼성SDI는 다른 기업들보다 우수한 기술과 생산시설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LG화학과 삼성SDI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왜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업체에서 탈락했는지’ 이유조차 통보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로부터 ‘전기차 배터리 모범기준 인증업체’로 선정되지 못하면, 현지 전기차 기업에 배터리 판매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非)인증업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알려지며,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이 경제 보복에 대한 사전 경고성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주식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무역 장벽보다 반한감정 더 치명적

이런 우려는 전기차 배터리 업체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 역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중국의 자동차시장은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불린다. 이런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현대자동차 등은 중국 현지에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를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베이징 이외, 지난해 창저우와 충칭에 생산 공장을 착공하며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문제는 사드 배치 공식화 이후 한국에 대한 여론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악화된 중국 내 여론이 한국 이미지가 강한 한국 브랜드 자동차의 성장성 둔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는 오너일가의 부도덕성과 잘못된 부동산 투자 등으로 인해 2014년 이후 주가가 폭락한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사드 배치 공식화를 이유로 중국의 경제·무역 보복이 본격화되면 한국 브랜드 이미지가 강한 완성차 업체의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무역장벽보다 반한 감정이 커질 경우 완성차 업체 중에서도 특히 중국 사업 비중이 큰 현대자동차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7월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공식화 직후 한국 주식시장은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의존도가 높고, 중국 현지 사업 규모가 큰 일부 기업들의 주가 하락도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인 블룸버그는 최근 “한국의 중국 수출 물량이 7월 들어 9% 줄었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 공식화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중국이 실제로 한국을 향해 경제적 조치를 취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큰 한국 주식시장에서 그 소문만으로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시장 불안에 대한 우려감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과 경제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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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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